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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Sep 25. 2020

무조건 스테이크에는 레드와인?

23. Mariage 마리아쥬

1. Mariage (마리아쥬). 프랑스어로 '결혼'의 뜻 (영어의 marriage와 동일). "결혼도 궁합이 잘 맞아야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듯이, 와인도 그와 같이 제공되는 식사와 조합이 잘 맞아야 그 맛이 극대화"
2. Corkage (콜키지) : Cork Charge의 줄임말. "와인 전용잔과 코르크 따개를 제공해주는 서비스에 대한 비용"


  2019. 05. 10(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5)


 ‘오 이 조합도 괜찮네!’


 나는 개인적으로 식사할 때 맥주나 와인 등 술을 곁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알쓰(알코올쓰레기)'이기에 소량의 알코올만 들어가도 내 몸은 뻘겋게 상기된 채로 '니가 술을? 제 정신이냐?'라며 나무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본스테이크를 먹을 땐 와인을 같이 마시고 싶었다. 아니 마셔야 할 것 같았다. 나름 분위기 있게 칼질하는데 와인 한 잔 정도는 걸쳐줘야 분위기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와인에 관해선 문외한이었기에 같이 식당에 갔던 일행의 추천으로 가장 대표 와인을 시켰다. ‘스테이크엔 무조건 레드와인이지’라는 편견어린 얕은 지식 하나는 가지고 있었기에 당연히 붉은 빛 도는 레드 와인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서빙된 와인잔에 담긴 와인의 색은 다름아닌 흰색이었다.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국가들은 ‘와인 마리아쥬’를 중요시 생각한다. Mariage(마리아쥬)는 결혼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인데, 결혼도 궁합이 잘 맞아야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듯이 와인도 그와 같이 제공되는 식사와 조합이 잘 맞아야 그 맛이 극대화된다. 물론 마찬가지로 적합한 와인을 곁들이면 그 음식 맛이 배가(倍加)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음식을 시킬 때 어떤 와인을 곁들이면 될 지 신중하게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와인을 선택하기 전에 잔을 돌렸다가 냄새 맡았다가 빛에 비춰보는 등의 와인 테이스팅을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화이트 와인과 티본스테이크의 마리아쥬 (출처 : 직접 촬영)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와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와인 마리아쥬’를 ‘생선 요리에는 화이트 와인, 육류에는 레드와인’이라는 간단한 공식으로 치부하고는 한다. 그렇기에 나도 스테이크에 화이트 와인이 나왔을 때 조금 의아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신들만의 대표 요리(signature dish)를 가지고 있는 식당들은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미리 준비해둔다고 한다. 시중에 판매하는 와인 중에 어울리는 것이 없으면 직접 양조하기도 한다. 음식과 와인의 궁합을 항상 염두해 두기 때문이다. 


 BYO가 허용되는 호주와는 달리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와인을 마시기 위해선 그 식당에서 판매하는 와인 셀렉션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와인을 들여놓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 맛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떤 와인을 마셔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 식당의 대표 음식 하나 시킨 다음, 예산 범위 내에서 그와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받아서 마시면 된다. 아니면 자신에게 맞는 마리아쥬를 직접 고르는 것도 좋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와인 마리아쥬에 정해진 공식이란 없기 때문이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에 로제 와인을 곁들여 먹는 것을 보고 '아니 어떻게 그렇게 무식한 짓을 하는가! 음식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지켜라!'며 삿대질하고 화내며 지적하는 이상한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결혼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여기에도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잘못된 나름의 공식이 있다. 결혼 정보업체에서는 마블링에 따라 고기 등급을 매기듯이 사람을 경제수준, 직업, 가족배경, 종교 등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이후 비슷한 점수가 나온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며 커미션 명목으로 상당한 수익을 올리곤 한다. 물론 이렇게 해서 성사된 결혼생활이 술술 풀리는 경우도 있다. 연애와는 달리 결혼은 현실이기에 많은 조건이 서로 부합한다면 순탄하게 흘러갈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조건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출신지역, 종교, 생활수준 등이 달라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당연히 이 경우 결혼준비 과정에서 마찰음이 생길 가능성은 존재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저 놈은 안돼!"라며 드라마 대사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부모님으로부터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매일같이 얼굴 보며 같이 밥먹고 산책하고 이야기를 나눌 상대방은 본인이 세운 기준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단, 만약 잘못되더라도 그 결정에 스스로 책임은 져야한다. 그거면 된다. 풍요롭게 살만한 여유는 없지만 '술마시고 주사가 심한 (개가 되는) 사람, 쉽게 욱하거나 심한 말을 하는 (입에 걸레를 문) 사람' 등 절대적으로 걸러내야 할 기준에 걸리지 않고 서로 사랑한다면 맞춰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미혼이기에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 BYO는 Bring Your Own의 약자로, 만약 식당 앞에 이 표시가 걸려있으면 주류 판매소나 마트에서 와인 등을 구입하여 식당 내에서 마셔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 와인잔과 코르크 따개 등에 대한 비용인 Corkage(콜키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니 잘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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