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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Feb 06. 2020

제 이름은 제가 정할게요

회사에서 닉네임을 갖고 일한다는 것

요즘 유튜브에서 검블유를 보는 중인데, “왜 주인공이 서로 영어 닉네임을 부르는가?”에 대한 질문이 댓글로 종종 달린 적이 있었다.

이런 닉네임 문화를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시작한 것은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라지만, 오글거린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재밌게 읽고 있는 “일의 기쁨과 슬픔” 소설집에서는 기껏 데이빗, 안나라고 닉네임을 지어놓고서는 “데이빗께서는…”이라고 말하는 부작용도 나온다.

어쩌다 보니 닉네임을 쓰는 회사에 두 번 연속 다니고 있다. 회사에서 닉네임을 갖고 일한다는 것. 닉네임 문화가 조직 문화에 끼치는 영향이라던가, 한글 이름 놔두고 영어 이름 짓는게 사대주의라는 이야기는 많이 논의된 것 같다.  1년 반동안 회사에서 “Yan(얀)”으로 살아본 이야기만 정리해보려 한다.


영어 이름을 지어본 적은 없었는데요.


2018년 5월. 회사에 입사를 앞두고 “이름을 정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박터지게 이름을 고민했다. 이제까지 영어 이름은 지어본 적이 없기에.

보통 영어 이름을 짓는 이유는 발음이 어렵거나 뜻이 이상하게 들려서라고 들었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영어 이름은 항상 남자이름이었기 때문에 반쯤 포기했었다.

가끔 스타벅스나 레스토랑에서 이름을 불러달라 말하면 앞글자를 아무렇게나 딴 “소이(soy)”라고 말했고. 그 외에는 그냥 “소연”으로 살았다.

그때만큼 이름으로 박터지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개명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내가 가게를 차리거나, 책을 쓰거나, 출산을 하지 않는 한 당분간 이름 지을 일은 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고른 이름은 “얀”이었다.


왜 “얀”이에요?


이름을 말하고 정말 많이 들은 질문이다. 동명 이름인 가수가 있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님 닉네임도 “김얀”이다. 이분의 경우 “경민”이라는 문신을 뒤집어서 잘못 읽은게 마음에 들었다고.

사실은 별명 중 일부에서 따온 것이다. 고3 모의고사때 이름 마킹 실수를 하게 되었고, 그러자 반에서 “소얀”으로 부른게 시초였다. 활동명을 짓거나 할때 “얀”이라고 쓰기 시작했고, 친구들 중에서는 “소얀”, “얀님”으로 불러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땐 몰랐지, 이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게될줄은.


얀으로 일한다는 건


먼저 다른 이름으로 사는 것은 꽤 근사하다. 위에서 언급한 장류진 작가의 단편에서는 주인공의 본명이 안나라 “안나”로 사는게 한이라고 한다. 주인공의 말처럼 “다른 이름으로 사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전 회사 사람도 말해주었는데, “일할 수 있는 하나의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이라 마음에 든다”고 했다. 어느정도 나와 일하는 나를 분리할 수 있다나. 그러니 출근하면 소연에서 “얀”으로 바뀌어 출근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는데, 택배 기사님이 애타게 찾아도 본명을 몰라서 아무도 모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이어진 인연은, 회사에서의 인연이 다하더라도 계속 닉네임으로 부르게 되곤 한다.


다시 이름을 고를 수 있을까?


회사에 있는 외국인 동료에게 물어보니, 단어로 닉네임을 쓰는 경우는 지양하는게 좋다고 했다. “얀”의 경우  중국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고.

좋아하는 가수 덕에 토리, 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데 가끔 만나는 강아지 이름이 토리.. 라 포기하기로 한다.


귀여운 시댁 강아지 토리. 너 덕분에(?) 토리는 못 될거같아.


참고로 이제까지 들어본 닉네임 중 다른 닉네임을 선택한 분들의 케이스를 살펴보자면…실제 사례에서 조금씩 변환하였다.

-그냥 자기 한국어 이름을 사용한 경우(ex. 소연이면 그냥 소연)

-이니셜로 줄여서 말한경우(박진영->JYP)

-소설이나 배우 등 유명인사(500일의 썸머가 좋아 썸머)

-보드게임에서 따온 경우(ex. 카르카손->카손)

나는 운이 좋아 이름을 바꿀 필요 없이 내가 원하는 이름을 지을 수 있었지만, 그게 불가능해 이름을 두세번 고른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정말 구성원이 많은 회사(카카오나 쿠팡이 그렇다고 한다)는 자기 맘대로 이름을 못 골랐겠다 싶다.  회사 구성원이 늘어날 수록 이름이 동날 텐데, 이럴 땐 어떻게 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카카오에 다녔던 분들에게 물어보니 그냥 xx부서의 A, xx부서의 B로 구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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