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환 Sep 12. 2020

'달콤한 게으름'의 모순?

18. Dolce Far Niente 달콤한 게으름

1. Dolce Far Niente (달콤한 게으름) : 이탈리아어 dolce(달콤한, 듣기 좋은, 디저트) + niente(아무것도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달콤함"
2. Espresso (에스프레소) : 이탈리아어로 '빠르다'의 뜻. "빠른 시간 내에 샷을 뽑아내는 커피"


  2019. 05. 06(월)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달콤한 게으름? 아닌데’


 베네치아에서의 하루 일정이 끝나고 로마로 가는 길에 잠깐 쉴 겸 소도시 시에나에 들렸었다. 이곳은 크게 둘러볼 곳이 없었기에 간단히 점심 해결한 뒤 캄포광장 내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셨다. 이 때 여행 중 처음으로 이탈리아산 에스프레소를 영접했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에스프레소를 마실 일이 전혀 없었다. 양은 적고 맛은 쓴데 가격은 아메리카노보다 겨우 500원정도 저렴하니 도저히 시도할 마음이 안 들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워낙 에스프레소가 유명하기에 경험차 한번 시음해보고 싶었다. 설탕을 넣어 마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기에 한 세 스푼 었는데 의외로 마실만 했었다. (설탕을 많이 넣어서 맛있었던 건가) 하지만 양이 적다보니 순식간에 다 마셔버려서 10분 만에 일어났다.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여유를 느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시에나 캄포광장의 어느 카페 테라스에서 (출처 : 직접 촬영)


 도시나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유럽의 경우 ‘Slow Life(슬로우라이프)’를 추구하는 곳을 종종 볼 수 있다. ‘빨리빨리’ 문화가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사치스럽게 보일 수 있는 이 여유로움은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곤 한다. 잔디밭에서 와인 마시거나 햇빛으로 마사지 받으며 광합성 즐기는 등의 여유로운 모습을 어느 누가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몇 년 전 개봉했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보면 여 주인공 리즈의 이탈리아인 친구가 미국인들은 주중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한 뒤 주말엔 잠옷입고 티비앞에서 빈둥거린다며 빈정대는 장면이 있다. (나에겐 주말에 편한 옷차림으로 넷플 즐기는게 가끔은 나름 달달한 휴식이 되기도 하는데, 잘난 이탈리아인들에겐 이것이 제대로 된 쉼으로 보이지 않는가 보다) '밀러타임'이라는 말을 누군가 해줘야지 그제서야 맥주 사와서 여유를 즐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짬내서 잘 쉰다고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그들의 생활신조를 이야기한다. “We call it ‘Dolce far niente’. It means ‘Sweetness of doing nothing’” (우리는 이것을 ‘돌체 파 니엔테’라고 부르는데, 이는 ‘달콤한 게으름’이라는 뜻이야) 


 영화를 보고 위의 아름다운 표현에 매료된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은 듯 보였다. 신문기사나 개인 블로그 등에 이 문장을 그대로 차용하여 '여유'라는 주제로 글쓰신 분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아무 것도 안하는’ 심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반증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함'을 여유와 연결시키기 보다는 '빈둥거림' 또는 그로 인한 '불안함'과 연관짓고는 한다. 나조차도 시간 여유가 생길 때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 (내가 주말에 글을 끄적거리기 시작한 것도 이와 연관있다)


 이탈리아인들의 여유로운 삶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몇가지 있다. 우선 그들의 저녁시간은 상당히 길다. 우리가 저녁먹는 시간인 오후 6시 쯤에 우선 식전주(aperitivo)부터 한 잔 걸친다. (참고 : 스물한 번째 글 <목구멍을 열어라~>) 가벼운 술로 저녁식사의 시작을 알린 뒤 약 2시간 동안 식사를 즐긴다고 한다. 그 후에도 디저트(dolce)와 식후주(digestivo)까지 마시니 퇴근 이후에는 밥 먹고 이야기하고 잘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저녁시간이 30분만 넘어가도 지루해하며, 배만 채운 뒤 여가 생활을 하거나 야근을 하는 등 생산적인 일을 하는 우리와는 확실히 다르다.


 게다가 슬로우 라이프라는 단어가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원래 이탈리아에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6년이 되어서야 로마 스페인광장 부근에 처음 맥도날드가 생겼는데, 피자와 파스타 등 자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한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당시 논란이 일었던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자극받아 자국 음식문화 보존, 미각의 즐거움 등을 모토로 해서 슬로우푸드(Slow Food) 운동이 생겨났고,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 슬로우 시티(cittaslow)라는 개념까지 더해지며 ‘느리다’는 것이 하나의 삶의 철학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로마에만 40개 이상의 맥도날드 매장이 들어가 있다. 이탈리아 전역으로 따지면 그 수가 578개나 되며, 이는 EU 국가 중 독일, 프랑스, 영국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수치라고 한다. 물론 지금도 카라쿨라 욕장 근처나 바티칸 광장 근처 등에 매장이 들어서는 것에 대한 반대의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언제까지 이 흐름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피자보다 해피밀’을 외치는 아이가 나오는 광고도 이탈리아에서 방영되지 않았던가. 물론 수없이 몰려오는 관광객들에 의한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겠지만, ‘슬로우 라이프’의 개념이 형성된 곳에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매장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 하다.


 그들의 자부심인 커피와 관련해서는 어떨까? 위에서도 한 번 언급했듯이 마찬가지로 여유를 크게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카페에서 한 잔의 커피 마시는 것을 나름의 여유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다르게, 커피의 본고장이라고 자부하는 이탈리아에는 특유의 에스프레소 문화가 있다. Espresso(에스프레소)는 ‘빠르다’는 뜻으로, 말 그대로 빠른 시간 내에 샷을 뽑아내는 커피이다. 영어의 express와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는데, 고속버스를 Express Bus라고 부르는 것을 참고하면 조금은 이해가 쉬울 듯하다.


 달콤한 게으름이라고 해놓고 정작 커피는 ‘빠르게’ 뽑히는 에스프레소를, 그것도 선 자리에서 ‘빠르게’ 털어놓고 자리를 뜨는 것이 조금 낯설었다. 물론 나는 시에나에서 앉아 마셨지만 보통 바(bar)에서 주문한 뒤 서서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게다가 인기 많은 카페 안은 완전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고 들었다. 전부 다 손들고 자기 주문 받아달라고 소리치고, 커피를 받은 사람들은 다 그 자리에 서서 마셔버린다. 그러기에 이 문화에 적응되지 않은 여행객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며 정신을 못 차린다. 이게 여유인가?


 사람들마다 경험하는 것은 다르고, 또 그에 따라서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기에 ‘이 나라는 이렇다’라고 규정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그냥 자신이 느끼는 바를 이야기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이탈리아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그 유명한 ‘Dolce far niente’를 느꼈는가? 만약 느꼈다면 어느 시점에서, 어느 경험을 통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가?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과 한번 이야기해보며 당시의 추억을 떠올려봤으면 한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여유롭게.

이전 17화 왜 저렇게 흔들리지 불안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