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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Sep 13. 2020

다비드 상을 지탱하는 것은 왼쪽 다리

19. Contrappost 콘트라포스토

1. Contrapposto (콘트라포스토) : 라틴어 contraponere(반대편에 두다, 반대로)에서 유래. "상체와 하체가 상당히 대조되는 모습 또는 형태"
2. Prejudice (편견) : 라틴어 praeiudicium(미리 판단하다)에서 유래. "어떤 사람을 알기도 전에 자기 마음대로 판단한 뒤 정의내려 버리다"


  2019. 05. 10(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1)

 

 ‘와 저게 다비드 상인가? 엄청 크네’


 시에나를 거쳐 로마에서 이틀을 보낸 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었던 도시 중 한 곳인 피렌체에 도착했다. (로마에선 이발소가고 젤라또 먹었던 것 외엔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 첫 날엔 오후 늦게 도착했기에 짐풀고 근처 가죽시장 구경하고 한 끼 해결하는 것으로 일정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시내 구경에 나섰다. 정처 없이 걷다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시뇨리아 광장에 헤라클레스 조각상과 나란히 서서 베키오 궁전을 지키고 있던 <다비드> 조각상이었다. 피렌체에는 총 세 개의 다비드 조각상이 있다. (나머지 두 개 중 하나는 미켈란젤로 광장에 있으며, 또 하나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


 실제 진품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조각상인데, 입장료를 따로 지불해야 되고 시간도 넉넉지 않아서 보지 못했다. 대신 베키오 궁전 앞과 미켈란젤로 광장에 있는 다비드 조각상은 잠깐 감상할 수 있었다. 이것만 봐도 꽤 크기가 큰데, 미술관 안에 있는 진품은 이 조각상보다 더 크다고 하니 얼마나 웅장할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조각했는지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레 경외감이 들었었다. (참고로 미켈란젤로 광장의 다비드 상보다 베키오 궁전 앞의 조각상이 훨씬 더 크고 진품과 비슷하다)

미켈란젤로 광장의 다비드 조각상 (출처 : 직접 촬영)


 그런데 이 조각상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한 가지 있다. 서 있는 모습을 잘 살펴보면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은 상태에서 상체를 살짝 비튼 모습인데, 이러한 기법을 이탈리아어로 Contrapposto(콘트라포스토)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는 ‘반대편에 두다, 반대로’의 뜻을 가진 라틴어 contraponere에서 유래했는데, ‘상체와 하체가 상당히 대조되는 모습 또는 형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정면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옆으로 살짝 비튼 포즈를 통해서 조금 더 입체감과 생동감이 살아나는 것이다.


 이 조각상은 예전에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에서 한 번 언급된 적 있는데, 이 책을 통해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른쪽 짝다리를 짚고 있고 왼쪽 뒤꿈치는 살짝 든 것처럼 보이기에 당연히 모든 무게를 오른쪽 다리가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수천 톤의 이 대리석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그의 왼쪽 다리라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보통 우리는 사람이나 사물을 판단할 때 그 기준을 겉모습에 두고는 한다. 그리고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는 노력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규정해버린다. 사람을 한 번 보고 성급하게 판단하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리석은 일인데, 이러한 성향 때문에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종종 이런 실수를 하고는 한다. 어리석고 멍청한 행동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도 있다) 편견은 영어로 prejudice라고 하는데, 이는 ‘미리 판단하다’는 뜻의 라틴어 praeiudicium에서 유래했다. 즉, 그 사람을 알기도 전에 자기 마음대로 판단한 뒤 정의내려 버린다는 의미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오만과 편견>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엔 엘리자베스 베넷이 다아시(Mr. Darcy)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몇몇 소문과 그의 표정, 그리고 태도 등을 기반으로 그를 오만하고 거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제대로 알기 시작하고 진면목을 발견하고 난 뒤부터는 그에 대한 오해도 풀리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장차 사랑에 빠지게 될 사람을 엄청 증오하게 만들 정도니, 오해와 편견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다비드의 겉모습을 대충 보고는 정확하게 알아보려는 노력도 없이 ‘아 다비드가 오른쪽 짝다리 짚고 있네. 저렇게 계속 서 있으려면 오른쪽 다리 힘들겠다’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그들은 실제로 그 무게 때문에 쥐가 나고 있는 건 그의 왼쪽 다리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사람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조금만 더 제대로 알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실제로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동일한 사람일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려는 노력,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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