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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Sep 30. 2020

빨래 품평회

26. Laundry 빨래

1. Tiramola (테라물라) : Tira(당기다) + mola(놓다). "도르래 원리 이용하여 빨래를 건조하는 것"
2. Dirty laundry (더러운 세탁물 또는 빨랫감) : Dirty(추잡한, 더러운) + laundry(세탁, 세탁물). "남들에게 공개되었을 때 당황스럽거나 곤혹스러운 개인적인 문제"

cf. air one's dirty laundry in public "그러한 개인적인 문제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다"

  

  2019. 05. 1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1)


 ‘저것이 그 유명한 발코니 건조대인가?’


 피렌체에서 먹고 구경하고 충분히 즐긴 후 프랑스 니스와 몽펠리에를 거쳐 드디어 마지막 여행지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한 달의 유럽여행이 거의 막바지에 도달한 것이다. 도착 당일엔 축구 한 경기하고 피자로 간단하게 끼니 해결한 뒤 자고 그다음 날부터 제대로 시내 구경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소매치기당할 뻔해서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악명 높은 이탈리아도 무사통과했으나, 하마터면 바르셀로나에서 150유로를 도둑맞을 뻔했었다), 그 와중에 캄프 누(Camp Nou) 투어하고 일식당에서 점심까지 해결하고 나니 어느덧 오후 시간이 되었다. 나름 시간적 여유가 있어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다음 목적지로 설정한 곳은 세미 누드비치로 유명한 바르셀로네타 해변이었다. 도시가 그다지 크지 않았기에 구경할 겸 걸어서 목적지까지 이동하며 골목골목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진으로만 보던 정겨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 유명한 발코니 빨래 건조였다.

발코니를 건조대로 사용하는 그들 (출처 : Unsplash)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세탁 후 건조기를 돌리거나, 건조대에 빨래를 말릴 때에도 사람의 왕래가 적고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골목에다가 '나는 평소에 이런 늘어진 난닝구(러닝셔츠)를 입어요! 체크무늬 양말 한쪽에는 구멍이 나있구요~ 잘 말려져 있으니 한번 구경해봐요'라며 세탁물 전시회를 여는 경우가 전혀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몇몇 국가에선 발코니에 빨래 건조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나름 문화 선진국이라고 자랑하는 유럽 국가들의 중심 도시 길가에 티셔츠나 수건 등 빨래가 걸려있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정겹기까지 하다. (서울 신림이나 낙성대의 오피스텔 발코니에 각양각색의 빨래가 널어져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까. 물론 우리나라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자기 집 발코니나 베란다가 아니라 사람들이 다니는 길 위쪽에 건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길 가다가 고개만 살짝 위로 들어도 이름 모르는 누군가의 집 빨래 면면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양쪽 건물 사이에 줄을 연결한 뒤 도르래 원리를 이용하는데, 이러한 건조방법은 크로아티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를 ‘Tiramola(테라 물라)’라고 부르는데, 단순히 ‘당기다’는 뜻의 tira와 ‘놓다’는 뜻의 mola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다. (세탁한 빨래 하나 널고 빨래집게로 고정한 뒤 줄을 잡아당겨 또 다른 세탁물을 건조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원리다) 예전에 크로아티아에선 베란다의 크기에 비례해서 세금을 더 많이 냈었다고 하는데, 과도한 세금 부과를 피하기 위해 베란다의 사이즈를 줄였다고 한다. (마치 영국에서 창문세를 내지 않기 위하여 창문을 아예 막아버렸던 것을 연상시킨다) 그러다 보니 빨래 널어놓을 자리가 없어진 것이고, 이에 따라 건너편에 마주한 집과 줄을 연결해 빨래를 널기 시작한 것이다.

길 위의 도르래 빨래 건조기 (출처 : Unsplash)


 알랭 드 보통의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Kiss & Tell)>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 발톱이 발가락 위에 놓여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일단 깎이고 나면 쓰레기가 되잖아. 그 순간 사적인 것이 되는 거지. 그냥 누군가의 머리칼을 보는 것과 욕실에서 그의 머리카락을 발견하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지” 나는 빨래도 마찬가지가 아닐 듯싶다. 그냥 옷을 입고 돌아다닐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더러워진 옷가지 등을 깨끗하게 세탁한 뒤 널어놓은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부끄러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빨래를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 쪽 발코니나 베란다에 널어놓은 행위가 이해가 잘되지 않는 것이다. 내 옷가지나 양말 등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음 저 사람은 약간 변태적 취향이 있는 것 같아' '양말이 너무 후줄근해. 저 사람은 새 양말 살 형편이 안되나 봐' 등 저마다의 의견을 늘어놓으며 품평회 한다고 생각해보자. 기분이 찝찝하지 않을까?


 게다가 영어에는 dirty laundry라는 표현이 있다. 단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더러운 세탁물 또는 빨랫감’의 뜻인데, 이는 ‘남들에게 공개되었을 때 당황스럽거나 곤혹스러운 개인적인 문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이용한 관용적 표현인 air one’s dirty laundry in public은 의미 그대로 해석하자면 ‘(누군가의) 더러운 세탁물을 공공장소에 널다’는 뜻이 되는데, 실제로는 ‘그러한 개인적인 문제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다’는 문맥으로 자주 사용된다. 물론 세탁한 옷가지나 양말, 수건 등은 ‘더러운’ 세탁물이 아니지만, 잘 지워지지 않는 때가 타거나 군데군데 헤진 곳도 있는 헌 옷이기는 하다.


 스페인이나 다른 지역만큼 발코니나 마주 보는 건물을 이용한 빨랫줄에 건조를 많이 하는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2019년 8월 ‘도시 환경 개선’의 목적으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빨래를 너는 경우 최대 100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세탁물을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에 널어두는 것이 조금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나와 비슷한 맥락이긴 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이며,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겨운 느낌을 받는 모습이기도 하다. ‘도시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베란다나 길거리의 빨래 건조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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