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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rae Dec 20. 2021

눈물 나도록 반짝이며 당신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안다만해의 보석, 시밀란


J를 처음 만난 날 우리는 지하 술집에서 새벽 네 시까지 오래된 음악들을 들으며 함께 술을 마셨다. 그리고 밖에 나왔더니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는데 그때 J는 내 손을 꼭 잡으며 평생 잊지 못할 말을 건넸다.

그후로도 눈은 삼일 동안 계속해서 내렸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폭설이었다. 우리는 삼일 내내 내가 살던 옥탑방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서로를 끌어안고만 있었다. 그때 J가 시밀란이라는 곳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날에도 저 멀리 안다만해에서는 보석처럼 빛을 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섬이 있어. 그곳이 바로 시밀란이야.”

*

그후 나는 오랫동안 그곳을 생각하다 J와 헤어진지 십년이 다 되어갈 무렵에서야 그곳에 가게 되었다. 그곳은 정말 J의 말대로 보석처럼 빛을 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간밤에 밤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티브이를 틀었는데 J가 대본을 쓴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지 않아도 J가 쓴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길고 혹독한 겨울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이제 이곳에는 만나고 싶은 이가 없다. 그렇지만 살면서 쓸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에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어디선가 아름다운 이야기를 짓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겠다. 살다보면 언제든 다시 긴긴 겨울을 맞는 날들이 올 거다. 그럴 때마다 당신 품에서 따뜻함을 느끼던 나날들을 떠올리겠다.

“이렇게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날에도 저 멀리 안다만해에서는 보석처럼 빛을 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섬이 있지.”

광폭한 계절에 고립된 것 같아도 저 멀리에서 눈물 나도록 반짝이며 당신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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