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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위해 갔나보다

스페인 탐방기 (3)

by 소얀

죽어도 못 잊을 풍경들은 가물가물하다.

근데 가끔 먹거리들만 간절히 생각이 난다.

아직 꿈에서 나올 정도로.

스페인은 먹으러가는 도시가 맞나보다.


물대신 술

음료를 시키는 문화가 있다. 물, 탄산 음료보다 술이 훨씬 싸다.

그러니까 어디서나 먹을 수 없는 맛있는 술을 먹겠다고 무진 애를 썼다. 물보다 탄산보다 물. 또 커피가 싼 만큼 또 먹고.

초반에는 드라이한 화이트와인을 먹었다. 고기 위주의 식사, 짜고 단 음식들 사이에서 입안을 정돈해주는 역할을 했다.

4일차인가에 새로운 술을 알게 되었다. 샹그리아보다 맛나고 상큼한 술이 있으니 띤또 데 베라노.

스페인에서 도착해 먹은 샹그리아는 생각보다 독했다. "여름의 술"은 새로운 구세주였다.

섬세하게 음식의 맛을 돋구는 느낌이었다.

마침 맥주의 한 종류인 클라라에 질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목넘김이 부드럽지만 레몬 환타가 생각보다 달았기 때문에.

틴토 데 베라노는 이 술은 문어에도, 고기에도, 새우 요리에도 훌륭하게 어울려 주었다.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타기 전 나는 굳이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술 두잔을 마셨다. 클라라와 틴토 두 모금. 술을 즐기지 않는 짝궁 대신 내가 두 잔이나 벌컥벌컥.

재밌는 점은 보통 탄산과 술을 시키면 한번쯤 여자에게 준다는 점.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비야에서 먹었던 틴토 데 베라노

1+1의 행복, desayuno national


여행을 와서 놀란 점은 커피와 주스가 무척 싸다는 것이다. 특히 오렌지 주스는 갓 짠 주스가 2유로도 하지 않아 행복했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이마트 느낌이었던 메르카도나를 보자. 1리터짜리 오렌지 착즙 주스를 3유로도 안 되는 가격에 짜갈수 있었다.

더 좋은건 커피와 오렌지 주스를 같이 먹는 문화였다.

커피? 주스? 둘다 땡겨? 다 줄게!

조식부페를 이용하는 경우엔 당연히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 먹는 경우에도 제한적으로 이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하몽 샌드위치(보까디요)를 시키는 걸 데싸유노 나씨오날이라고 하던데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커피랑 오렌지 주스가 먼저 나오면 둘다 조금씩 맛보면서 기다린다.

하몽과 치즈, 혹은 하몽과 토마토를 턱 발라서 한입 문 뒤 오렌지주스를 먹는다.

특히 세비야에서 일어나지 않는 짝을 두고 혼자 털레털레 나가 먹었던 조식은 혼자 욕심부리듯 먹어서 좋았다

세비야에서 혼자 먹은 아침. 아마도 7유로정도. 커피랑 주스 같이 먹자고 누가 생각한 걸까. 참 잘했어요

여유로운 점심 메뉴 델 디아

스페인 요리하면 "타파스"가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 메뉴 델 디아가 행복했다.

점심메뉴에 전채-메인-디저트 3단콤보를 주는 방식이다. 식당들마다 저렴하게 음식을 만들어 준다. 음료가 포함이기도 하고, 별도이기도 하다(그래도 시켜야 하는 관습.)

스페인 사람들은 인심이 좋은건지, 이미 전채부터 배가부른 게 대부분이다. 파스타가 전채에 들어간다면 말 다했지.

전채는 샐러드나 파스타류, 메인요리는 고기나 생선 디저트는 보통 매우 달달한 것을 먹는다. 2-5가지 정도에서 각각 고를 수 있어 일행이 있다면 한 종류씩 시켜 맛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다.

총 네 번 정도 먹었는데 먹고 나면 한시간 반 정도 걸린다.

서빙도 굉장히 여유로운 편이다. 먹고 난 뒤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도 준다. 계산도 느긋하게 한다. 계산대에서 하는 경우가 없이 무조건 서버가 와서 했다.

막상 우리는 그럴 여유를 느낄 기회가 없었기에 자꾸 바쁘게 먹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서버들을 재촉하게 되었다.

주변을 보면 여유롭게 이야기하며 천천히 음미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게 일상이니까,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까. 만약 그 곳이 역사가 오래된 식당이라면,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손님이 사장님과 (아들로 보이는) 서버와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좋아했지만 메뉴 델 디아는 네 번만 먹었다.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여유롭게 즐기기 힘들었던 탓도 있고, 전반적으로 음식의 양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바쁘면 먹는 속도가 무척 빨라진다. 회사에 와서 30분 남짓 걸리는 점심시간도 못 참고 밥을 제일 빨리 끝내게 된다. 할 일이 많으니까. 그들처럼 이야기를 곁들이기보다 아무 말 없이 같이 밥을 "먹기만"한건 아닌지, 나를 반성하게 된다.

마드리드 3대째 운영하는 밥집의 메뉴델디아 전채, 구운 아스파라거스


이베리코 돼지스테이크. 맛있었지.
고기 푸딩 잼 같은 파테. 모르는 단어 구글링 대충해보고 함부로 시키는게 아니다 차라리 남들 다 먹던 저 요리 보고 저거 주세요 한게 백배는 나았다

스페인 식문화의 메뉴델디아는 12유로의 행복.

네르하 파라도르에서 시킨 저녁버전 menu del dia. 점심보다 조금 더 비싸게 받아서 30유로?)

맛이 다채로웠던 바르셀로나 타파스바 비니투스. 타파스는 1유로 짜리 싼데서 이것저것 먹는게 제맛이라지만 나는 맛난 집이 좋다.대구가 이렇게 맛난 생선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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