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2주 탐방기 (1)
3월에 다녀온 졸업여행, 스페인 여행기의 조각을 적어본다.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솔직히 이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각조각나버린 경험들을 기억하기 위해 조각글을 완성해 남겨본다.
유럽여행 가면 힙하게 밤문화 즐기고 놀 줄 알았다. 스페인이 유행인지 친구들이 3개월 간격으로 다녀왔는데 친구 A는 바르셀로나 힙합클럽 놀러갔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인증샷이 올라오고 친구 B는 이비자 클럽 이야기를 했지.
나도 그렇게 놀 줄 알았다. 동행자가 워낙 소음에 민감해서 물건너갔지만... 적어도 밤에 술은 많이 먹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나는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고 특히 여행 중 체력이 약해진 나는 더더욱 까탈스럽고 예민했다.
그라나다에 갔을때의 일이다. 그라나다는 타파스 투어가 유명하다. 숙소 근처에 유명한 타파스 집이 몇 개 있어 기다렸다.
알고보니 정말 놀라운 주문방식이었다. 그냥 서서 먹는다. 가는 종업원 붙잡는다. 치밀한 눈치게임이다. 정말 포장마차다. 교실 하나 사이즈에 40명이 복닥거리는 놀라운 풍경이었다.
아 사람들 참 서서도 잘 먹더라. 볼때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나는 인간적으로 앉아서 밥은 먹어야 한다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임을 깨달았다.
또 이 도시의 사람들은 숙소 근처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떠들었다. 오후 두시에나 새벽 두 시에나 상관이 없이.
다른 사람들은 물가가 싸고 음식이 맛있으며 알함브라가 있다는 그라나다를 찬양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라나다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는데, 태반은 숙소 때문이었다.
처음 숙소에 당도해서 당황했다. 돌바닥 길거리에 고인 물과, 자그마한 숙소, 페인트냄새나는 로비. 그리고 술집이 바로 앞에 있었다.
머무는 내내 빨리 떠나고싶었다. 바가지를 쓴 식당도, 값싸게 먹었지만 결국 마지막에 체해서 고생고생했던 기억도 덤으로 얹혔기 때문에.
그 방에서는 소화가 되지 않는 것처럼 시선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거리가 무서운 대신 실내의 공간이 안락하면 위안이 되었겠지만 나는 어둡고 하얀 방 안에서 갇힌 기분이었다.
음식 때문인지 좁은 방 때문인지, 잠 잘 때 빛에 예민한 짝궁때문에 불을 킬 수 없어 나는 괴로워하며 밤새 짝궁에게 치근댔다.
돌이켜 보면 이 숙소는, 우리한테는 시끄럽고 지저분한 길거리에 있는 호텔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최적의 숙소. 누군가에게는 아랍 지구인 알바이신도 가깝고 타파스 투어 하기도 좋고 스페인의 밤문화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으니 좋은 숙소였을 것이다.
반면 안달루시아의 바닷가 휴양지, 네르하는 뭔가 북유럽 노인&가족분들의 휴양소였다.
네르하는 예쁜 바닷가마을인데, 우리는 그 중 스페인 국영 호텔인 파라도르에 머물렀다. 다른 숙소보다 값이 나가서 그런지 특히 파라도르는 해변 가기조차 귀찮으신 어르신들이 많았다. 해변에도 내려가지 않으시고 느긋이 머물렀다.
이 한적한 도시가 내 취향에 맞았다. 차라리 그라나다나 론다 일정을 하루 줄여 네르하에 있었다면 좋았겠거니 싶었다.
우선 바다가 예뻤다. 그리고 리조트가 좋은 것도 한몫 했다. 살면서 내 돈 주고 호텔이나 리조트 처음 가봤는데, 아직도 바다를 보면서 조식을 먹던 풍경은 잊히지 않는다.
요즘도 가끔 스페인에서 핸드폰으로 비디오 찍은 걸 다시 본다.
그 비디오에는 "120유로 주고 이런 뷰를 본다니 믿을 수 없다"며 소리소리 지르고 있는 나와 내가 있다.
도시마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이 결국 단 한장의 강렬한 이미지라면, 이걸 색칠하는 건 공간의 마력아닐까.
그라나다의 알함브라는 정말 죽기전에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라나다를 생각하면 아직도 그 어두컴컴한 방과 길거리의 악취가 먼저 떠오른다.
반면 네르하는 결국 어디나 있을 흔한 지중해 바닷가인지도 모르겠다. 네르하를 떠올리면 아침의 조식, 보름달 뜬 바닷가 등등의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 가고싶지만 우리가 다시 가볼 수 없는 그 바닷가가 생각난다. 우리나라로 치면 남해나 청산도 쯤 될 위치라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힘들 그 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