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이름이지만 내겐 하나뿐인
3월 초에 일주일간 털뭉치 한 마리가 집에 와 있었다. 사실 봄도 왔으니 그동안 못 가본 곳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이녀석이 있는 동안은, 집에 꼼짝없이 있을 듯 하다. 안타깝게도 이 친구의 이동장을 챙기지 못했다. 별수 있나, 걸어서 산책시켜야지.
이름은 토리, 3kg였는데 조금 살이 쪄서 3.4kg. 포메라니안으로 추정되는 생김새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잘 모른다. 귀여우니까 됐다. 갈색의 털빛깔 때문에 산토리 위스키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도토리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사실 토리는 내 강아지는 아니고 가족의 강아지다. 토리는 2018년부터 시댁에서 키우기 시작한 강아지다. 나이는 이제 세 살. 오랜시간동안 펫샵에서 팔리지 않아 유기동물 앱인 포인핸드에 올라왔다고 했다. 이를 본 시누이가 데려왔다고.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쭈구리 감성이 있는 친구였다. 가끔은 불안해하면서 빙글빙글 도는 경우도 잦았다. 만약 우리 가족에게 입양되지 않았으면 안락사되거나, 개농장에 갔을까? 그 이후 나는 펫샵의 강아지들을 더이상 꼬물거리는 귀여운 존재로만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원래 털짐승이 집안에 있는 걸 낯설어했다. 그래서 처음에 우리집에서 토리를 맡았을 때 절대 방에는 안 들이고 거실만 있게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게 될 리가 있나. 토리는 문을 닫아두는 걸 싫어해 문을 닫을때마다 짖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마음약한 주인이었다. 결국 토리는 맡은지 2일만에 침대위까지 점령하고 갔다. 키가 작아 안아서 들어올려줘야 하는데 폴짝 하고 뛰어오른 것이다. 그리고 나와 배우자의 마음을 녹여버렸다. 토리가 돌아간 이후 2주 동안, 아무리 청소하고 빨래해도 토리의 기다란 털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마치 토리에 대해 우리들이 느끼는 존재감같았다.
3년간 다섯명의 인간에게 사랑을 듬뿍 받아서인지, 토리는 표정이 밝아졌다. 자기가 사랑받는걸 알아서 어이없이 당당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집에서 간식을 잔뜩 먹여서인지 사료는 거들떠도 안 보고, 먹다가 질리면 간식을 뱉어버리고, 종종 사람 위에 올라가기도 한다. 내가 먹으려고 삶은 단호박을 한 줌 주니 먹지도 않고 떨어뜨린다.
코로나가 지속되며 시댁에 못 가자, 나는 토리앓이를 했다. 산책을 하면서 종종 포메라니안을 보면 사랑에 빠졌다. 저 친구 토리 닮았는데, 토리보다 작은데, 토리는 갈색인데 쟤는 네눈박이네 등등. 사실 그래서 이번에 데려온 것이다. 내내 끼고 있고 싶어서. 털 날리는 걸 싫어한건 옛날 일이고, 이젠 털속에서 그냥 살기로 했다. 토리가 돌아가면 청소하고 빨래하면 되니까. 아, 그러고보니 강아지가 아예 상주하는 집에서는 털은 신경 안 쓰고 그러려니, 하고 산단다.
토리를 이렇게 데리고 있으니 새로운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자기랑 놀아달라고 장난감을 물고 오더니, 정작 내가 쫓아가면 탁자 밑에 숨는다. 장난감을 던져주려고 하면 귀를 뒤로 바짝 눕히고 컹컹 짖으며 빙글빙글 돌다가 장난감을 던져주면 정작 어디간지 몰라 헤맨다. 또, 가끔 깡, 짖어서 자기를 바라보면 앞다리를 쭉 펴서 기지개를 편다. 침대에 올려주면 누울 자리를 찾아 이곳저곳 헤매다 내 옆에 착 앉는다. 그러다가 꾹꾹이 하듯 나와 배우자를 밟고 다닌다. 토리는 꼭 우리가 식사를 할 때는 무릎을 짚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조금이라도 나갈 낌새를 보이면 산책가는 줄 알고 어쩔줄 몰라하지만, 정작 40분 이상 데리고 산책하면 지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그 이상 가면 귀찮다고 안아달라고 보챈다. 고기 간식이 제일이고 단호박과 배추는 거들떠도 안 본다. 하지만 사람이 먹는 건 궁금해서 안달낼 때가 많다. 사료를 먹을 때 꼭 한두개씩 주워서 다른 곳에 숨겨두기 때문에 잘못해서 밟은 사료가 가루가 되어버릴 때도 있다. 구석에 숨는걸 좋아해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찾아보면 탁자 밑이나, 외투를 걸어둔 행거 아래서 발견되기도 한다.
우리는 토리와 놀아줄때 어린아이가 된다. 배우자는 토리를 놀래키겠다고 바닥에 무릎을 대고 엎드린채 펄쩍펄쩍 뛰기도 했고, 나는 토리 앞에서 어릿광대처럼 춤을 춘다. 숨바꼭질을 할 때 주의를 끌려고 그런다. 토리가 짖는데, 도대체 왜 짖는지 모를때 나도 같이 짖는 시늉을 할 때도 있다. 혹시 이러면 제압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전혀 효과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볼때마다 서로 혀를 끌끌 차며, 누가 누구랑 놀아주는지 모르겠다고 디스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귀여운게 전부는 아니다. 누군가를 키우는 건 책임이 따른다는걸 어렴풋이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사료와 물을 챙겨주는것이 다가 아니었다. 외롭지 않도록 자주 안아주고 놀아줘야 한다. 현관을 나갈때 산책가는줄 알고 신나할 때 달래줘야한다. 사람들만 놀고있으면 샘을 내서, 소파나 침대에 안아 들어올려줘야 하고. 숨바꼭질 한다고 침대나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가면 이것도 적당히 상대해줘야 한다. 이틀에 한 번 칫솔질도 빼먹지 않아야 한다. 안 그러면 스케일링을 해야 한다고 한다. 눈물도 닦아줘야 한다. 산책을 갈때는 챙길것도 많다. 장갑, 만약을 대비한 비닐봉지, 칭찬해줄 간식을 챙겨야 한다. 그리고 목줄뿐 아니라 신발도 신겨줘야 한다. 멋이 아니라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다. 강아지의 발톱이 약해서 자주 다치거나, 제설한다고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린 날에는 신발을 신겨야 발 보호가 된단다. 이걸 챙기다보면 족히 15분은 걸린다. 산책할때도 신경쓸게 많다. 쫄보가 다른 강아지랑 부딪히지않는지, 자전거나 사람에 부딪히진 않는지. 가끔 똥오줌도 치워줘야 한다. 배변훈련의 연속으로 제자리에서 볼일을 보면 매우 크게 칭찬해주고 간식을 줘야 한다. 뭐, 그래도 자리는 가리는게 어딘가. 이상한거 안 주워먹고 전선 끊어놓지 않아 다행이다. 그 외에도 내가 책임지는 강아지라면 발톱도 깎아줘야 하고 목욕도 빡빡 시켜야 하고, 필요하면 매일매일 투약할 수도 있어야 한다. 아직 견습 주인정도 될 나는 아직 여기까지 신경쓸 필요는 없지만. 책임감이란 그런 거겠지.
토리는 얼마나 살게 될까? 반려동물의 수명은 이제 길어야 15년인데 그동안 토리가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토리는 작고 작아서 사료 반 줌도 겨우 먹는다. 사실 몸집의 절반은 털빨이고, 털을 잡아보면 정말 얼굴이 한 주먹도 안 되니까. 뒷다리를 만져보면 너무 약해서 부러지지 않을까 겁이 날 정도다. 실제로 이미 한 번 다리가 부러진 전적이 있는 녀석이다. 아주아주 만약에 토리가 어디도 갈 곳이 없어진다면 그땐 데려와 책임지게 되지 않을까. 뭐 앞서 말했듯 초보 견습주인이니 아직 머나먼 일이겠지만 말이다.
"정을 주지 않을 것이다", 양어장에 나타나는 고양이한테 먹을거 주다 정들어버린 100만 유튜버 ha haha가 영원히 놀림받은 대사다. 아마 정을 주기 무서웠겠지. 양어장을 하는 그에게 고양이는 이리저리 스쳐가는 인연이니까. 하지만 그 또한 정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비디오만 봐도 느껴진다. 먹을 것을 챙겨주고, 이름을 붙이고, 고유한 추억을 비디오로 차곡차곡 쌓고, 아픈 고양이를 데려다 치료하고 집까지 지어주었으니. 나 또한 토리에게 정을 줘 버렸다. 데리고 산지 이틀만에. 그러니 정준지 3년이 넘었단 말씀. 아마 이 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널때까지 다른 강아지는 못 키울것 같다. 이미 마음속에 담아둔 녀석이니까. 토리는 흔한 이름이지만, 내가 아는 토리는 고유한 하나의 토리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