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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Sep 26. 2020

태양이 잠들기 전

24. Coucher du soleil 일몰

1. Coucher du soleil (일몰) : Coucher(눕다, 자다) + Soleil(태양, 해). "태양이 잠드는 시간" (영어의 sunset)
2. [프랑스어 표현] L’heure entre chien et loup : "개와 늑대의 시간"
3. Afterglow (해가 진 후의 잔광) : After(~후에) + glow(빛나다, 타다). "해가 지고 난 뒤 하늘에서 발갛게 빛나는 흔적"


  2019. 05. 10(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6)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가네’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 티본스테이크를 순식간에 흡입하고 술과 주전부리 등을 산 뒤 향했던 다음 목적지는 미켈란젤로 광장이었다. 그곳에서 보는 해 지는 풍경이 눈물 찔끔 흘릴 정도로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언덕 위까지 올라가는 버스를 타야 했는데, 잘못 타서 중간에 내려 한참을 더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한 20분쯤 올라갔을까? 가쁜 숨을 허덕이던 중 마침내 저 멀리서 시내 풍경이 눈에 담기기 시작했다. 해가 막 떨어지기 시작할 때쯤이었는데, 정말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르노 강과 두오모, 그리고 베키오 다리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끔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랬기에 한참 동안을 무리들과 떨어져서 멍 때리며 바라봤다. (단, 방심하며 너무 정신 팔려있다가는 소매치기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자! 실제로 동행 중 한 명이 거의 600유로에 달하는 돈을 도둑맞았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본 피렌체 시내 (출처 : 직접 촬영)


 노을, 즉 해가 지는 풍경은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 아니, 얼굴은 하나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감정이 다양하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누군가는 노을을 보며 정말 아름답다고 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슬픈 마음과 우울함의 감정이 든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노을이 두려움을 가져다준다고 이야기한다. 영화나 문학작품에서도 노을을 다루는 방식은 다양하다. 우선 영화 <Before Sunset>은 노을이 지는 풍경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으로, 두 주인공인 제시와 셀린느가 센느 강의 유람선 위에서 아름답게 노을 진 파리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가 애써 외면해 왔던 감정을 다시 키워나간다. 하지만 <어린왕자>에서의 노을은 슬픔 또는 우울함과 더 깊은 연관이 있다. 의자를 조금 끌어당기는 것으로 원할 때 언제든 석양을 볼 수 있었던 어린왕자는 어느 날 마흔네 번이나 노을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하며, 누구나 너무 슬픈 감정이 생기면 해가 지는 풍경을 사랑하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 날 어린왕자는 얼마나 슬펐던 것일까)


 프랑스어로 일몰을 나타내는 표현은 뭔가 귀엽다. Coucher du soleil라고 하는데, 이는 ‘태양이 잔다’는 뜻이다. (반대로 일출은 ‘태양이 일어난다’는 뜻의 lever du soleil이다. 말장난같이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이다) 그런데 단어의 귀여운 뜻과는 달리 노을이 지는 시간과 연관된 다른 프랑스어 표현은 두려움과 관련 있다. 예전에 어느 한 드라마 제목으로도 사용된 적이 있는 ‘L’heure entre chien et loup’, 즉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프랑스어 표현은 양치기들이 쓰던 굉장히 심오하고 철학적인 표현으로, ‘해질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온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을 의미한다. 해질녘은 낮도 밤도 아닌 애매모호한 시간의 경계로, 양치기들에게 나름의 긴장감을 주는 시간대이다. 개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이지만 늑대는 나를 해치거나 양을 잡아먹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 쪽에서 다가오는 정체모를 실루엣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을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해는 다 저물고 난 뒤에도 하늘에 ‘잔상’을 남긴다. 이를 영어로는 afterglow라고 하는데, 단순히 ‘해가 지고 난 뒤(after) 하늘에서 발갛게 빛나는(glow) 흔적’을 뜻한다. 이러한 잔상과 관련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유시민 작가는 ‘우리 삶도 언젠가는 끝이 나지만 해가 넘어가도 붉은빛이 조금 남아있듯이, 내 삶이 만들어낸 약간의 여운이 남으면 괜찮은 끝마침이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는 마치 영화관을 나올 때 형편없는 영화는 바로 그 내용은 잊힌 채 점심이나 저녁 메뉴로 바로 화젯거리가 돌아가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좋은 영화들’은 약간의 여운을 남기며 계속 곱씹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여행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느 여행이든 공항이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는 순간 끝나게 되어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속에서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여행의 추억은 서서히 잊힐 것이다. 하지만 그 여행이 남긴 약간의 여운으로 인해 며칠간 행복하다면 그것은 괜찮은 여행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굳이 사진이나 다른 기념품 등으로 되살려 볼 필요 없이 잔상만으로 행복한 추억이 되살아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여행이 좋았다면 그 잔상은 조금 더 오래, 그리고 길게 남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유럽 여행의 잔상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었다. 반드시 책을 집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떠났을 뿐 아니라 여유도 크게 없었던 바쁜 일정이었기에, ‘그냥 유럽 유명한 곳은 다 구경했네’라는 느낌이 강했다. 아니, 여행을 했다기 보다는 해결해야할 숙제를 끝낸 기분이 들었었다. 그러기에 아직도 나에게 유럽은 아쉬움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다음번엔 여유로운 일정으로, 잔상이 더 오래가도록 제대로 된 여행을 즐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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