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2주 탐방기 (2)
3월 여행 동안 많은 방들을 누비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좁은 방, 비싼 방, 호사스러운 방, 가성비 좋은 방, 전망 하나는 끝내주던 방.
이사를 다녀본 적이 없어서 잘 몰랐지만 그래도 여행에서 만났던 방들을 돌이켜보니 스스로 어떤 곳에서 살고싶을지 대충 알 것 같다.
마드리드에서 출국하기 전날이었다. 이대론 가기 아쉽다고 굳이 15분 이상 걸어 타파스 집을 갔다. 그날 미술관 두 개를 다녀와 이미 다리가 삐걱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욕심을 부렸다.
이 골목이 좀 빠르다고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을 때였다. 길거리에서 남자를 낚고 계신 센 언니들을 보았다.
그리고 어린 딸아이의 손을 잡고 연신 불안한듯 뒤를 돌아보는 엄마도 보았다. 낡은 문을 열고 갈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 벽에는 "철거"라는 것이라도 되는 양 낙서가 가득했다.
그라나다에서 자리를 잡은 곳은 알바이신 근처 숙소였다. 그 곳에서는 숙소 바깥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서는 나 혼자도 돌아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좀 외진 골목에 숙소를 잡으면 돌아다닐 수 없었다. 이건 내가 알지 못했던 답답함이었다.
그래, 적어도 이 골목을 걷다가 누가 날 위협할까봐 전전긍긍하지 않는 곳에 가고 싶다.
짝꿍이 깨길 기다리며 나 혼자 빵 사올 수 있는 곳에서는 살아야겠다.
깨끗함, 청결함, 쾌적함.
평소에 오히려 물건을 어지른다. 그래서 나는 엄청나게 청결을 신경쓰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묵는 호텔의 특성상, 노파심에 슬리퍼를 챙겼다.
갔다오면 모든 짐을 버리고 몇 주 간 가려움에 시달린다는 베드버그가 무섭기도 했었다.
감사하게도 이 걱정은 대부분 기우였다. 저렴했고, 좋은 방들이었다. 숙소의 대부분 매우 깨끗해서 신경쓰지 않아도 됨에 감사했다.
가장 넓었던 방은 마드리드였다. 코르도바의 숙소였던 파라도르의 크기도 비슷했다. 몇 개나 되는 의자, 침대, 협탁은 두 개나 있었고 소파가 푹신했다. 내가 목소리를 높이면 방 안이 울렸다.
시선이 멀리 가 닿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와, 서른 걸음을 걸을 수 있어!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르도바에선 피곤했다. 그리고 날씨도 궂었기에 체크아웃할때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아마 내가 얻을 신혼집은 이렇게 넓지도 않을게다. 아마 코르도바 파라도르보다 작을 것이다. 그리고 가구도 그만큼 갖추진 못할 것 같다. 그래도 밝은 공간에 많이 위로받았던 기억이 난다.
반대로 비좁았던 그라나다 숙소에서는 끙끙 앓았다. 실내의 공간은 하얗기만 했고 멀리 가 닿을 곳이 없었다. 문밖을 열어도 보이는 것은 바짝 붙은 맞은편의 건물이었다. 그래서 더 답답해했던 것 같다. 고시원에서 창문이 있으면 가격이 더 비싸진다는 것도 이해가 갔다.
세비야에서도 그랬다. 세비야 대성당이 보이는 건물에서는 10만원 차이 때문에 선뜻 선택하지 못했다.
결과는 바깥쪽으로 창문이 나지 않은 방이었다. 깨끗했다. 그리고 우리 대신 플라멩코예약도 해주고 택시도 불러준 고마운 숙소긴 했다. 그렇지만 숙소 자체에 정을 붙일 수 없었다. 그래서 잠잘 때를 빼고 더더욱 열심히 돌아다녔다.
론다의 숙소는 세비야보다 훨씬 작고 냉장고가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누에보 다리와 절벽이 바로 옆에서 보이는 숙소였으니까. 그래서 계속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자기 전에도 아침에도 내내 다리만 보고 있었다.
서울에서 과연 전망 좋은 방을 얻을 수 있을진 모르겠다만. 적어도 건물 사이에 갇힌 느낌이 들진 않았으면 좋겠다.
재밌는 점은 내가 좋았던 숙소들이 나빴던 숙소들보다 저렴한 것도 아니란 점이다. 조식을 주지 않고 창문도 없던 세비야 숙소가 발코니 딸린 코르도바 숙소보다 1.5배가량 비쌌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