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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Sep 12. 2019

[타로일기] 타인과 속 깊은 고민을 나눈다는 것

취미로 타로카드를 만지작 거린 지 십여 년이 돼간다. 그저 고풍스럽고 귀여운 중세시대 고양이 그림이 예뻐서 사게 된 것이 시작이었고, 그간 친한 지인들 위주로 소소하게 봐주던 것이 전부였다. 누군가는 타로 카드를 한 장 한 장 뒤집을 때마다 감정이 북받치는지 눈물을 글썽였고, 누군가는 답답하리만큼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내게 어떤 힌트도 주지 안고 자리를 떴다.

턱없이 부족한 실력으로 영문 해설서를 읽고 타로 관련 각종 외국 사이트를 뒤지고, 찾을 수 있는 한 모든 자료를 그러모아 카드가 보여주는 의미를 해석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지인들이 '타로를 신기할 만큼 잘 본다', '소름이 돋는다', '참 용하다'며 부추겨도 나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알 수 없는 것은 나 자신의 마음과 미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인의 깊은 고민이 내게로 전이되어 그 에너지가 타로 카드로 이어질 때, 나는 내담자보다 더 마음이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괜히 타로점을 봐서 기대하고 있는 일에 초 치는 것은 아닐지, 재미로 본 타로점에 흉악한 카드가 나와 놀라지는 않을지,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찝찝한 기분이 남아 마음 졸이는 것은 아닐지 등등. 나는 상대방이 고민을 들고 와 카드를 뽑는 바로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호흡을 멈추게 된다.

모두가 평탄한 길을 걸을 수도 없고 인생은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자면 떨리는 눈빛과 간절한 바람이 고스란히 전해져 카드를 있는 그대로 읽어내기가 어려워진다. 머지않아 그 힘든 상황이 자연스럽게 풀리고 마음이 누그러질 수 있는 운이 당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읽어내는 타로점. 설령 그 시기가 너무도 늦게 찾아오더라도 우리가 고통의 시간 동안 조금은 더 성숙해지고 조금은 더 상처에 무뎌질 수 있기를 바라며 상대방의 마음을 다독여본다.


그렇게 얘기를 마치고 나면 내 마음은 잔뜩 무거워져 있다. 타인이 내게 들려준 마음의 무게만큼 무거워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고민에 매몰되어 개개인의 삶이 꽤나 비슷한 궤적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잊곤 한다. 왜 내 연애만 힘든 것일까, 왜 그 사람은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일까, 기대했던 일은 왜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을까 등등 현재형이거나 과거형이거나 미래형이거나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쩌면 타로점을 볼 때 타로 리더에게만 알려주던 속 깊은 고민을 누군가와 터놓고 나눌 수 있다면, 마음을 곪아가며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타로가 있다면 펼쳐보자. 그리고 '이 일은 이렇게 되어야만 해'가 아니라, '일이 어떻게 되더라도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어'라는 단단한 마음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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