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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Sep 27. 2020

딱 한 달만 달콤한 게 신혼?

25. Honeymoon 신혼여행

1. Honeymoon (신혼여행) : Honey(꿀) + moon(달, 한 달). "한 달 간의 달콤한 신혼기간"
2. Eclipse (일식 또는 월식) : '가리다'는 의미. "해나 달이 완전히 가려져서 잠깐 동안 빛을 잃는 현상"


  2019. 05. 10(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7)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제대로 노을을 즐길 수 있는 명당을 찾고 있던 중, 저기 멀리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웨딩 사진 촬영하고 있는 커플이 보였다. 이제 막 결혼하고 신혼여행 온 커플인지, 아니면 그냥 설정으로 스냅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분위기 자체가 반칙이었다. 노을이 지는 피렌체 두오모가 배경이라니. 그 앞에선 개미 한 쌍도 로맨틱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많았고 바로 옆에서 휘파람 불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기에 창피할 수도 있었지만 별로 괘념치 않아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 커플을 보고 있으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유럽으로 신혼여행 오면 무조건 좋을까?'


 신혼여행은 영어로 honeymoon이라고 하는데, 온라인 어원사전에서 확인한 내용에 의하면 이 단어 자체에는 ‘여행’이라는 개념은 없다고 한다. 단지 ‘신혼의 달콤함이 지속되는 한 달의 기간’이라는 의미만 있을 뿐이다. 우선 honey는 ‘꿀’의 뜻인데 단어의 의미에서도 추측 가능하듯이 ‘달콤한 꿀과 같은 새로운 결혼생활’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다. 그리고 moon은 ‘한 달’을 뜻하는 month와 연관되어 있다. (원래 한 달을 설정할 때 달의 공전 주기를 참고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허니문은 ‘한 달 간의 달콤한 신혼기간’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사용하는 단어 형태는 다르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신혼여행을 나타내는 단어 뜻은 honeymoon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프랑스어로는 lune de miel, 스페인어로는 luna de miel, 그리고 이탈리아어로는 luna di miele라고 하는데, 여기서 lune와 luna는 ‘달’, 그리고 miel과 miele는 모두 ‘꿀’을 의미한다. 전 세계 어디서든 신혼여행이라는 것은 ‘꿀’과 같은 달콤한 것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물론 그 달달함이 한 달도 채 안되어 사라지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딱 한 달만 달콤한 게 신혼? (출처 : Unsplash)


 달은 대략 한 달의 공전 주기를 거치면서 그 모습이 여러 번 바뀐다. 우선 처음은 초승달로 음력 3일경에 뜨는데 이를 영어로는 crescent moon,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croissant(크루아상, 초승달 모양을 한 프랑스 빵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이라고 한다. 여기서 crescent과 croissant은 모두 ‘점점 자라다’는 뜻의 라틴어 crescere에서 유래했다. 즉 ‘점점 커지는 달’의 의미가 된다. (참고로 창의력을 뜻하는 creative, 음악 용어로 ‘점점 세게’를 뜻하는 crescendo(크레셴도) 등도 동일한 라틴어 어원에서 유래되었다) 한 달 중 절반 시점인 음력 15일에 뜨는 달인 보름달은 full moon이라고 하는데, 이는 언어 그대로 ‘꽉 차있는 달’인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력 27일경에 뜨는 그믐달은 영어로 dark moon이라고 하는데, 점차 ‘어두워지면서’ 사라진다는 의미가 된다.


 만약 이전에는 몰랐던 그 사람의 진짜 (실망스러운) 모습을 같이 신혼여행 떠나 여러 가지 일을 겪는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되면, 점점 커져가던 초승달 같은 사랑이 금방 정점을 찍고 단물이 다 빠져버려서 어두워지며 사라져 가는 그믐달 같은 사랑으로 변할 것이다. 사랑이 사라지다 못해 없어지면 신혼여행 다녀온 뒤 바로 이혼도장 찍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하여 일본에서는 ‘나리타 이혼’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는데, 이는 ‘신혼에 하는 이혼. 일본에서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리타 공항에서 하는 이혼에 빗대어 이르는 말’이라고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도 정의되어 있을 정도로 흔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유럽에 신혼여행 가는데 설마 싸우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건 모르는 일이다. 유럽이라고 변수가 없겠는가? 프랑스 여행 가서 한 사람의 제안으로 몽생미셸로 떠났다고 가정해보자. 렌트해서 차 타고 먼 거리 가느라 허리 아프고 멀미도 하느라 생고생을 했는데, 도착하고 보니 그날이 휴관일이라면? 설상가상으로 비도 억수로 내리는데, 숙박 예약도 잘못해서 비 맞으며 비어있는 숙소 찾느라 개고생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를 재밌고 유쾌한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불쾌한 경험으로 치부한다. 예민해진 상태에서 '여기 누가 오자고 했어' 등의 책임전가부터 '넌 왜 말을 그렇게 하냐' 등의 말투 지적까지 나오면 싸움이 한바탕 전쟁으로 커질 수 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결혼하기 전에 같이 휴가가 아니라 같이 고생하는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즉, vacance가 아니라 travel을 떠나보는 것이다. (참고 : 두 번째 글 <여기에 뭐하려고 오셨어요?>) 여행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차가 갑자기 퍼질 수도 있고, 여권이나 지갑을 소매치기 당할 수도 있으며, 숙소 예약이 잘못되어 길거리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힘든 상황에서 그동안 숨겨왔던 본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2시간 동안의 식탁 테이블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통해,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숨기고 살아가는 지를 ‘월식’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말하고 있다. 일식 또는 월식은 짧은 시간 동안 해나 달이 가려지는 것인데, 영화는 이를 통해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도 이와 같아서 눈속임이나 여러 비밀을 통해 잠깐 가려지더라도 금방 드러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일식 또는 월식을 영어로는 eclipse라고 하는데, 이는 ‘가리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입 냄새 가리는 용도로 사용되는 캔디 이름이 왜 ‘이클립스’인지 조금 이해되지 않는가?) 즉, 일식 또는 월식은 ‘해나 달이 완전히 가려져서 잠깐 동안 빛을 잃는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같이 여행을 하기 전에는 몰랐던 모습들이 그 가림막이 걷히며 본성이 드러나면 진지하게 그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이는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는 더욱 필요한 과정으로 보인다. 일생동안 ‘빵을 같이 먹어야 하는 사이’인데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 할 것이다. (참고 : 첫 번째 글 <동행은 같이 빵을 나눠먹는 사이>) 여행에서 힘든 상황을 겪고도 같이 이겨내면 그 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더욱 돈독해질 것이며, 만약에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의 본성을 제대로 알고 실망한 뒤 헤어지면 되니 어떤 경우라도 잃을 것 하나 없이 더 좋은 것 아닐까?

태양도, 사람의 본성도 가려지는 것은 잠깐이다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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