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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Aug 16. 2020

손잡고 건너는 신호등

 * Queer : ‘비스듬한, 비뚤어진, 이상한’이라는 뜻의 독일어 quer에서 유래     


  ‘신호등 귀엽네’     

 

 2019년 유럽 여행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4유로 내고 스탠딩으로 발레 공연을 관람한 뒤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신호등에서 신호 바뀌는 것 기다리고 있었는데, 같이 공연 봤던 동행 중 한명이 갑자기 ‘여기 신호등 귀여워요’라며 이야기했다.     


 솔직히 이전까지는 여행하면서 신호등 모양을 유심히 보고 다니지는 않았었다. 신호등이라는 것은 단순히 언제 건너면 되는지 알려주는 기능 외에는 특별히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관심 깊게 봤던 빈의 신호등 모양은 정말 신선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양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신호등 사람은 빨간불일 때에는 혼자 외롭게 우두커니 서 있다가 초록불로 바뀌면 걸어다니는 흉내만 낸다. 하지만 빈에서는 두 사람이 손을 꼭 붙잡고 가만히 서 있다가 초록불로 바뀌면 손잡은 채로 사이좋게 건넌다. 게다가 맞잡은 손 위에는 조그만 하트까지 들어가 있다.     

오스트리아 빈 신호등.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모습 (출처 : 직접촬영)

 당시에는 단순히 ‘귀엽다’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었는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자세히 알아보니 더 다양한 모습이 있을 뿐 아니라 나름 깊은 의미도 담겨있었다. 우선 두 사람이 당연히 남자와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봤던 사진의 신호등 속 커플은 남남 커플이었다. 물론 다른 곳에는 여여 및 남녀 커플 모양도 있다고 한다. 단, 여기서도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손을 잡고 먼저 앞장서며 이끄는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점이다. 신호등 하나로 단순히 동성애 관련 내용 뿐 아니라 남녀평등 문제도 다룬 것이다.     


 사실 동성애를 포함하여 성소수자 관련 이슈들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왔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회적 편견이 조금은 사라졌고 관련법도 많이 바뀌었다. 게다가 이들을 위한 축제도 많이 생기고 그 규모도 점차 커져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부터 매년 퀴어문화축제가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Mardi Gras(마디그라)’ 행사는 퍼레이드가 있는 날이면 몇 시간동안 메인 도로를 통제하는 등 그 규모가 엄청나다. 하지만 아직까지 알게 모르게 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잔재해있는 것은 사실이다.      


 LGBTQ로 통칭되는 성소수자들을 지칭하는 queer라는 단어 자체부터가 문제 있어 보인다. 이는 ‘비스듬한, (사고방식이나 태도가) 비뚤어진, 이상한’이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quer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비뚤어진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편견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아닐까? (고백하자면 본인도 그런 비뚤어진 시각을 가진 사람 중 한명이었다) 이와 반대로 지금은 ‘(특히 남성을 좋아하는) 동성애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gay라는 단어는 그 어원이 굉장히 긍정적이다.     


 온라인 어원사전을 확인해보면 gay는 ‘기쁜, 즐거운’ 등의 뜻을 가진 고대 프랑스어 gai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즐겁고 밝다’는 뜻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1,400년대만 하더라도 고대영어로 ‘고귀한 여성 또는 용맹한 기사와 같은 훌륭한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였다는 것이다. 600여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동일한 단어가 완전 반대의 뜻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 변화는 사회적 인식만 바뀌면 또 언제든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queer보다 gay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gay가 ‘남자 동성애자’에 국한된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용어를 사용해도 좋다. 단, queer와 같이 편견을 유발할 수 있는 단어는 제외해야할 것이다.     


 성소수자들을 상징하는 존재는 무지개이다. 무지개는 영어로 rainbow인데, 이는 비(rain)가 온 뒤 하늘에 화살(bow) 모양으로 생기는 존재이다. 어느 글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무지개가 다양한 색깔로 이뤄져있듯이 sexuality, 즉 ‘성(性)적 성향’도 다양한 색으로 이뤄졌다’는 의미에서 무지개를 상징화했다고 한다. 비가 그치고 햇빛이 비춰야만 다양한 색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수 있다. 아직까지 잔재해 있는 여러 편견들과 멸시 등은 그들이 현재 맞고 있는 비와 같을 것이다. 그 비가 그쳐야지만 그들도 희망의 빛 줄기를 받으며 무지개를 피울 수 있을 것이다. 편견섞인 단어를 바꾸는 작은 변화들부터 시작해서 점차 그들을 향해 끼고 있는 색안경을 벗을 수 있도록 노력하면 진정한 의미의 ‘얽힘’이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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