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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Jan 02. 2022

사서가 되지 못한 채

사서가 될뻔한 IT 업계 기획자의 고백

소개글에도 있는 것처럼 나는 "사서가 되려다 IT 분야에 눌러앉은" 사람이다. 즉, 나는 문헌정보학과 졸업생이고, 2급 정사서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면허는 훌륭한 장롱면허가 되었다.


한때 사서가 되고싶어 문헌정보학과에 갔지만 IT 분야에 눌러앉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본다.


한때는 사서를 정말 하고 싶었지만


나는 사서가 되고 싶어서 문헌정보학과에 갔다. 동네에 꽤나 훌륭한 도서관인 남산도서관이 있던지라, 서 15년동안 훌륭한 도서관 덕후로 거듭난 나는 자연스럽게 나는 사서가 되고 싶었다(자세한 이야기는 이전 글에 있다).


사실 고3때 진로를 정하고나서부터는 대학교 3학년때까지 내 일상은 오로지 사서 되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원래 3-4학년때 열려야 할 도서관 실습 프로그램이 없어서 나름대로 어떤 도서관에 갈지 고민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1학년때부터 공공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고, 미국대사관 도서관 공보실 산하 자료실에서 인턴을 했다. 도서관 봉사활동을 다녔고, 도서관에 대한 공모전도 참가했었다.


다른 교재들은 다 없어지고 사서자격증과 참가상 받았던 논문집만 남았네.

하지만 3학년이 되자 취업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들어보니 사서는 계약직 적체가 심각한 직종이었다.


안정된 사서로 일하려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IT 분야 재직 이후 대학도서관 등으로 재취업하는 길, 혹은 교원과정을 밟아 사서교사 임용시험에 도전하는 것밖에 없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공무원 시험은 준비하고 싶지 않았고, 사서교사의 임용 가능 수는 정말 적었다.


"대기업의 IT 계열사로 취업하는게 낫지 않을까? IT 시스템에 대해 알고있으면 나중에 도서관 올 때 경쟁력이 될것 같은데."


나는 2011년에 들은 조언을 기점으로 나는 IT 분야로 취업하기로 결심했다. 조언해준 선배 또한 그 길을 밟아오셔서 대학도서관에 안착하셨는지라, 나는 대기업의 IT 계열사(그룹사들의 IT업무를 처리해주는)로 취업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도서관에 다시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겐 1)장롱면허가 되어버린 2급 사서자격증 2)CC로 만나 결혼한 남편이 남았다.(남편도 장롱면허가 되었다)



사람들이 내 전공을 들으면 의아해하지만, 사실 의외로 문헌정보학은 IT 기획자가 될때 꽤 좋은 접근법이 되어주는 것들을 주워들을 수 있다. 정보검색의 이론과 User interface, 데이터베이스의 개념에 대해서 배웠으다. 기초과목에서 무려 파이썬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쳐준다(그때 열심히 들을걸). 듣지 못한 과목중에는 네트워크 관련 설계도 있다.


도서관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연어


언젠가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럴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사회에 나온 뒤 한 번도 도서관에서 일한 적이 없기에, 도서관 업계에서는 아마 나를 물경력자로 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졸업한 뒤 오 년차엔 한번 진지하게 다시 도서관에 돌아가려 준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면접장에서 어느새 이단아가 되어있었다.


운 좋게 올라갔던 모교 의대도서관 면접을 예로 들어볼까. 면접때 전산 담당 사서의 질문에 대해서는 정말 대답을 잘 했다. 빅데이터 분석시 자주 쓰는 언어, 서버 사이드와 프런트엔드 사이드의 개발 방법론에 대한 차이, 도서관에서 앱을 굳이 새로 안 만드는게 좋은 이유에 대해서. 기획자 3년이면 풍월을 읊을 수 이는 걸까.


하지만 다른 질문엔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떤 장서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교수님이 정보 질의를 한다면 어떻게 응답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전자저널을 계약해야 하는지(대충 이게 대학도서관 사서가 하는 일의 일부이다)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즉 IT 툴에 대해 알지만 업무의 프로세스는 전혀 모르는 것이다.


주변인으로서 사서와 도서관을 바라본다면


사서를 하는 것을 추천하는가? 그렇게 묻는다면 조금 비관적이다. 취업때 내가 보았던 문제들은 아직 해결이 요원해보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사서직 평생교육원 문제, 계약직 적체 문제 등. 도서관의 개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이런 문제들을 볼 때 마음이 심란해 말을 얹기 조심스럽다. 작년 초까진 속상한 이야기들도 꽤 많이 전해들었다. 내가 모르는 새 조금이라도 바뀐거라면 좋겠다.


그럼에도 나는 도서관에 갈 때마다 이런 제한된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도서관을 운영해주는 사서분들이 눈에 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친구의 말을 들어볼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여러 프로그램을 돌릴때 사서를 갈아서 돌리는게 아닌가 싶은 상황이 보이기도 한다.


고3때 들었던 조언이 생각난다. "도서관에서 일하려면 책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 도서관은 책이 아니라 책 표지를 더 많이보는 곳이다"라는 말이 조언이 맞다는 것. 혹시나 새로운 진로로 도서관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결정을 하셨으면 좋겠다. (하단의 책들을 참조하셔도 좋겠다)


사서를 뽑는 대신 바코디언을 뽑기 때문에 사서도 바코디언이 되어간다. 그 결과 국내도서관은 대출반납만 열심히 한다. (...)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대출반납'만'한다는 점이다. 사진기의 발명이 회화에 영향을 끼쳤듯 무인대출반납기의 도입은 사서 역할에 변화를 강요한다. 대출반납만 신경써서 운영하고 책만 보관하는 도서관은 도서관이 아닌 책들의 무덤, '도서,관'에 불과하다.

-김지우, 사서가 바코디언이라뇨, 178p


그럼에도 책의 무덤을 만들지 않기 위해, 정말 제한된 환경 속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현장의 사서직원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IT 분야로 출가한 전직 연어 올림


부록: 새로운 진로로 도서관을 꿈꾸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책들


-김지우, 사서가 바코디언이라뇨

ㄴ후배가 쓴 책. 위에도 인용한 구절의 출처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6899137

-임수희: 사서, 고생합니다

ㄴ대충 N모 도서관 재직 당시 경험을 써주셨던 것으로 판단됨.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5434073

-강민선,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4109621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4109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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