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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Sep 06. 2020

체력과 열정이 튀어 오르는 곳

16. Hot Spring 온천

1. Spring (봄, 용수철, 탄력) : 고대 영어 springan(도약하다, 갑자기 튀어 오르다, 퍼져나가다)에서 유래. Hot spring, 즉 온천은 땅 속의 뜨거운 물이 위로 튀어 오른다는 개념

cf. Springbok (스프링벅) : 중세 독일어 springhen(튀어 오르다) + bok(영양).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영양으로, 용수철같이 통통 튀어 오르며 뛰어다니는 습성이 있음"


  2019. 05. 01(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와... 말이 안 나온다’


 아쉬움 가득했던 프라하 여행을 끝낸 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체코 소도시 브르노를 거쳐 저녁에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일단 도착한 날엔 우리나라 육개장과 비슷한 굴라쉬에 밥 말아먹은 뒤 잠들었다. 다음 날부터 시작된 부다페스트 일정은 크게 부담 없었다. 하루하고 반나절만 머물렀지만 딱히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었었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세체니 온천을 갈지 말지 고민했었다.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온천을 즐길 만큼 일정이 여유롭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도 많았고 몸도 찌뿌둥했기에 조식 먹고 조금 쉬다가 수영복 챙겨서 온천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온천 입구에 도착했는데 조금 비싼 입장료 때문에 약간 당황했었다. 주중이었기에 주말 입장료보다 저렴하긴 했지만 그래도 5,500 포린트(한화 약 22,000원)나 했었다. 솔직히 많이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긴 했지만, 맥주나 음식값 또는 교통비 등 대체적으로 물가가 저렴했기에 유독 비싸다고 느꼈던 것같다. 그래도 과감하게 신용카드로 결제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은 부실하게 보이는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실내 온천 공간으로 갔는데 별 다른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약간의 실망감을 느끼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순간 야외 공간이 눈 앞에 확 펼쳐졌다. ‘참나 실내만 보고 성급히 실망했제? 이 환상적인 경관을 보고 무심결에 튀어나오려는 감탄사를 참을 수 있을지 한 번 보자’라며 비웃기라도 하는 듯 아름답고도 품위 있는 자태를 드러냈다.

체력을 튀어 오르게 해 준 온천 (출처 : 직접 촬영)


 온천을 가기 전에는 길어봤자 한 시간 내외로 머물 예정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2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다시 나가기 싫을 정도로 좋았다. 30도 내외의 따스한 물에서 몸 담그고 있다가, 너무 늘어진다 싶으면 가운데 있는 수영장에서 놀았다. 그 덕분에 자유형 하며 숨을 쉬려 고개를 돌릴 때마다 고풍스러운 건물의 면면이 눈앞에 나타나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바깥 날씨는 대략 15도 정도로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 좋았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신선놀음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온천을 영어로 Hot spring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spring이라는 단어가 나름 재미있다. 이는 ‘도약하다, 갑자기 튀어 오르다, 퍼져나가다’ 등의 뜻을 가진 고대 영어 springan에서 유래했다. 즉, 온천이라는 것은 ‘땅 속에 있던 뜨거운 물이 위로 튀어 오른 것’이다. 또한 spring은 ‘튀어 오르다’는 개념에서 ‘봄’의 뜻도 있다. 봄은 겨울 동안 움츠려있던 꽃들이 땅 위로 올라오는 계절이다. 단지 꽃들만이 아니라 추운 겨울 동안 실내에 있던 사람들이 벚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럭비팀의 애칭이자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영양인 springbok도 비슷한 어원에서 유래했다. 스프링벅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용수철같이 통통 튀어 오르며(spring) 뛰어다니는 습성이 있다. 이들은 집단 무리 생활을 하는데, 주식은 풀이며 먹을 것이 고갈날 경우에는 다른 서식지를 찾기 위해서 이동한다. 하지만 먼저 도착한 영양들이 풀을 다 뜯어먹기 때문에 무리의 제일 마지막 영양은 먹을 것이 부족해진다. 그래서 자신이 먹을 풀을 찾기 위해 다른 초식지로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을 본 다른 영양들도 식량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같이 달린다. 자기가 먹을 풀이 남아있는 놈들도 같이 뛴다. 본인 먹을 풀떼기가 충분하면 그냥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면 될 것을.


 처음에는 모두 먹을 것을 찾기 위하여 달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달리는 목적을 잃어버린 채 그냥 무작정 달린다. 그러다가 깊은 강이나 벼랑 끝에 도달한다. 뒤늦게 위험을 알아차리고 죽지 않기 위하여 멈추려고 노력하지만 가속이 붙은 몸뚱이를 주체하지 못한다. 겨우 멈추더라도 뒤에서 달려오는 다른 영양들에 의해 떠밀려 단체로 죽음을 맞이한다. 아무런 이유없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은 채 치열하게 노력만 하면, 점차 처음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내가 왜 이것을 하고 있지?’라는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노력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이에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 탓에 제대로 된 충전을 취하지도 못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금방 체력이 방전되며 지쳐버릴 것이다. What은 있는데 why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이처럼 위험하다. 마치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미친 듯이 일하지만, 그렇게 일하는 목적인 가족 또는 소중한 무엇인가가 뒷전이 되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여행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앞에서 한 번 언급한 바 있듯이 긴 입국심사 대기 줄에서 자신의 여행 목적을 고민할 기회가 있다. (참고 : 두번째 글 <여기에 뭐하려고 오셨어요?>) 여행 초반에는 이를 상기하며 자신이 이번 여행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이 길어지다 보면 처음의 목적을 잃어버릴 수 있다. 누군가는 ‘휴식’을 목적으로 갔는데 여행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서 온갖 장소를 다 둘러보며 체력을 소모하기도 한다.


 특히 동행과 같이 다닐 경우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원래는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서 자전거 타고 낮잠 자며 반나절 보내려 했지만, 일행 중 누군가가 몽생미셸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이 흔들림을 바로 잡지 못하면 새벽 일찍 일어난 뒤 먼 거리를 버스 타고 이동하며 하루를 소비하게 된다. 물론 몽생미셸도 좋은 여행지이긴 하지만,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점차 체력은 떨어지고 몸은 지치게 된다. 이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보면 큰 감흥이 느껴질까? 이것저것 예쁘고 멋있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봐야겠다는 의무감에 이미 퉁퉁 부은 발을 질질 끌고 다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온천’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뭉쳤던 근육들이 쫙 풀리면서 다시 생명력과 체력이 튀어 오르도록(spring) 도와줄 뿐만 아니라, 쉬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애초에 생각하던 여행의 목적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여유를 즐기려는 처음 목적을 잊고 동행들의 추천 여행지들을 다 따라다니는 것은 먹을 풀떼기 찾으려는 목적도 잊은 채 죽음을 향해 달리는 스프링벅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쉬며 재정비하는 것을 절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말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해야 여행 목적을 떠올리며 다시 여행에 집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명심하자.

지칠 때 쉬어가는 것은 절대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다 (출처 :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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