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환 Aug 11. 2020

당신에게 이익이 되기를 바라며

14. Prost 건배

1. Prost 또는 prosit (건배) : 라틴어 prodesse(이익이 되다)에서 유래. "너에게 이익이 되기를 바란다"
2. (A votre) santé(건배) : 프랑스어로 "(당신의) 건강을 위하여"의 뜻. 이탈리아어 salute, 스페인어 salud와 동일한 의미


  2019. 04. 27(토) 독일 뮌헨에서 (2)


 “그 사람들이 막 박수 크게 치면서 ‘prost’라고 하던데 기분 엄청 나쁘더라. 시비 거는 줄 알았네”     


 이는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은 아니고 같이 여행했던 일행 중 한 명이 해준 이야기다.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무리들이 갑자기 다가와서 손뼉 치며 큰 목소리로 “Prost!”라고 외치며 웃었다고 한다. 물론 정황상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술 취한 채로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하며 자기들끼리 낄낄대니 당연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단어 자체는 전혀 모욕적인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축복을 빌어주는 말이다. 그렇기에 이런 경우에는 다른 이상한 행동만 취하지 않는다면 그냥 같이 ‘Prost’를 외치며 대충 맞받아쳐주면 된다.     


 독일에서는 잔을 부딪칠 때 prost 또는 prosi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너에게 이익이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의 라틴어 prodesse에서 유래했다. 이 외에 ‘Zum Whol!’이라고 외치기도 하는데, 이는 ‘건강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술을 마시면서 축복의 말을 건네거나 건강을 외치는 모습이 조금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건강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외치는 곳은 생각보다 많다. 우선 프랑스에서는 santé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A votre santé’, 즉, ‘(당신의) 건강을 위하여’의 줄임말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술잔을 부딪칠 때 각각 salute와 salud라고 하는데, 이 또한 모두 santé와 마찬가지로 ‘건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이탈리아나 스페인 또는 중남미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등장하니 한 번 관심 있게 확인해보면 좋을 듯하다.

프랑스 니스 해변가에서 물놀이 후 시원하게 한잔~


 우리나라의 건배사는 어떨까? 우선 건배(乾杯)라는 단어부터 살펴보면 ‘하늘/마를 건(乾)’과 ‘잔 배(杯)’가 합쳐진 말로, ‘(잔 바닥을) 하늘로 들다’ 혹은 ‘잔을 마르게 하다’의 뜻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술잔의 술을 다 마셔 비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샷’인데, 알게 모르게 ‘건배’를 외치면서 잔을 다 비우도록 권장하는 셈이다. 참고로 이를 정확한 영어로는 bottoms up이라고 하는데, 단어 뜻 그대로 ‘잔 바닥(bottom)을 위로 향하게 한다’는 의미다.  


 굳이 한자어를 찾아보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술 문화는 잘못된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술 권하는 문화’이다. 술이 쭉쭉 들어간다거나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하냐며 분위기에 취해 술잔을 다 비우도록 대놓고 강권하거나 눈치를 주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자기들이 어깨 탈골되든말든 난 그냥 안 마시련다’하며 자제하면 되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건강’을 외치며 적당히 분위기에 맞춰 술을 마시는 유럽이나 타 국가와는 상당히 다르다. 그런데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주체가 안될 만큼 술을 퍼붓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코 삐뚤어지도록 마셔보자'며 고삐를 풀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술에 관해서 ‘자신의 주량을 정확하게 알고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시되, 건강을 생각해서 절대 주량을 초과하여 마시지 말자!’는 신념이 있다. 술에 취해 자제력을 잃고 이상한 실수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만 이런 추태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술이 들어오면, 지혜는 나간다’는 의미의 라틴어 표현 ‘Cum vinum intrat, exit sapientia’도 있듯이, 옛날 고대 로마시대 사람들도 술을 마시면 정신줄을 놓아 버리곤 했었던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로 인해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면 안 된다. 특히 ‘같이 죽자’고 하며 억지로 권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누군가는 적당히 취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라틴어 문장 중에 ‘포도주 안에 진리가 있다’는 의미의 in vino veritas라는 표현이 있는데, 뭔가 되게 거창해 보이지만 쉽게 말하면 ‘취중진담’이다. (참고로 라틴어 vino는 와인의 뜻이고, veritas는 ‘진리’라는 의미가 있다) 평소에 말하기 쉽지 않은 진심을 전하는데 술만큼 좋은 도구가, 만취상태만큼 괜찮은 핑계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일리 있을 수 있다. 취하면 몸과 마음의 긴장상태가 풀어지며 조금 더 진실해지기도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마저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굳이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하는데 술기운을 빌릴 필요가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술주정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비겁한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힘든 이야기라도 온전한 정신으로 해야 더 진정성이 와 닿지 않을까?     


 유럽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여행지가 될 수 있다. 독일과 벨기에, 체코의 맥주부터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와인, 그리고 스페인의 상그리아까지 다양하고 맛있는 술들이 많다. 그렇기에 쉽게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마시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기에 상관없다. 다만 ‘건강’을 강조하는 유럽의 건배사들을 생각하며 적당히, 자신의 주량에 맞게 마시도록 하자. 여행의 자유로움 또는 쉽게 볼 수 없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술을 퍼붓다가 보면 분명 자제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구토, 폭력, 고함 등의 추태는 따라오기 마련이며, ‘취중진담’이라는 핑계로 이치에 맞지도 않는 헛소리를 입 밖으로 쉽게 내뱉기도 한다. 영어로 ‘취했다’를 ‘I’m wasted’라고 하는데, 동사로 ‘낭비하다’는 뜻이 있는 영어단어 waste는 명사로 ‘쓰레기’의 뜻이다. 즉 ‘I’m wasted’는 ‘나는 쓰레기가 되었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외국에 여행 가서까지 자신이 쓰레기임을 광고하고 다니지는 말도록 자제하자. 여행을 떠날 정도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나이는 되지 않았는가?

이전 13화 10%는 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