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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Jul 17. 2021

쉬어보려는 이야기

산책과 요리 새벽의 시간들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 지인과 만났을 때였다. 우리는 이태원 구석에 있는 샐러드집에 만났다. 밥을 먹고 날씨가 무척 좋아서 조금 걸을까요, 라고 말한 뒤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순천향병원을 지나 한남오거리까지 쭉 내려갔다. 중간에 스틸북스가 문을 닫았단 슬픈 사실을 발견했다. 한남오거리에서 나인원한남을 지난 뒤 육교들을 지나 다시 한강진역 근처로 올라왔다. 이태원을 중심으로 크게 한 바퀴를 돈 것이다. 우리는 걷는 순간을 무척 좋아했고 이렇게 걸을 수 있어서 좋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지인과 헤어지면서도 왠지 버스를 바로 타고 싶지 않았다. 이태원부터 전쟁기념관까지 걸었다. 금요일의 이태원은 흥성거렸고 모임을 파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넘쳐났다. 녹사평역을 지나자 미군기지 옆의 큰 가로수들이 보였다. 유난히 눈이 까맣고 덩치가 큰 강아지가 나에게 달려들어 애교를 부렸다. 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걷기 좋은 날이어서였는지, 새로운 길을 걸었기에 구경할 것이 많아서였는지 오랜만에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많이 걸었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만보가 넘지 않아 신기했다. 산책이 때로 무언가를 발견하는 모험일수 있겠다 생각하며, 새로운 길을 부러 산책해야겠다 생각했다.


산책을 하던 중 그는 나에게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시나요? 라고 물었었다. 사실 그 답은 내가 찾고 싶은 질문이었다. 입사 초반에는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아래와 같은 루틴을 지키려 했었는데,  입사 두달이 지난 뒤 일 부자가 되어 루틴을 잃어버린지 오래였으니까.

요즘 의도적으로 출근시간을 앞당겼다. 아침 8시 45분에 판교에 도착할 수 있도록 조정해두었다. 몇 번의 치밀한 계산 끝에 6시 45분에 일어나 한 시간동안 준비 후 호다닥 나간다. 준비 시간은 다음과 같다. 아침 약과 영양제먹기(1분) - 20분 스트레칭 - 15분 아침식사 - 옷입고 준비하기 15분 등. 시간남으면 10분짜리 집안일 하나. 이러다보면 몸이 예열되는데, 저걸 지키다보면 퀘스트를 빠릿하게 하는것같기도 하고 재밌다. 재택을 하는 날에는 조금 느긋하게 자고, 부족한 걸음수를 채우려 부러 산책한다.

-내일 더 잘 뛰기 위해서


사무실에서 일할 때 아홉시에 도착하는건 맞는 말인데 도착하면 딴 길로 샐 겨를 없이 마음 급히 후다닥 사무실로 향한다. 사실 그때 간다고 일을 바로 할 수 있진 않지만, 조금이라도 일에 풍덩 뛰어들 수 있는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테니까. 재택을 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잠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뒤 책상에 앉는다. 고민할 시간이 된다면 일곱시라도, 여덟시라도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때는 대답을 잘 못했었다. 요즘 스트레스가 잘 풀리지 않으니까. 정말 기력이 없으면 생각을 지우기 위해 누워서 하릴없이 웹서핑을 하지만, 이렇게 하루종일 누워있는 날은 결국 목도 허리도 비명을 지르고, 기분도 좋지 않다. 자극적인 배달 음식이 땡겨서 배터지도록 먹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것과 비슷하다.


몸과 마음을 소홀히 해서였을까, 요즘은 이 친구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가 있다.  그들이 버겁다.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숨이 차고, 일자목에 시달리고 있다. 살이 쪄서인지 가끔 무릎도 시큰거린다. 몸을 조금만 눌러도 아프다. 아프지 않았던 때가 기억나지 않는다. 이마에 트러블이 많아졌는데, 아마도 종종 씻지도 못하고 잠든 때가 많아서 그런게 아닐까 한다.  앉아서 글을 쓰는 지금도 목과 허리가 조금씩 아프다. 계절이 바뀔때마다 호되게 앓는단 생각도 든다. 지난주 며칠동안 속이 미식거렸는데, 아무래도 냉방병이 왔던것 같다. 이럴때마다 이렇게 안 좋은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 50년을 더 살아야 하나, 숨이 턱 막힐때가 있다.


몸에 대한 통제를 잃다보니 마음 한켠의 복잡한 생각도 다스려지지 않는다. 받지 않은 응답이 신경쓰이고, 오늘 했던 말을 후회하며 이불킥한다. 그러니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이사 문제가 신경쓰여서 머릿속이 잡생각들로 엉킨다. 가지치기하지 않으면 무섭게 불어나는 넝쿨처럼 머리를 옭아맨다. 가끔 이 생각들이 그저 탁, 하고 멈췄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뛰고싶단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뛰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도, 정말 간절하게 생각을 끊고 싶은가보다.


나는 그날 지인과 했던 산책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 주에 30분 이상이라도 걷고싶어서, 이를 간절히 바랐던 기억이 난다. 물론 점심시간에 종종 한 바퀴씩 돌고 들어갔지만, 30분 이상을 쭉 걷는 건 확실히 다르게 느껴진다. 좋아하는 거리를 멍하니 걷다보면 생각이 줄어들때가 있으니까. 이번주에도 퇴근할때마다 집에 컴퓨터를 놔두고 걸어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밥을 먹으면 쉽게 지쳤고, 그대로 한두시간 멍하니 있다가 잠든 적이 많았다.


아, 시간이 된다면 하루종일 요리만 하기도 한다. 어제 그리고 오늘 냉장고를 열고 하루종일 요리를 했다. 어제 저녁엔 당근을 깎고 양배추, 양파, 감자, 토마토를 써서 야채 수프를 만들었다. 오늘은 단호박을 굽고 당근과 오이, 토마토를 썰어 당근라페와 오이토마토샐러드를 만들었다. 저녁엔 감자, 애호박, 팽이버섯, 숙주와 돼지고기를 넣고 무수분 된장찜을 만들었다. 출근을 앞둔 일요일 밤, 아마 당장 해먹지 않을 음식을 한소끔 해둘 것이다.


아침에 이것저것 하는 시간도 도움이 된다. 생각이 많아 눈이 일찍 떠지는 날에는 작정하고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기도 한다. 언젠가 새벽 세시반에 눈을 떴는데, 잠이 안 왔다. 한시간을 뒤척였지만 똑같았다. 아침도 차려먹고 며칠동안 밀린 일기도 쓰고, 책도 뒤적이다가 오랜만에 스트레칭을 했다. 사실 스트레칭이라기보단 몸부림에 가까웠지만. 물론 그날 하루 컨디션은 망쳤다. 네시쯤부터 졸음이 쏟아졌고 퇴근할땐 거의 졸면서 들어왔다. 그래도 오랜만에 했던 일들 덕에 여유를 느꼈다.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하면서" 생각을 잊으려 하는듯하다. 기력이 없으면 가만히 누워있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부산하게 무언가 해낸다.


이제 한 달에 한 번은 쉬어가려 한다. 회사에는 소정근무시간을 다 사용하고 별다른 일이 없으면 초과근무하는 대신 휴식을 택할 수 있다. 물론 일이 많아 초과근무가 있는 경우도 많다... 즉 연차휴가 안 쓰는 휴식을 주로 오프라고 부른다. 저번달에 반차를 쓰고도 초과근무가 많아서, 쉬어갈 겸 오프를 써봤다. 그날 아침 배포가 있어 여기까지 함께 참여하고 뻗었다. 별것 하지 못했고 내내 잠만 잤지만, 쉬어가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이번달에도 가뿐히 소정근무시간이 넘어갈듯한데, 급한 일이 없다면 오프를 써야겠다. 숲이 내려다보인다는 카페를 찾아가거나, 미술 전시를 보거나 해야지. 코로나 4단계인 이번달의 오프는 어떻게 보내는게 좋을까. 들춰보지 못했던 책 한장을 읽어야겠다. 밤에는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걷고 요리하는 시간을 보내야지. 이번 오프땐 부디 무사히 지나갈 수 있기를.


+지난달 써두고 코로나도 무더위도 심해졌습니다. 산책이 가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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