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과 감정을 보듬었던 여덟권의 책
머릿속이 복잡하면 책이 읽히지 않는다. 그럴때 주로 에세이에 기댄다. 소설의 경우 그의 서사를 이해하고 몰입하기까지의 과정이 걸리므로, 주로 에세이를 읽게 된다. 1월에 읽은 감성적인 책은 여덟 권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임경선이,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인 하루키에 대해 깊게 . 얼마나 좋아하면 중간에 가상 인터뷰까지 재구성했을 정도이다. 소설가에 대한 인상과는 다르게 그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현재 건강 때문에 허우적대는 나로서는, 그의 생활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느꼈다.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글을 써준 덕이라 생각한다. 부족한 재능으로 글을 쓰다 막막해지면 다시 한 번 일어서서 걸어나갈 힘을 얻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라는 인간 본연의 선의도 품게 된다.
이건 아마도 하루키에 대해 작가가 평한 말일 게다.
마스다 미리의 작품을 읽다보면 울리는 귀절이 있어서 잔뜩 사진을 찍거나 타자를 쳐서 저장하게 된다. 책이 읽히지 않는 나날이나,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날엔 그녀의 에세이를 집어들게 된다. 그녀의 만화 대부분이 주인공을 내세운다면, 에세이에서는 소곤소곤 귀가에 대고 속삭이는 듯한 그녀의 일상생활과 삶의 자세를 엿보는 느낌이다.
어느 순간, 그녀에게는 돈이 돈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좇는 가치를 투영하게 되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돈에 다른 가치를 반영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인생학교의 구절이 생각났다. 돈을 통한 관계의 유지, . 우리가 빠지기 쉬운 위험을 경고하는 책이다. 일류 호텔도 아무렇지 않았던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방콕의 카오산 로드의 게스트하우스의 방 한칸에 칩거한다. 차라리 그건 그녀에게 자유였다.
돈을 버는 것에 나의 능력 등 다른 추상적 가치나 감정을 부여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 다시금 느낀다.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한 내가 느끼는 무력감도 그것때문이다. 돈에 대해 좀더 단순하게 생각해야지.
가을방학의 보컬인 계피가 자신의 본명을 걸고 써내려간 구절. 노래같은 구절. 어스름하지만 따뜻한 겨울 햇살 속에서 산책하는 기분에 관한 글이 중간에 있는데 이 책은 그 글의 느낌을 닮았다.
나 혼자라면 이대로도 나름대로 괜찮은데 너와 함께라서 나는 나를 바꿔야 하는 걸까 고민하게 돼.
멀리서 반짝이는 희망의 빛이 아니라 정말 지금만 볼 수 있는 빛이라는 느낌이었다. 조그맣고, 떨리고, 곧 사라져버릴 것 같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렇게도 추웠던 건 농담인 것처럼, 비현실적인 햇빛, 비현실적인 다정함. 몇 달간을 붙잡고 진이 빠지게 노력하던 일들은 순식간에 낡아빠진 무언가가 된 것처럼.
임경선 작가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을 읽고 시작했던 책이다. 재즈 부분은 건너뛰고, 에세이나 서문들은 짬짬히 열심히 봤으며, 번역 부분은 재밌어 죽는 줄 알았다. 일본인이 되어 그가 번역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싶다!
당신의 연주는 어떻게 그렇게 특별하게 올리나요. 라는 질문에 그는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이름은 어디에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행은 이미 그 안에 들어서 있지.(...)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퍼지지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워담는거야.
사회인이 되어 적당히 알게 된 사람의 결혼식을 갈 때마다 경악한다. 내 결혼식을 끝까지 지켜봐 주지 않는 하객이라면 소용이 있을까 싶어, 혼인신고만 올리고 싶다. 그런 내게, 결혼식을 해도 좋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전해준 이 책이 좋았다. 기존 결혼식에 대한 환멸과 결혼식에 대한 로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로선 이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찬찬히 읽었지만, 자신다운 결혼식을 읽는 것 자체가 좋았다. 아래는 스몰웨딩에 대한 저자의 브런치.
https://brunch.co.kr/@ansunhee/10
그리고 오마이뉴스의 가장 나다운 결혼식 연재도 추천할만하다.
http://www.ohmynews.com/NWS_Web/Issue/series_pg.aspx?srscd=0000011343
현재 참석중인 산책에서 추천받았던 에세이. 그가 해석한 영화는 알던 영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만들며, 모르는 영화는 보고싶어 못 견디게 만든다.
해석은 일종의 창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지만, 잠재적 유에서 현실적 유를, 감각적 유에서 논리적 유를 창조해낼 수 있다. 정답과 오답이 있는 건 아니라 할지라도, 더 좋은 해석과 덜 좋은 해석은 있다.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만 한다고 느낄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체험을 어떤 식으로건 서사화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디지털 정리의 기술(이임복, 2014; 한스미디어)
솔직히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는 나로서는 디지털 기록을 정리하는 것이 고역이다. 찍어놓은 사진들, 어지럽게 놓인 파일들, 폰을 바꾸면 사장되어버린다. 디지털 정리술사인 그의 기록은 차라리 의식에 가깝다. 온오프라인의 독서와 저장을 넘나드는 그의 행위는 언뜻 보기엔 복잡하지만, 지식 노동자로 먹고사는 그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텍스트 중독자이자 서비스 기획자를 지망하는 나는 나는 텍스트를 공유하고 저장하는 궁극의 방법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게 된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를 다시 꺼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