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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Sep 10. 2020

왜 저렇게 흔들리지 불안하게

17. Gondola 곤돌라

1. Gondola (곤돌라) : 베네치아어 dondolare(흔들리다)에서 유래. "흔들리는 것"
2. [프랑스어 문구] Voir Venise et mourir : "베니스를 보고 죽어라" (베니스를 본 적이 있다면 후회 없이 죽어도 된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이탈리아어 표현이 언급된 바 있음. Vedi Napoli e poi muori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3. [라틴어 문구] Fluctuat nec mergitur :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다"


  2019. 05. 05(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날씨 진짜 ... 휴 ...’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간을 보낸 뒤 도착한 다음 여행지는 바로 물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였다. 솔직히 베네치아는 큰 기대가 없었다. 물론 베네치아를 예찬하는 작가 혹은 예술가들이 많았지만, 다녀온 주변 사람들의 후기를 종합해보자면 ‘그다지 볼 것도 많이 없고 바다 짠내는 진동하며 물가는 비싼 곳’이었다. 안 그래도 이러한 편견 때문에 도시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안 좋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비도 몰아치고 바람도 엄청 불어댔다. 조금 잠잠해지면 나가려고 포켓볼 치며 기다렸는데, 12시가 다 되어가도 도저히 비가 그칠 기미가 안 보였다. 잠깐 고민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본섬에도 안 가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억울할 것 같아서 일단 나갔다. 다행히 숙소에서 본섬까지는 기차 타면 10분밖에 안 걸릴 정도로 가까웠다.


 예전에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에서 ‘베네치아 본섬에는 자동차를 비롯하여 엔진 달린 육상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에 주요 교통수단이 배’라는 것을 읽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가보니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골목길이 워낙 좁고 수로도 굉장히 많아 어차피 육로 교통수단이 있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기에 일단 기차 타고 본섬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두 가지 선택권 밖에 없었다. 걸어 다니거나 배를 타고 다니는 것. 우리는 일단 걸었다.


 그런데 날씨가 최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좋았었다. 아마 기대감이 낮았던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미로같이 연결되어 있는 좁은 골목길은 아름다웠으며, 비 오는 날씨 때문에 더욱 운치 있어진 카페 테라스에서 마셨던 커피 한 잔도 운치 있었다.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먹은 오징어 먹물 파스타와 그에 곁들인 와인도 맛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이 도시에 악평을 쏟아냈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에겐 “Voir Venise et mourir”, 즉 ‘베니스를 보고 죽어라. 베니스를 본 적이 있다면 후회 없이 죽어도 된다’는 의미의 프랑스어 표현이 더 와 닿았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근처에 위치한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라는 곳의 명칭 유래도 흥미로웠다. 이는 두칼레 궁전과 누오베 감옥(Prigioni Nuove)을 연결하는 다리인데, 죄수들이 궁전에서 재판을 받은 후 감옥으로 보내지던 통로 역할을 했던 곳이다. 다리에는 조그만 창이 하나 뚫려있는데, 그 사이로 빠끔히 보이는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풍경을 보며 ‘이제는 다시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겠지’라며 한숨을 쉬었다는 데에서 ‘탄식의 다리’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이다. 이제 교도소에 가면 이 풍경을, 아니 바깥세상을 볼 수 없으니 답답했던 마음과 자신의 잘못에 대한 후회 등이 한숨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죄수들의 한숨을 자아내던 탄식의 다리 (출처 : 직접 촬영)


 단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그 유명한 곤돌라를 못 타봤다는 것이었다. 사실 곤돌라는 낭만과 현실의 괴리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유유자적한 강물을 따라서 잘생긴 곤돌리에(Gondolier)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세레나데(Serenade)를 불러주고 옆에는 사랑하는 연인이 앉아있으며 분위기가 무르익을 즘 로맨틱한 키스를 나누는 환상’을 꿈꾼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다. 배불뚝이 아저씨가 가끔씩 소리만 지르고 좁은 수로 때문에 교통난은 빡빡하며, 배는 좌우로 계속 흔들려서 빠질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 가기 전에는 한 번쯤은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날씨 때문에 곤돌라 타고 싶은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날씨가 좋았어도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고민했을 텐데 비 오고 바람까지 부니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최악의 날씨에도 띄엄띄엄 곤돌라가 1~2대씩 보였는데, 곤돌리에는 우비를 입고 노를 저었으며, 안에 탄 사람들은 우산 쓴 채 구경하고 있었다. ‘굳이 저렇게 까지 해서 타야 하나’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대신 곤돌라 자체는 굉장히 독특한 외형을 가지고 있어서 타보지는 않더라도 한 번쯤 구경은 할 만하다. Gondola의 정확한 어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설(說) 중 하나에 의하면 이 단어가 베네치아어로 ‘흔들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dondola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왜 흔들리는 것’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궁금하면 한번 타보면 될 듯하다. 사실 나도 안 타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주변 지인들의 말로는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금방 물에 빠질 듯이 흔들리며, 심한 경우 멀미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이름만 봐도 그렇고 애초에 흔들리도록 설계가 되어있다. 외형만 봐도 불안해 보이기는 한다.

궂은 날씨에도 꿋꿋이 곤돌라를 타던 사람들 (출처 : 직접 촬영)


 우선 선체 무게만 무려 600kg이 넘는다고 한다. 게다가 선체는 오른쪽으로 꺾여 있는데 사공은 왼쪽에 치우쳐 있으며 노는 또 오른쪽에 있으니 불안해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오른쪽으로 노를 저을 때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바로잡기 위함이라고 한다. 배가 오른쪽으로 휘어져있으니 왼쪽에 서서 오른쪽에 노를 넣고 열심히 저어야 중간으로 가지 않겠는가? 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만든 배가 곤돌라인 것이다. (중간에 서서 양쪽으로 노를 저어가며 균형을 맞추는 것보다는 덜 힘들 것 같다)


 프랑스 파리 시청의 현관에 가보면 Fluctuat nec mergitur라는 멋있는 라틴어 문구가 걸려있다고 한다. 이는 ‘흔들리지만 가라앉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파리 테러 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에서도 종종 사용되던 문구다. 테러라는 끔찍한 일을 경험하며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지만, 가라앉지 말고 극복해 나가자는 응원의 뜻이 아니었을까? 사실 곤돌라도 이 모토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곤돌라도 마찬가지로 흔들리지만, 아니 흔들리기 때문에 가라앉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이와 같아 보인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곤돌라가 튼튼하게 설계되어 있다면 쉽게 가라앉지 않듯이, 우리도 스스로 강하게 믿는 신념이 있다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신념이 없다면 잠깐 스쳐 지나갈 바람에도 ‘내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노심초사 걱정하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는가. 혹시라도 기회가 되어서 곤돌라를 타게 되면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한번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내 곤돌라, 즉 신념은 외부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견고한가?’ 물론 경치 구경하느라 바쁘겠지만 이 정도 생각할 여유는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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