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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Sep 20. 2020

그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

22. Vegetarian 채식주의자

1. (Beef) Marbling (마블링) : 육류에 대리석(Marble)처럼 보이는 고기의 지방 조각
2. Vegetable (채소) : 라틴어 vegetus(활기찬, 건강한, 생기 있는, 활동적인, 기운찬)에서 유래. "사람을 활기차고 건강하게 생기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


  2019. 05. 10(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4)


 ‘어떻게 고기를 안 먹고 살 수 있지?’


 티본스테이크는 나의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주고도 남았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나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입에서 살살 녹지는 않았지만, 씹을 때마다 나오는 육즙과 텁텁하지 않은 식감이 고기 맛을 한층 더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다 먹고 난 뒤에는 종업원분이 친절하게도 직접 뼈에 붙은 고기를 발라주기까지 하셨다. 칼과 포크를 사용하여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뼈와 고기를 분리하는 움직임에서 장인 정신을 느낄 수도 있었다. 맛과 그 친절함을 고려하면 거의 2만 5천 원이 넘는 돈이 전혀 아깝지가 않았었다. 조금만 더 저렴했다면, 아니 내 여행자금에 여유가 넘쳤다면 삼시세끼 스테이크만 흡입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피렌체 티본스테이크는 토스카나의 커다란 흰 소인 Chianina(키아니나)를 사용하는데, 이 흰 소는 토스카나 지방의 광활한 초지에 방목하기 때문에 마블링(지방)이 전혀 없으나 육즙은 풍부하다. 풀만 먹으며 채식을 하는 와중에 그 넓은 땅을 운동장 삼아 열심히 걸어 다니기에 지방 덩어리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마블링이 없다는 것은 건강하게 키운 소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정확히 왜 그런 것일까? (참고로 티본스테이크의 경우 지방이 많이 없기에 오래 구우면 질겨지고 타버린다고 하니 '레어(rare, 거의 익히지 않은 상태)'로 조리해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마블링이 거의 없는 피렌체 티본스테이크 (출처 : 직접 촬영)


 마블링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육류에 대리석(marble)처럼 보이는 고기의 지방 조각을 의미한다. 이 지방은 고기의 풍미와 부드러움을 더해주기에 지방의 함유량에 따라 등급이 나눠지기도 한다. 원래 초식동물인 소는 풀을 먹고 자라기에 지방이 없는 것이 정상인데, 왜 지방이 많은 소가 더 높은 등급을 받는 것일까? 소를 돼지화 시키는 작업이 성행한 시초는 미국이다. 남아도는 옥수수를 소들에게 먹였더니 그 지방덩어리로 인해 식감이 더 부드러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 마블링에 따라 Prime, Choice, Select 등으로 등급을 나눈 것이다. 자신들의 입맛을 위해 소에게 지방이를 선사하는 사람들의 이기심이란.


 이후 입에서 부드럽게 풀어지는 고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마블링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마블링이 많을수록 맛있다는 인식을 더욱 확산시켰다고 한다. 이로 인해 ‘마블링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소의 움직임을 극소화하며 강제로 지방을 축적시키는 사육방법’이 도입된 것이다. 즉, 마블링이 많은 소는 풀을 많이 안 먹이며 운동도 안 시키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건강하게 키운 소가 아니라는 뜻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출생 직후 어미와 분리되어 자기 몸보다 그리 크지 않은 우리에 가둬진다. 송아지는 여기서 일생을 보낸다. 평균 약 4개월이다. 결코 우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며 다른 송아지와 놀지도 못하고 심지어 걸을 수조차 없다. 이 모두가 근육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근육이 약해야 부드럽고 즙이 많은 스테이크가 된다. 이 송아지가 처음으로 걷고 근육을 뻗으며 다른 송아지들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도살장으로 가는 길에서다. ... ” ‘마블링은 예술’이라며 마블링에 환장하는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이슈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는 vegetarian이라고 하는데, 이는 단순히 채소를 의미하는 vegetable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vegetable의 어원이 재미있다. 이는 “vigorous(활기찬, 건강한), enlivened(생기 있는), active(활동적인), sprightly(기운찬)”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vegetus에서 유래했는데, 즉 채소는 사람을 활기차고 건강하며 생기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The Game Changers>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고대 로마의 검투사들은 건강관리를 위해 오히려 완전 채식을 했다고 한다. 식물에도 단백질 성분인 아미노산이 포함되어 있기에 굳이 육식을 통해 단백질 보충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매일같이 풀만 먹고 토스카나 뒷산에 마실 나가는 키아니나가 몸무게 1000kg이 넘음에도 근육질 몸매를 가지게 된 것도 이와 연관 있지 않을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채식주의자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건강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이들 중 vegan도 있는데, 이는 ‘동물성 제품을 사용하거나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를 의미한다. 비건은 유제품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중 건강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동물성 제품이 학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건이 되기로 결정한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건전한 사고방식에 기반을 두어 자신의 음식 성향 혹은 생활 방식을 결정한 사람들인 것이다.


 사실 예전부터 동물 식용과 관련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 대표 음식 중 하나인 Foie gras(푸아그라)와 관련 있다. 이는 거위나 오리의 간으로 요리하는데, 정확한 언어적 의미는 ‘기름진 간’이다. 이러한 ‘기름진 간’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강제로 먹이를 주입하는 ‘가바주(Gavage)’ 방식이다. (영어로는 force feeding이라고 한다. 배불러도 억지로 먹인다는 뜻이다) 20일 가까운 기간 동안 깔때기나 튜브를 거위나 오리목에 밀어 넣고 계속 먹이를 밀어 넣는데, 이로 인해 살이 오를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아서 간이 비대해지고 지방이 쌓이게 된다. 누군가가 우리 목에 깔때기 쑤셔 넣고 한식, 중식, 양식 등 음식 종류 가리지 않고 마구 퍼붓는다고 생각해보자.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물론 우리나라의 개고기 문화도 종종 외국인들에게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런던 의회에서는 우리나라 개고기 거래 금지를 논의하기도 했으며, 이탈리아의 어느 정치인은 이를 이유로 평창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아무래도 강아지는 전 세계적으로 반려동물, 즉 가족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더욱 논란의 중심이 되는 것 같다. (반려동물을 영어로는 pet이 아니라 companion animal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관련있다. Companion은 앞에서 다룬 바와 같이 동반자의 뜻이다. 즉, 단순히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먹고 자고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의미다. 참고 : 첫 번째 글 <동행은 같이 빵을 나눠먹는 사이>)   


 국내에서도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개고기를 먹는 것 자체도 논란거리지만, 무엇보다 도축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잔인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 번 이와 관련해서 들은 적이 있는데, 육질을 높이기 위해 살아있는 채로 기둥에 매단 채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야만적이고 끔찍한 방법인가. 소나 개 외에 우리가 즐겨먹는 닭(공장에서 물에 빠뜨려 익사시킨 후 요리)이나 돼지, 양 등도 사실 잔인한 방법으로 도축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국 고기 종류와 상관없이 잘못된 사육과 유통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각 나라만의 고유한 음식 문화들을 비난하거나 소·돼지·닭고기 등을 먹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직 사람의 입맛을 높여주기 위해 잘못된 방식으로 사육하고 유통하는 것은 개선이 필요한 듯 보인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채식주의자가 된 후 강하게 어필하시는 분도 있다. 물론 갑자기 고기를 끊고 채식주의자가 되기는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인구의 50% 이상이 채식주의자이며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에서도 양고기와 닭고기를 먹는 인구가 많으며, 특히 ‘Brain Curry(염소 뇌 커리)’라는 이름의 독특한 고기음식도 존재하지도 않은가.  


 이제부터라도 고기를 먹을 때 단순히 그 맛만 생각하지 말고 이러한 이슈들에 대해 최소한 깨어있기는 해야 할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는 금방 사람들 뇌리에서 잊히며 사육 방법에 대한 개선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마블링은 없으나 육즙은 풍부하여 그 맛이 뛰어난 피렌체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한 번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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