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nhedonia (안헤도니아) : 그리스어 an(~가 아니다, ~이 없다) + hedone(기쁨). "기쁨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상태"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러운 공포에서 생기는 병)
2. The Hamlet Syndrome (햄릿 증후군) : "수동적인 생활 습관이나 과도하게 넘쳐 나는 정보들로 인해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 증세" (출처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2019. 04. 25(목)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와 진짜 ... 똥 싸는데도 황홀하네. 이게 말이 되나?’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에 이어 세 번째 여행지는 바로 미친 물가(物價)도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쉽게 용서된다는 나라 스위스였다. 런던에서 파리로 갈 때에는 유로스타 타고 3시간 만에 도착해서 괜찮았는데, 파리에서 스위스 인터라켄까지는 버스로 거의 반나절이 넘는 시간 동안 이동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좌우로 비틀며 참아내서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긴 했으나, 육체적으로 너무나도 피곤했던 탓에 씻고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끼니 해결한 뒤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고 아침에 일어나서 비몽사몽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배가 아파서 바로 볼일 보러 들어갔는데... 좌변기 한쪽이 통유리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를 통해 보이는 풍경이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아름답고 신선하게 똥 누는 것은 처음이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니 더 이상 추가적인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하다.
비록 바람이 많이 불어서 패러글라이딩도 못하고 융프라우도 못 올라갔었지만, 인터라켄 시내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개인적으로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 돌 때가 제일 좋았는데, 이상하게도 갑자기 ‘이런 풍경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우울해지기도 했었다. 혹시 나처럼 여행 중에 너무나도 황홀한 풍경을 보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슬프거나 우울한 감정이 생기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약간의 우울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심지어 병까지 얻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를 anhedonia(안헤도니아)라고 하는데, 알랭 드 보통의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개념이다. 영국 의학협회에서 고산병과 아주 흡사한 증상의 병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 책에서는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러운 공포에서 생기는 것”으로, “지상에서 행복을 실현하는 일이 눈앞의 가능성으로 대두되면서, 그런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하여 격한 생리적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스페인 발렌시아의 어느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그곳의 전원적인 풍경을 보고 경험하는, 그들 사이에서는 나름 흔한 병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떻게 보면 ‘현자타임’이라는 개념과 조금은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는 현자(賢者)라는 한자어와 time이라는 영어가 뒤섞인 신조어인데,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도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샘에는 “어떤 것에 대한 욕구를 충족한 직후에 이전까지의 열정이나 흥분 따위가 사그라들고 평정심, 초탈, 무념무상, 허무함과 같은 감정이 찾아오는 시간을 이르는 말. 마치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현자와 같은 상태가 된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원래 의미로는 성관계나 자위행위 후에 찾아오는 허무함을 뜻하는데, 이를 라틴어로 조금 고급스럽게 풀어보면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가 된다.
어떤 것에 대한 욕구의 충족 또는 성관계 후에 허무함이 찾아오는 이유는 그 성취 또는 경험이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흥분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 또는 그때의 흥분. 주로 성교 때에, 성적 쾌감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나 그때의 쾌감'을 오르가슴(Orgasm)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프랑스어로는 petite mort(영어로는 little death, 즉 작은 죽음)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경험이 너무나 강렬하여 한 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작고 가볍더라도 죽음을 한 차례 경험하면 삶의 허무함 또는 무상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나에게 안헤도니아를 선사할 뻔했던 스위스 풍경 (출처 : 직접 촬영)
즉,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구조일 것이다. 안헤도니아는 ‘행복 실현 ⟶ ‘더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 ⟶ 우울함’, 그리고 현자타임은 ‘욕구 충족 ⟶ ‘더 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음’ ⟶ 열정과 흥분의 상실 ⟶ 허무함’의 단계를 거친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결국 나중에 경험하게 될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목표 설정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면서 스스로 합리화하며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느낄 행복과 열정 또는 흥분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개념으로는 ‘햄릿 증후군’이 있는데, 이를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서는 “수동적인 생활 습관이나 과도하게 넘쳐 나는 정보들로 인해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 증세”라고 정의한다. 살면서 만족을 해보지 못했던 사람 혹은 태어날 때부터 왕자였던 햄릿과 같이 성취적 만족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선택할 때 해보지도 않고 앞으로 경험하게 될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에,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데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간단하게 세 영어단어로 정리하면 “Overthinkers who underachieve”가 된다. 이와 같이 지나치게 많은 생각은 성취를 억제시킨다.
만약 여행지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면, 연애 관계에서는 분명 한 번쯤은 이를 경험해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헤어지는 게 두려워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망설여진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단계를 넘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나중에 사랑이 식어서 이 행복이 사라지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전의 연애 경험들로 인해 상처, 즉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들이 이러한 걱정을 종종 한다. 그런데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지금의 행복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아닐까?
사람들은 자신이 유토피아(Utopia)라고 생각하는 곳을 방문하기 원한다. 그러나 그곳을 방문한 이후 ‘다시는 보지 못할 풍경’을 봤고, 이보다 더 괜찮은 곳은 없기에 이상향이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는 무엇인가 성취하기를 간절히 원하며 일생일대의 목표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 꿈을 이루고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그것이 별것 아니라고 느끼면서 허무함이 생길 수 있다. 피겨 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도 어릴 때부터 자신의 최종 목표이자 꿈은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생각하며 훈련에 매진했었는데,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 목표를 이루고 금메달을 보자 ‘이것 때문에 그렇게 힘들게 노력했었나’하는 허무함이 생긴 적이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실제로 이는 잠깐의 슬럼프로 이어지며 올림픽 이후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열린 토리노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더 높은 목표를 잡거나 더 큰 이상을 꿈꿀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위스보다 아름다운 여행지는 더 많으며, 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목표들도 무궁무진하다. 김연아 선수도 이내 마음을 다잡고 멋지게 슬럼프를 극복하여 2014년 소치올림픽 은메달, 2018 평창올림픽 유치 지지연설 및 홍보대사 활동 등의 활약상을 보이지 않았는가. 안헤도니아라는 병을 얻을 까봐 아름답고 황홀한 여행지들을 방문하기도 전에 겁먹거나, 평생의 목표를 이룬 뒤 허무하고 우울할까 봐 도전을 두려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는 듯하다. 지레 겁먹지 말자. 그 실체를 확인하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성취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이 점은 반드시 알아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