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2주 탐방기 (5)
이번 여행은 자유 여행. 앞선 글에서 찬찬히 공간, 음식을 풀어냈다.
그럼 이번엔 궁상맞지만 솔직히 제일 중요한 생존형 여행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옷은 빨아 입어야 하니까.
먹고 다녀야 하니까.
아프면 여행도 제대로 못하니까.
도시를 이동해 숙소를 옮기면 제일 먼저 주변 슈퍼를 찾는 일이다.
물 인심이 인색해서 식당에서 물 먹는 건 꿈도 못꿨다.
알아서 물을 수급해야 하니 숙소에 물을 잔뜩 사놓는 것은 필수였다.
그다음에는 옷을 어떻게 빨지 파악해본다.
매일밤 졸음을 참아가며 비누로 애벌빨래를 했다.
캐리어 안에 빨래는 무조건 잘 말려 넣어야 한다.
뽀송뽀송하게 안 말리면 냄새가 나니까.
운이 좋으면 라디에이터 위에 반나절 늘어놓으면 바싹 마른다.
안되면 어쩔 수 없이 드라이기를 써야 한다.
여행이 긴 만큼 짐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결국 일주일이 지나면 한 사이클 돌아 입고 대충 빤 옷을 입었다.
옷이 나보다 더 없었던 짝꿍은 욕조를 만났다 하면 빨래를 하기 바빴다.
(바닥에 튄 물은 내가 다 닦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제대로 옷을 안 행구면,
옷에서 반짝거리는 비눗물 코팅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나중에는 씻는 비누와 샴푸를 엄격히 관리하고 재단했다.
호텔 어매니티는 좋다.
그런데 다 쓰지도 못하고 가져오면 이 샴푸와 비누는 다 어디 가는걸까?
차라리 디스펜서에 있는 건 버리지 않을텐데.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며 뜯은 친구들은 가져왔고,
지금도 머리 감는데 쓰고 있다.
여담으로 가우디 투어를 갔을때 놀랐다.
아침 7시에도 풀착장으로 하고온 신혼부부들이 있는게 아닌가.
아마도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서였나보다.
우리는 제일 거지꼴이었다.
마트 구경도 열번쯤 갔다.
어느 과일이 신선한지 가늠하다가 겨우 골라 담고,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에서 이리저리 헤맨다.
그리고 과일과 물을 싣고 털레털레 숙소로 돌아오는 과정이 재밌었다.
사실 몇 번은 아니 대부분 실패했다. 어떤 자두는 지나치게 떫었고, 딸기는 씹는 감촉이 이상하고 새곰떨떠름하였다. 그래도 행복했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의 재미도 있다. 스페인 농산물 물가는 싼 편이라 생각했다.
내 뱃살만한 돼지 뒷다리살을 몇 유로에 파니 말이다.
숙소에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마트에서 사치를 부려도 좋겠다.
또 오렌지 착즙 기게에서 주스를 1리터 짜가면 3유로. 얼마나 행복했던지.
가끔 꿈에서 이마트에 이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었다고 좋아했었다.
다른 내용은 가물가물한데, 꿈에도 안 나오는데 마지막까지 나온다.
오렌지 한 덩이 덜레덜레 들고 오는 길에서 나는 저번 여행이 생각났다.
교환학생이 끝나고 간 마지막 뉴욕 여행이었다.
환전을 잘못해서 현금이 수중에 없어 곤란했다.
제대로 된 식당에서 끼니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
그래서 우선 당시 묵었던 숙소에서 계란과 식빵이 있다는 걸 파악했다.
그리고 파머스 마켓에서 신중하게 사과를 골라 매일 먹었다.
누군가는 관광지였을 유니언 마켓이 내겐 생존의 장이었다.
그리고 집 앞 델리에서 시리얼과 우유를 사 아껴먹었다.
아직도 그 시리얼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엔 없는 동글동글한 도넛 디자인의 치리오.
나중에 친구가 여행에 합류했을 땐 맛좋은 푸드트럭을 알려줘 한끼 해결했다.
그땐 맛있는 음식을 못 먹어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신기하리만치 재밌었다.
짝궁은 여행 내내 아팠다. 지사제, 소화제, 각종 연고는 내가 비상용으로 다 챙겼다.
그런데 구내염이 날 줄은 몰랐지.
며칠동안 점점 커질줄은 몰랐지.
결국 약국을 다섯번을 갔다.
안 통하는 영어로 더듬더듬 증상을 물어가면서 필요한 약을 찾았다.
그럴 땐 병명의 진단명(라틴어라고 추측)과 약 성분으로 이야기하는 과정을 거쳤다.
돌이켜보면 내 짝은 정말 대단하다.
나는 여행하며 외국에서 병원과 약국을 가는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통하지 않는 영어로 어떻게든 약을 가져온 사람. 이사람이면 어디 가서 죽진 않겠다 싶었다.
아무리 좋은 풍경이라도 아프거나 힘들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여행은 삶의 일부분이다.
위기 상황에서 대처하는 법을 배울 것.
내 삶을 꾸려가는데 필요한 물건을 정확히 인지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것.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게을러지는것.
이제야 한번 치뤄보니 익숙해졌는데 다음번엔 잘할 수 있을까.
너무너무 좋아했던 페이스북 페이지 중 "좋아서 하는 결혼식"이란 페이지가 있다.
그들은 결혼식 대신 좋아하는 도시인 교토가 가장 아름다운 4월에 방문했다.
그리고 음식을 해먹고 산책을 하면서 한달을 꼬박 지낸 이야기를 그 페이지에 담았다.
그 이야기 중 아름다운 도시 풍경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낯선 도시에서 산책하고 시장을 가는 소소한 일상을 꾸리는 점이 부러웠지.
다음번에 너와 꼭 그런 여행을 가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