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탐방기 (4)
여행을 가면 생각보다 엄청 싸우게 된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참으로 좋았다. 둘이 헤매고 다녀서 행복했다.
둘이라서 좋았던 여행에 대한 단상을 남겨본다.
같이 살아보고 결혼해라
그러지 못하면 같이 여행을 가라.
꼭, 긴 기간동안
김어준 씨의 저서나 강연을 보면 몇 가지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있다.
그 중 보스 정장 에피소드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사회를 나와 연애를 하니, 기껏해야 일주일에 열 시간도 붙어있기 힘들다.
그런 사람들이 24시간을 같이 하고 의식주를 같이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살기 전엔 몰랐을 거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은 얼굴에 침 한가득인것도 부끄러운데 이건 약과인 일들이 많다.
실제로 유럽 신혼여행은 극한 신혼여행이라고 한다.
욕심이 나니 강행군을 하게 되며, 인내심이 바닥이 난다. 그런지 언짢은 커플들을 정말 많이 봤다.
우리도 싸우기도 했다. 그건 우리 둘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 소심해서 서버를 부르는 것도 어렵다. 너는 일단 되든 안 되든 물어본다. 저돌적이라고 느껴진다.
너는 배고파 죽겠다면서도 음식 앞에서 꼭 사진을 찍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마트에서 다 먹지도 못할 디저트를 꾸역꾸역 담는 너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꾸 타박했다.
난 다시는 못 먹을 이 맛있는 요리를 배불러도 꾸역꾸역 먹는다. 너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너는 베개에 머리가 닿기 무섭게 코를 골며 자는 나때문에 한참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아침잠을 방해하면 안 된다며 불을 켜지도 못하게 하는 네가 밉다.
보통은 내가 3시간정도 어둠속에서 꼼짝도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물건을 온 숙소에 흐트러놓는 모습에 기가 찬다.
너는 간단한 자물쇠도 못 따기 어려워하는 나를 답답해한다.
그럼에도 30년을 살아온 너의 방식을, 사고를 나는 고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지난한 싸움, 눈물, 언성, 때로는 애교넘치는 방식과 우기기 등을 통해 싸울 것이다.
몇 년이 지나면 어느 부분은 타협할 것이고 어느 부분은 포기할 것이다.
어느 부분은 관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끝없이 너한테 실망하고 또 잔잔히 웃을 수 있겠지.
윗 글을은 하도 싸운 다음에 써서 저렇게 끝났지만 다시 여행을 가라고 하면 그래도 둘이 함께 갈거다.
왜 좋았던 것일까?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서.
맛있는 메뉴 델 디아를 나눠먹을 수 있어서.
이 여행의 풍경에 감탄할 수 있는 게 나 혼자가 아니라서.
무엇보다 일상을 살다가 툭, 하고 스페인 이야기를 꺼내도 맞장구쳐줄 사람이 있어서.
마드리드에서 찍은 마지막 비디오를 보면 네가 이렇게 말한다.
"2주 지났잖아. 1년은 순식간에 가는데, 그 1-2주는 아무것도, 아무 의미도 아닌데 그 2주는 천천히 지났지. 오래 기억에 남을거야. 인생은 오래 사는게 아니라 밀도가 중요한 거 같아."
그 밀도 있는 경험을 둘이 함께했다는게 참 다행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