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pertivo (식전주) : 라틴어 aperire(열다, 개봉하다)에서 유래. "식욕을 열어주는 술"
2. Appetizer (전채요리) : 영어 appetite(식욕)에서 유래. "식욕을 배가시키는 음식"
2019. 05. 10(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3)
‘Aperol Spritz(아페롤 스프리츠)? 저게 뭐지 음... 에이 모르겠다’
피렌체는 이탈리아어로 ‘La bistecca alla fiorentina(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라고 부르는 티본스테이크가 굉장히 유명하다. 같이 여행을 떠났던 사람들 사이에서 ‘최소 1일 1 티본스테이크는 해야 돼!’라는 분위기가 퍼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랬기에 나도 일행들과 함께 홀린 듯이 ‘티본스테이크 맛집 리스트’ 중 한 곳에 갔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두오모 근처에 위치한 ‘Le Cappelle Medicee(메디치 예배당)’이었다. 이름부터 뭔가 신성한 느낌을 풍겼기에,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티본스테이크를 영접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식당 입구에 ‘Aperol Spritz’라는 문구와 함께 와인 잔 비슷한 그림, 그리고 5유로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당시에는 스테이크에 정신이 팔려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식전주라고 한다. (참고로 아래 사진 속 Ristorante와 Enoteca는 이곳이 식당이자 와인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임을 의미한다)
식당 앞에 붙어있던 Aperol Spritz 홍보문구 (출처 : 직접 촬영)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식전주 문화가 별로 익숙하지 않다. 식전주는 보통 저녁식사 전 오후 6시 반 ~ 7시 사이에 바(bar)에 들려 간단하게 마시는 술인데,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기 전에 목구멍과 식욕을 ‘열어주는’ 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밥을 먹으면서 반주를 하거나 1차에서 배를 푸짐하게 채운 뒤 2차로 술 마시러 가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빈속에 술 마시는 문화’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선 6시반이면 술이 아니라 저녁먹는 시간 아닌가.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술과 식욕은 나름의 상관관계가 있는 듯하다. 술 마시면서 안주를 악착같이 챙겨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소엔 밥 반공기도 안먹다가 술만 마시면 식욕이 폭발하는 사람도 있다. 야식은 절대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갑자기 새벽에 라면을 끓여먹기도 한다. 당시 이런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술 취하면 잠이나 자지 왜 굳이 번거롭게 라면 끓이는가? 잠은 도대체 언제 자려고 하는가?’ 등의 의문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식전주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도 이러한 이유로 밥을 먹기 전에 간단히 술 한 잔 하는 것이 아닐까?
식전주를 가리키는 단어들을 잘 살펴보면 ‘식욕을 열어준다’는 의미를 더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apertivo(아페르티보)라고 하며, 영어로는 aperitif,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apéritif라고 한다. 형태가 서로 비슷한 이 단어들은 모두 ‘열다, 개봉하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aperire에서 유래했다. (참고로 이 라틴어는 4월을 뜻하는 April의 어원이기도 한데, 4월은 겨울 동안 단단하게 닫혀있던 땅이 ‘열리며’ 새로운 새싹들이 자라나는 시기다. 즉, 봄의 시작인 셈이다. 그렇기에 April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식전주 한 잔 걸치고 식당에 가면 열린 식욕을 배가시켜주는 과정도 있다. 코스 요리 중 제일 처음 나오는 전채요리는 appetizer(애피타이저)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는 식욕을 뜻하는 appetite에서 유래되었다. 식전주가 ‘이제 음식 들어갈테니 목구멍 열어라’고 몸에 신호를 주며 식욕을 열어주면, 이후 나오는 전채요리는 ‘본 요리로 배 채우기 전에 피치를 조금 더 올려라’고 예고하며 그 식욕을 더 증진시키는 것이다. 식전주로 열린 식욕을 애피타이저로 증진시키면 메인 요리의 맛이 배가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나의 첫 유럽 여행을 열어준 것은 런던의 어느 펍에서 저녁 먹기 전 축구경기를 보며 마신 맥주 한 잔이었다. 한 달의 여행을 시작하는 나름의 ‘식전주’였던 것이다. 그 식전주가 달콤했기에 전채요리치고는 조금 과한 ‘프랑스 여행’이 더 의미 깊었고, 그 덕분에 이후 이어진 여행들도 맛있는 메인 요리를 먹듯 그 재미가 배가되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첫 여행지에서의 식전주를 잘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단순히 맛있는 술을 마셔라는 의미가 아니다. 긴 여행의 첫 단추를 잘 끼우라는 이야기다. 떫은 맛의 식전주는 식욕을 열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입맛을 확 떨어뜨리듯이, 첫 여행을 망치면 이후의 일정이 잘 풀릴 가능성은 낮아지게 될 것이다. 데이트 할 때도 만나자마자 싸우면 그날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랍스타를 먹어도 기분이 쳐지지 않은가. 맛있는 식전주와 전채요리로 여행의 욕구를 확 끌어올린 뒤 이후 여행의 참맛을 제대로 느껴보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