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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살아남는거야

한박자 늦게 가서 뒤늦게 쓰는 프랑스 신혼여행기 (1)

by 소얀


애시당초, 기대감이 덜했던, 보너스트랙 여행


17년 3월의 스페인 여행이 모든것이 천국인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18년 설에 떠난, 신혼여행은 보너스같은 느낌이었다.

결혼하고 미처 신혼여행을 못 가서 내심 포기했었는데 감사하게도 가족 마일리지로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덕에 혼인신고도 일찍 했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기회가 된다면 무리해서라도 지중해를 다시 보고싶었다.

결혼 후 가장 휴일을 길게 쓸 수 있는 때는 설인지라, 선택권이 없었다.

유럽의 휴양지들은 겨울에 날씨가 구리거나, 혹은 비수기라 가게가 문을 닫는다 한다. 그래서 그나마 대도시고, 날씨가 좋을 것 같은 니스를 행선지로 골랐다.

더군다나 마일리지를 쓰는 경우 직항밖에 이용할 수 없으니, 자연스레 파리가 끼게 되었고.

이런곳도 저런곳도 귀찮고, 미술관만 보기로 마음먹었다.

니스 근처의 아기자기한 근교도시는, 결국 가지 못했다.

그렇게 얼렁뚱땅 정한 여행이었다. 그런지라 기대감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이런저런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데...


에피소드 1. 여행은 살아”남는”거야.

휴양지여서 상대적으로 호텔은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니스 구시가지의 에어비엔비를 빌렸다.

여행은 살아보는거야, 가 캐치프레이즈인 에어비엔비 아니던가.

결과적으로 에어비엔비는 바닷가도 정말 가깝고, 아침마다 장이 서며, 취사도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당시엔 자잘한 문제점들때문에 당황했었다. 남의 집을 빌리는 자유만큼 당황스러운 점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숙소를 다른 곳에 빌려야 하나"를 생각하게 되었을 정도로 조마조마했다. 접선장소에서 찾아낸 키가 열리지 않아 당황하기도 하고, 요리를 하다가 정전이 나기도 했었다. 특히 두꺼비집이 내려갔을땐 정말 당황스러웠다. 영어로, 불어로 두꺼비집을 찾아보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다른 숙소들을 미친듯이 검색하기도 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외에도 프랑스 분리수거 방법 등 자잘한 생활 문제에 부딪히기도 했다.


에피소드 2. 생존 프랑스어 익히기


고등학교 때 3년동안 프랑스어를 배웠다. 하지만, 머릿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느정도 눈칫밥이 있어서인지, 마트에서 상품 고르기, 메뉴판 고르기 등에서 아주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적어도 이 요리에 닭이 들어간다, 시장에서 파는 저 과일이 사과다, 이것은 솔트 카라멜 크레페다, 를 구글 번역기를 쓰지 않고 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 마트 여행은 더더욱 즐거웠기도 했다. 아직도 마트에 잔뜩 쌓여있던 크레페가 떠오른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내 삶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


그 외에도 여권 만료로 공항에서 여권 다시 발급받기, 프랑스에서 커터칼 찾기, 배탈 조심하기 등등 소소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저 더 큰 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무사히 돌아온 게 기뻤다.

어떻게 보면 생활감 물씬 풍기는 짠내나는 여행이기도 했다. 내돈주고 고생하러 왔는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낯선 곳에서 삶의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즐겁다.

처음 도착한 도시의 주변을 둘러보며 이 곳에서 밥을 먹을것이라 정하고, 눈여겨보았던 카페에서 빵을 사오고, 맛있으면 그 곳을 몇 번이고 가는 느긋한 여행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마 다음번에도, 휴양지가 아닌 도시를 여행하게 된다면 꼭 마트에서 조리를 해먹을 수 있는 취사형 숙소를 가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IMG_5999.JPG 탈도 많고 사건도 많았지만 니스의 우리집, 에어비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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