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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Jul 04. 2020

똥, 제길, 행운을 빈다

10. Merde 똥, 제길, 행운을 빈다

1. (Je te dis) Merde : "너에게 '똥'이라고 이야기하다" =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 (스페인어의 Mucha mierda와 포르투갈어의 Muita merda도 같은 의미)
2.  Fortune (행운) : 로마 신화의 운명과 행운의 여신 fortuna와 관련


 2019. 04. 22(월) 프랑스 파리에서 (3)


 “이런, 제길!”     


 루브르 박물관에서 거의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실망감과 현기증만 쌓였기에, 바람도 쐴 겸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 일단 밖으로 나왔다. 크게 낭만적이지 않은 분위기의 센 강을 따라서 길을 걷고 있던 중 20대처럼 보이는 어떤 남자와 살짝 부딪혔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들고 있던 커피가 조금 쏟아졌다. 내가 바로 미안하다고 했는데 그 남자의 입에서 영화에서만 듣던 그 욕이 나왔다. Merde(메흐드)! 뭔가 기분이 찜찜했지만, 실제로 그 단어를 원어민 발음으로 현지에서 듣는 게 신기했다. ‘아! 저게 그 욕이구나’ Merde는 프랑스어로 ‘똥’의 뜻인데, ‘소 똥’을 뜻하는 영어의 bull shit과 같이 ‘이런 제길’ 의미의 욕으로도 사용되는 표현이다.      


 참고로 여행을 하기 전에 각 나라의 욕은 미리 알아가는 것이 좋다. 특히 모욕적이며 심한 욕들은 최대한 많이 알아가야 한다. 그것을 무작정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우리를 욕보이기 위해서 쓰는데도 알아듣지 못하고 바보같이 웃고 넘기지 않기 위해서다. (호주에 처음 갔을 때 내가 그랬었다. 나를 비웃는 것도 못알아들어서 실실 웃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같았었다) 하지만 내가 들었던 ‘이런 제길’ 정도는 그냥 애교로 넘어가 줄만 해서 따로 문제제기는 하지 않았다. 내 잘못이 조금 더 컸던 것도 있었고.     


 그런데 merde라는 단어와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우리는 보통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에게 ‘행운을 빈다’는 말을 종종 한다. 영어권에서도 손가락 두개를 꼬아가며 good luck이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시험 등 중요한 일정을 앞둔 사람들에게 bonne chance, 즉 ‘행운을 빈다’와 같은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확률이 높지 않은 통제 밖의 운에 맡기기보다는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Je te dis) Merde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한다. 이는 ‘너에게 똥이라고 이야기한다’는 뜻인데, 왜 행운을 빌어줄 대상에게 ‘똥’이라는 더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예전에 마차가 다니던 19C 시절에는 연극이나 오페라 등 공연이 인기 있었는데, 이런 공연을 보러 갈 때 돈 많은 상류층들은 항상 마차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마부와 말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는데, 그동안 생리현상을 참지 못하는 말들이 그렇게도 많은 똥을 쌌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말똥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왔으며, 중간에 실망하여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렸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공연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 등을 잘 마무리하라고 merde라고 하는 것이다. 참고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누군가를 응원할 때 ‘많은 똥’을 의미하는 표현인 mucha mierda와 muita merda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냥 똥도 아니고 많은 똥을 바란다니 그만큼 더 간절히 응원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예전엔 흔했을 마차. 말똥. Merde! (출처 : 직접 촬영)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The Florentine> 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에도 ‘행운을 빈다’는 뜻의 buona fortuna라는 표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오히려 불운을 바라는 것으로 받아들여 지기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참고로 이 표현은 로마 신화의 운명과 행운의 여신 fortuna와 관련 있는데, 이는 ‘행운’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fortune의 어원이면서 이탈리아어로 ‘행운’을 뜻한다) 제롬 데이비드 셀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행운을 빈다’는 말을 ‘끔찍한 악담’이라고 묘사하기도 했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맥락에서는 merde나 mucha mierda 혹은 muita merda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큰일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행운을 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이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일을 잘 해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와 반면에 merde는 ‘운’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이 준비했던 일을 성황리에 잘 마무리하라는 격려의 개념인 것이다. 우리도 누군가가 큰일을 앞두고 있다면 행운을 빌어주기보다는 ‘잘 마무리해라’는 격려의 말 한마디를 건네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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