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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Aug 06. 2020

10%는 줘요!

13. TIP 팁

1. Trinkgeld (팁) : 독일어 trink(마시다) + geld(돈). "마시기 위한 돈"
2. Serving (서빙) : 라틴어 servus(노예)에서 파생. "음식점이나 카페 따위에서 음식을 나르며 손님의 시중을 드는 일"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2019. 04. 26(금) 독일 뮌헨에서 (1)


 “에이 5유로는 너무 작아요. 최소 10%는 줘요. 너희 테이블 담당해서 계속 음식 가져다줬는데... ”     


 유럽에는 우리에게 조금 생소한 팁 문화가 있다. 미국에서는 전체 음식 값의 최소 10 ~ 15% 정도를 팁으로 주는 것이 관례라고 들었는데, 유럽은 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는 듯했다. 적어도 내가 방문한 식당들에 한해서는 그랬었다. 팁을 노골적으로 10% 요구한 경우는 딱 한 번, 이미 모든 이용료의 15% 가량이 팁의 명목으로 붙기 때문에 별도의 팁이 필요 없다고 들었던 독일에서 있었다.     


 스위스 인터라켄을 떠나 루체른에 잠깐 들른 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뮌헨에 도착한 우리는 너무나도 배고파서 도착하자마자 아우구스티너 양조장으로 향했다. 배도 고팠지만 무엇보다 그 유명한 독일 맥주를 맛본다는 생각에 기대감으로 들떴었다. 식사로는 돈가스 비슷한 슈니첼(Schnitzel)과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를 시켰었다. 참고로 슈바인스학세는 ‘돼지’를 뜻하는 schwein과 ‘(소나 돼지 등의) 발목 윗부분’을 뜻하는 shaxe가 합쳐진 단어로, 우리나라의 족발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그렇다면 독일 축구선수 슈바인슈타이거의 이름에는 무슨 뜻이 숨어있을까? 돼지에 올라타는 사람?)

슈니첼과 슈바인스학세 (출처 : 직접 촬영)


 음식 맛은 생각보다는 별로였지만 맥주는 술맛을 모르는 내가 느끼기에도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배를 다 채우고 난 뒤 계산서를 요청해서 가격을 확인해보니 195유로 정도 나왔다. 그래서 5유로 팁 포함하여 총 200유로를 냈는데, 우리 테이블을 담당했던 종업원이 앙탈스러운 말투로 자기가 많이 신경 써줬다고 하면서 팁으로 전체 음식값의 10%를 달라고 떼를 부렸었다. 물론 이 식당의 경우에는 10%의 팁을 주는 것이 기본적인 매너일 수도 있다. 그러나 흔쾌히 감사의 표시로 준 것은 아니었기에 약간 억울한 느낌도 있었다. 사람이 많아 주문도 제때 안 받아 주기도 했고 우리 테이블만 기본 식전빵도 늦게 나왔기에 감사함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히 말싸움하기 싫어서 부랴부랴 동행들과 돈을 더 긁어모아 10%를 맞춰서 줬다.  


 그때 ‘유럽은 왜 팁 문화가 발전했을까?’라는 의문점을 제대로 처음 가졌던 것 같다. 여행 떠나기 전부터 각 나라마다 ‘팁은 몇 %를 줘야 한다’ 등의 정보는 여러 채널을 통해서 많이 들었었지만, 왜 줘야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이유에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도 의문을 가졌던 것이다. 기본적인 매너이자 일종의 암묵적 규칙이라고는 하는데 완전히 설득이 되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팁은 종업원 분들에 대한 일종의 존중의 표시가 아닐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팁은 독일어로 trinkgeld(트링크겔드)라고 한다. 이는 ‘마시다’는 뜻을 가진 trink와 ‘돈’을 의미하는 geld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로, 풀어쓰면 ‘마시기 위한 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식당에 편하게 앉아 있는 동안 주문을 받고 물 따라주며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는 등에 대한 노고에 감사하며, 하루 일과를 끝낸 뒤 ‘맥주를 마시며 노력에 대한 보상받을 수 있도록 주는 돈’의 의미가 아닐까? (참고로 프랑스어로 팁을 의미하는 단어 pourboire는 '~을 위해' 뜻의 pour와 '마시다'는 의미의 boire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로, 독일어 trinkgeld와 거의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다) 

10%의 팁을 요구했었던 아우구스티너 양조장 (출처 : 직접 촬영)


 식당에서 종업원이 주문을 받거나 음식을 전달하는 행위 등을 serving(서빙)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가 라틴어로 노예를 의미하는 servus(세르부스)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을 아는가? 게다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서빙’을 아예 ‘음식점이나 카페 따위에서 음식을 나르며 손님의 시중을 드는 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종업원들이 추가적으로 제공하는 편의를 service(서비스)라고 하는데, 이 단어도 serving과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 즉, 어원적으로 보면 서빙을 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노예나 하인과 같이 을의 입장에서 갑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중을 들며 편의를 제공한다’는 뜻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종종 우리나라에서는 종업원에 대한 태도가 마치 ‘하인을 부리듯’ 하는 경우가 있다. ‘어이’라는 호칭은 다반사이며, 자신을 조금만 불쾌하게 해도 ‘에이 여기 서비스 별로네! 장사하기 싫나?’라며 우스꽝스러운 갑질을 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에서는 종업원들을 정당한 노동자로 인정하며 그들의 노력에 대한 대가와 감사함으로 팁을 주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조건 알바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낸 음식 값 안에 그런 일말의 호사라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돈을 지불하는 입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스로를 ‘갑’의 위치에 두면 안 된다. 그리고 구입하는 재화 가치 이상의 서비스나 웃음 또는 친절을 기대하면서,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불친절’하다고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하루 일과 끝나고 마실 수 있는 맥주 한 잔의 비용도 따로 챙겨주지 않으면서 그러지는 말자. 유럽에 어떤 이유로 팁 문화가 발달했는지, 그 종업원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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