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비밀인데>로 시작하는 그럴싸한 연대는 사실 비밀 폭로의 행위이다. 폭로는 비밀을 더 이상 비밀이 아닌 것으로 변질시킨다.
비밀은 적어도 매우 철저해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존재하는지 아무도 모르니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느낄 수도 없다고도 표현하기 어렵다. 즉 우리는 비밀에 대해 정의 내리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그렇다면 당신 혼자만 알고 있는 사실들은 어떨까. 혼자만의 비밀도, 엄밀히 따지면 비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 스스로 이미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비밀로써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다.
인류가 절대로 알 수 없고, 스스로도 깨우칠 수 없는 범위의 것을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모두 우리의 착각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들이 모두 거짓이고 허상이라면? 그러면 비밀의 범위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까지 포함하여 전부로 확장될 수 있다.
이렇듯 비밀에 대하여 생각하다 보면, 비밀은 밝혀질 수 있는 성질만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비밀을 유지한다'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는다는 말이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인지 밖의 것들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사람들을 우리는 '비밀을 밝혀낸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말에도 오류가 있다. 우리는 비밀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 그것이 오래전부터 존재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비밀을 밝혀냈다'라고 표현하기보다 '비밀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 누구도 인지할 수 없는 비밀을 인지하고 그것을 밝히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비밀은 우리보다도 더 살아있어서 스스로 밝혀지고 싶은 만큼만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