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왜 한 시간 반이나 걸려서 남의 집에 간 걸까?
예전부터 오프라인 기반 공간과 모임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막상 방문해본 적은 많지 않다. 다양한 가게를 방문하자니 다음 손님 생각해 일찍 일어나야 할 것 같고, 모임을 가자니 나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것이 피곤해졌다.
더군다나 결혼 후 외벌이가 되고 세 번의 이직을 하게 되면서, 나는 급속도로 지쳐 방구석 집순이가 되었다. 문장 하나로 서술했지만, 그동안 내가 느낀 피로도가 너무 심했고 내가 누군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는 것조차 피곤해졌다. 글을 쓸 수 없었고 사람들을 만나서 내 이야기를 하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남의 집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추석 때는 친구의 자취방에, 설에 차모임 겸 선배의 신혼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차를 마시는 것은 어느 정도 괜찮았다. 적은 사람들끼리, 거실을 조용히 구경하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의 집 홈카페"가 그래서 반가웠다. 거실을 조용조용히 구경하면서도, 남의 서재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나이도, 직업도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반가웠다.
생각보다 먼 길이었지만, 호스트가 반갑게 맞아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책장에 있는 책들 중 재밌는 것들도 많아 보였고 전 세계에서 한 땀 한 땀 모았을 뮤지컬 팸플릿도 신기했다. 한참이나 서재를 기웃거리며 구경했다. 마침 몇 번이고 예약을 하려다 실패한 책들도 집어 들고, 읽고 싶었던 잡지를 찾아 읽게 되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책이 너무나 잘 읽힌다. 주말 내내 집에 있어도, 리디 셀렉트에도 책장에도 책은 잔뜩 쌓여있어도 책을 읽을 수 없었는데.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 우선 내 일상을 벗어났기에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집에 앉아있으면 빨래도 치워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있으니까.
아니면 다 함께 무언가를 집중해서 즐기는 그 "분위기" 였을까?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팸플릿을 살펴보고, 누군가는 그저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어쨌든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분위기는 혼자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니까.
세심한 환대 덕일지도 모르지. 집중하기 좋은 환경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세심하게 준비된 주전부리-달달한 비스킷, 귤, 향 좋은 티백과 커피-가 있었으니까. 남의 집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데, 안내사항이 적힌 오렌지색종이도 마련된 것이 좋았다. 카페면 언제 일어나야 하나 부담을 많이 느꼈을 텐데 그럴 걱정 없이 앉아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숲 속 서재는 또 가고 싶은 곳이다. 푸릇푸릇한 봄이 되었을 때의 모습이 궁금하다는 핑계로 티백이 맛있었으니 나도 맛있는 티백을 맛 보여드리고 싶으니까, 그곳에서 아직 다 읽지 못한 재밌는 책들이 많아 보였으니까.
덧붙여서 나는 무슨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방문 말미에 "남의 집 모임 개설"에 대해 질문을 드렸는데 자연스럽게 게스트들끼리 "남의 집 호스트가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재다능하거나&취미가 많으신 분들이 계셔서 재밌는 모임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그러자 나는 무슨 모임과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나는 또렷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을 초대할 만한 집이 아니라 생각해 모임을 연다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여러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설명하고 싶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 무엇일지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누구라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지, 내가 전달하고 싶은 모임은 무엇인지 말이다.
내가 방문한 모임은
https://www.naamezip.net/detail/217
다른 모임도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