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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Jan 30. 2021

내가 사랑하는 동네도서관

17년차 남산도서관 사용자이자 전직 사서지망생의 사랑고백

1월 28일은 기쁜 날이었다. 코로나 단계가 완화되면서 남산도서관이 다시 열린 뒤 처음 가보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확한 재개관일은 19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일주일 넘게 늦게 다녀왔다. 고맙게도 남산도서관은 휴관한 시점에도 주간예약대출 및 택배대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이용자와의 연결고리를 놓지 않아준 도서관에 속한다. 이런 작업들이 얼마나 많이 손가는일인지 아는지라 그저 고맙기만 했다.


도서관 가기, GRWM

오랜만에 도서관 가는 "법"을 실천하니 설렜다. 일단 가기 전 반납할 책을 챙긴다. 욕심이 많아 일곱 권을 빌린 나 자신을 자책하며 책을 가방에 쑤셔넣는다. 아무리 에세이 위주라 얇다 해도 일곱 권이면 택시각 아닌가 투덜거리면서 버스를 탄다. 집에서 도서관까지는 버스로 40분정도 걸린다. 서울역까지 나가서 남산도서관행 버스 402번을 타야 한다. 버스 안에서 아직 못읽은 책은 부지런히 읽고,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을 앱에서 검색하면서 간다. 대출된 책은 예약도서를 걸어둔다. 예약도서는 세 권까지밖에 안되서 아쉽다 생각하면서. 참고로 나같은 사람이 많은지 예약희망도서를 미리 저장해둘 수 있는 찜 기능같은걸 구비해둔 홈페이지를 본 적이 있다.


남산도서관은 경우 각 주제별로 자료실이 나뉘어있기 때문에 책을 어디에 반납해야하는지 헤맨다. 총 5층의 건물이 있고 3층이 문학실과 독서치료/어학실, 4층에 인문사회과학실과 자연과학실이 있다. 도서관에 들어가 검색해둔 책을 찾아 헤매고, 이 책 지금 안 읽고싶으면 제끼고, 괜히 옆에 꽂힌 책도 한 번 본다. 동선을 잘못 짜면 3층과 4층을 부지런히 오가야 한다. 이렇게 헤매다보면 책을 빌리는데 대충 3-40분은 걸린다. 도서관을 나와 걷는데 갑자기 알림톡이 와서 보니 예약했던 책이 왔단다. 돌아가는 길이지만, 딱히 급한 마음이 아니므로 일단 기쁜 마음으로 한번 다시 갔다온다. 이렇게 오가면서 가끔 날이 좋으면 남산에도 감탄하고 창밖의 풍경에도 감탄해줘야 한다. 아, 남산타워가 있는 전경이 궁금하면 3층 독서치료/어문학 자료실을 방문하길 추천한다. 셔터 누르기에 눈치보여 못 보여드리는게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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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오늘도 책을 잔뜩 빌렸다. "책은 집중할 수 있는 단 한권만" 빌려 내 어깨와 목을 보전하기엔 내 책 욕심이 많은가보다. 도서관에 오는 날은 기뻐진다. 부산스럽고 호들갑스러운 애정을 글에 꾹꾹 눌러 담아 써봐야겠다. 15년째 나의 친구가 되어준, 내가 사서가 될 뻔하게 만들었던 나의 동네도서관, 남산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1오랜만에 도서관 가면서 감격스러워서 찍었던 전경. 인스타에 주접떨어야지..
2층에 새로 생긴 북카페에 앉아있으면 보이는 전경. 남산 구경하기엔 명당. 
자료실 위치에 따라 도서관 뷰가 이렇게 시원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대략) 17년차 사용자의 사랑고백

나의 본가는 도서관 명당 후암동이다. 나는 스물여덟에 결혼해 옆동네로 이사오기 전까지 후암동에 살았는데, 후암동은 서울역 뒤편 평지 구역과 남산 아래 언덕이 심한 구역 두 곳으로 나뉜다. 이 경계가 되는 곳이 후암시장쪽이다. 남산 아래라 언덕이 심한 구역에도 장점은 있으니, 도서관이 두개나 되는 곳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사실 용산구 내 도서관이 전부 한 동네에 몰려있는 건 솔직히 행정계획이 뭔가 잘못되었다 싶지만 어쨌든 나에겐 특권같은 일이었다. 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던 용산도서관을 시작으로, 중학교 때 드디어 구십계단의 벽을 넘어 남산도서관에 진출하였다. 후암동 기준으로 용산도서관은 가깝지만 괜히 남산 가까이에 있는 남산도서관은 멀게 느껴졌다. 남산도서관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주말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항상 5층 자습실에서 문제집 풀다가 슬쩍 세 시간정도 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돌아오곤 했었다.


이후 나는 한참 사서가 될 생각으로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했고, 학교에 없었던 실습 대신 여러 도서관에서 일해본 적이 있었고, 그래서 주말아르바이트도 한 곳이다. 사실 공공도서관 업무의 핵심은 사무실 쪽 - 구매, 목록, 예산, 기획 등 - 이 진짜라 생각하는데 물론 이쪽에 얼씬도 못했었다. 그래도 잠깐 앉아서 코라스(KORAS)는 도서관 프로그램도 다루고 연체자에게 전화를 건 적도 있었다. 남산도서관 1층 엘레베이터 뒤에는 벽화가 한 점 있다. 주말 아르바이트 하면서 화가 아저씨가 작업하는 걸 구경하곤 했었지. 남산도서관의 책 수레에 찍혀서 발등을 까진 적도 있고 말이다. 그때부터 십 년이 지났지만, 나무로 만든 수레는 변하지 않았다. 번호대로 꽂히지 않은 책은 잃어버린 책이 되니까,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책을 찾아헤맨 일이 많았다. 가끔 시간이 남으면 책의 순서가 잘못되었는지 전수조사하기도 했다. 그때의 버릇이 남아있어서, 지금도 남산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서가에 순서가 잘못된 것이 보이면 슬쩍 변경해둔다.


진학할 때의 마음과 다르게 나는 사서가 되는 대신 IT 업계를 택했다. 사서는 계약직 적체가 심각한 직종이었고, 안정된 사서로 일하려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IT 분야 재직 이후 재취업하는 길밖에 없다는 조언을 들었었다. 나는 후자를 택했고, 결국 IT 직장에 눌러앉았고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왜 눌러앉았는지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해보도록 하자).


직장인이 된 이후에도, 점점 답이 없는 문제가 많아 막막할 때마다 필요한 서가를 헤맸다. 여행이 간절했을때는 980번대를. 대기업이 아닌 다른 삶이 있을까? 싶었을때는 325번대를, 도서관에 대한 책이 궁금할때는 020번대를. 사용자 경험 대학원 진학을 고민할 때는 005번 대를. 일본 수필을 좋아했을 때는 834부터 838까지를. 분류 수업때 외웠던 한국십진분류법(KDC)의 제목들이 내 삶의 해답을 찾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나는 많이 잊어버려서, 자주 가는 카테고리 외에는 대분류만 기억하는 편이다). 나는 그렇게 서가에 서서 멍하니 제목을 응시하는 것이 좋았다. 언제가 되었건, 누워있는 책들에 비해 책 표지를 볼 일은 적지만, 빼곡히 꽂힌 책등 제목과 함께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나에겐 동네도서관이지만 사실 남산도서관은 꽤 괜찮은 도서관이 맞다. 1920년에 개관한 경성부립도서관을 전신으로 할 정도로 역사가 긴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서고에서 백년된 책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러고보니 도서관 아르바이트할때 가끔 서고로 들어갈 일이 있었는데, 솔직히 좀 무서웠다.

또, 남산도서관은 장서수가 꽤 많다. 절대적인 수치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2020년 말 기준으로 홈페이지에 공개된 현황에 따르면, 단행본(책) 40여만권, 비도서(오디오 및 DVD/블루레이를 의미한다) 16000점과 연속간행물(잡지) 900 종을 갖추었다. 실제로 남산도서관은 정기적으로 매우 많은 책을 구매하므로 신간도 자주 볼 수 있고, 비교적 최신 기술인 IT쪽 서적 라인업도 괜찮다. 좋은 잡지들도 많이 구매한다. 즉, 왠만하면 책을 없어서 못 빌리는 경우는 없고, 필요하면 희망도서로 신청하면 되니 괜찮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서울시 전역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그건 나도 다르지 않아서, 결혼하고 옆동네에 이사간 지금도 도서관에 간다. 사실 본가에 가는 김에 도서관을 가는게 아니라 도서관을 가는 김에 본가를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버스를 갈아타고, 책 여러권을 짊어지고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갈 수 있는 여러 도서관이 있었다. 고등학교때도 도서실도 있었고, 대학교 도서관도 장서수가 많기는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집 근처에도 도서관은 있다.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나는 남산도서관으로 계속 오게 되었다. 17년동안 남산도서관을 들럭거리면서 책의 배치도, 장서도, 오가는 사람들도, 직원들도 변했다. 건물이 오래된지라 몇 번 개보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여전히 남산도서관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서관이다.

앞으로도 나는 도서관이 가까운 곳에 살고 싶다. 솔직히 지금처럼 버스 한 번 갈아타고 40분도 멀다고 생각한다. 본가에서는 걸어서 10분 거리였는데, 30분까진 봐줄 수 있다. 한편으론 남산도서관을 대체할만큼 좋은 도서관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아니, 사실은 남산도서관만큼 정을 줄 수 있는 도서관을 찾을지 고민하면서.

(사실 눈여겨보고 있는 곳은 국내 최대 사설공공도서관 "느티나무 도서관" 보유 지역 용인시 수지구였고,도서관 바로 옆동네로 이사갈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수지구가 다시 비싼 동네가 되어버렸다. 아마 도서관 덕은 아니고 다른 이유 탓일것이다..)

얼마전에 갔더니 북카페처럼 꾸민 공간이 생겼는데 해방촌 독립서점(고요서사, 별책부록) 서가를 만들어두었다. 딱히 도난방지시스템이 없어서 관리가 잘 안될까봐 걱정됨

PS. 용산도서관과 남산도서관이 용산구의 유일한 도서관이었던 건 한동안 미스터리였다. 이후 구립도서관이 생겨 이 문제를 해소한 건 채 이제 겨우 10년이 넘은 일이었다.찾아보니 남산도서관 건너편에 용산도서관이 생겼던 연유는 신군부가 공화당 청산을 공화당사였던 건물을 도서관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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