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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Sep 05. 2020

쓰레기 같은 인간!

15. Don Juan 돈 후안

1. Marionette (마리오네트) : 16세기 프랑스어 marionette(작은 성모 마리아)에서 유래. 베니스 사람들이 인형극 소재로 성모 마리아 상 사용한 것과 관련
2. Chaud Lapin (난봉꾼) : 프랑스어 chaud(뜨거운) + lapin(토끼). "뜨거운 토끼"


  2019. 04. 29(월) 체코 프라하에서

 

 ‘점마는 진짜 쓰레기네!’     


 뮌헨을 뒤로하고 프라하에 도착했을 땐 뭔가 마음이 벅찼었다. 어려서부터 나에게 유럽의 이미지란 ‘체코 프라하의 트램’이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트램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보니 책받침이나 노트 표지에서 트램 사진만 봐도 설레곤 했었던 옛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었다. 하지만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망할 놈의 날씨 때문이었다. 오후 저녁시간쯤 도착했을 때부터 약간 흐렸는데, 다음날엔 본격적으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었다. 원래는 스카이다이빙도 하고 프라하 성에서 ‘파란 하늘과 주황색 지붕이 어우러진 풍경’도 감상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날씨 탓에 진즉에 스카이다이빙은 취소되고 프라하 성 내부 구경은 빠른 시간 내에 끝냈으며, 우중충한 하늘에 부조화스럽게 섞여있는 주황색 지붕은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천문 시계탑과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 존 레넌 벽까지 다 구경했지만 뭔가 허전함이 계속 남아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제대로 구경하자’는 마음에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머리를 싸맸다. 내 어릴적 로망의 도시였던 체코까지 왔는데 비 구경만 하다갈 수 없지는 않은가. 그러다가 떠올린 것이 바로 ‘마리오네트 공연’이었다. Marionette는 ‘little little Mary’, 즉 ‘작은 Mary’의 뜻을 가진 16세기 프랑스어 marionette에서 유래했는데, 여기서 Mary는 성모 마리아(Virgin Mary)를 의미한다. 예전에 베니스 사람들이 인형극 소재로 성모 마리아 상을 사용했었는데, 이후 이러한 인형극을 마리오네트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인형극은 드라마나 영화 등이 없던 시절에 크게 유행했었는데, 그중 제일 유명한 오페라 인형극이 바로 모차르트의 <Don Giovanni(돈 조반니)>이다.

돈 지오바니 공연장 모습 (출처 : 직접 촬영)


 솔직히 공연은 재미없었다. 장르가 오페라이다 보니 주고받는 대사는 거의 없이 모두 노래로 되어 있었는데, 그마저도 다 이탈리아어라서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인터미션 이후에는 지루해서 꾸벅꾸벅 졸 뻔했었다. 무대 위의 인형들도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나중에는 너무 왔다 갔다 해서 정신이 없었다. 참고로 굉장히 작은 공연장 무대에 인형만 올려져 있고 그 위에는 이를 조종하는 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데, 보통의 경우 한 인형당 한 사람씩 담당하고 있다. 각각의 인형들에 매달린 줄은 팔과 다리에 각각 2개, 머리와 어깨에 1개씩 등 많게는 8개까지 연결되었었는데, 나중에 등장인물이 많아지면서 이를 조종하는 사람도 덩달아 증가한다. 20개 가까이 되는 줄과 3~4개의 인형, 그리고 굵직한 팔뚝들이 위에서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가며 날아다니니 집중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극의 내용은 알고 보면 나름 흥미롭다.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어느 에스파냐 작가의 희곡 속 가상인물인 ‘Don Juan(돈 후안)’이다. 이 인물은 색()을 밝히나 여자를 소중히 생각하는 카사노바와는 다르게 상대를 하나의 정복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스페인어 don은 세르반테스 소설의 주인공인 돈키호테(Don Quixote)의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남자 귀족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되는데, 즉 돈 후안은 부유하고 직위 높으며 여성편력(女性遍歷)이 심한 ‘후안 백작’인 셈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돈 많고 여자 밝히는 쓰레기다. (오페라 주인공인 돈 조반니는 쓰레기 짓을 일삼다가 결국 불구덩이 지옥으로 빠지는 최후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미 수천명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후 너무나도 뒤늦게 안테로스가 복수를 한 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참고 : 여섯번째 글 <받은 사랑에 보답하지 않는 자를 벌하는 신>)   


 이러한 유형의 남자를 프랑스에서는 chaud lapin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프랑스어 스터디할 때 원어민 친구가 알려준 표현인데, lapin은 ‘토끼’를 의미하며 chaud는 ‘뜨거운’의 뜻이다. (여기에서 chaud는 한 때 굉장히 유행했던 ‘뜨거운 와인’인 ‘Vin chaud(뱅쇼)’로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다) 즉, 정리하자면 ‘Chaud Lapin’은 ‘뜨거운 토끼’의 뜻인데, 왜 이들을 뜨거운 토끼라고 부르는 것일까? 사실 보기와는 다르게 토끼는 원래 성욕이 굉장히 왕성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귀여운 외모 뒤에 이러한 거친 본능이 가려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토끼가 몸이 달아올라 뜨거워지면 어떻게 될까?     


 그렇기에 성적 욕망이 과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지나치게 색(色)을 밝히며 이성과 성관계만을 가지기 원하는, 흔히 말하는 ‘발정(發情) 난 남성’을 뜨거운 토끼라고 하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발정(發情)은 ‘동물이 성호르몬에 의하여 성적 충동을 일으킴’이라고 나오는데, 동물이 성적 본능에 따라 하는 비(非) 이성적인 행동을 사람이 하는 것이다.     

     

 물론 많은 남자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돈 후안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수많은 '미투운동'을 통해서 그 실체가 어느 정도는 밝혀지지 않았는가.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며, 그와 같이 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할리우드 영화 중 스칼렛 요한슨과 조셉 고든 레빗 주연의 <Don Jon>이라는 작품이 있다. 주인공 존은 친구들 사이에서 호색가로 유명하기에 ‘돈 후안’의 이름을 따서 ‘돈 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그 역할을 맡은 배우 조셉 고든 레빗(Joseph Gordon Levitt)의 이름 레빗은 성욕 왕성한 동물인 토끼를 뜻하는 영어단어 rabbit과 발음이 비슷하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를 조토끼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돈 존’의 역할을 맡았던 조셉 고든 레빗은 완벽한 캐스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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