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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Jul 08. 2020

'날계란 3개와 노란 원숭이'의 기억

11. Xenophobia 외국인 혐오증

1. Catcall (캣콜링) :  1650년대에 연극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불만족을 표시할 때 냈던 소음에서 유래. 마치 성난 고양이 울음소리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짐
2. Harass (괴롭히다, 희롱하다) : 프랑스어 harer(개를 풀다)에서 유래. 또는 영어 Hare(산토끼) + ass(엉덩이). "산토끼 궁둥이를 사냥개가 쫒아가다"
3. Xenophobia (외국인 혐오증) : Xeno(외국의, 이상한, 낯선) + phobia(두려움, 공포)


 2019. 04. 22(월) 프랑스 파리에서 (4)


 ‘이런 그지같은 놈들...’     


 ‘똥(Merde)’이라는 말을 듣고 난 뒤 얼마 안 되어서였다. 정처 없이 길을 걷다가 어느 골목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잘 알아듣지도 못했고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원래 갈 길을 갔다. 그랬더니 그 친구들이 나를 쳐다보며 한 번 더 귀에 박히는 그 단어를 툭 던졌다.  "Putain chinoise" 그래서 그쪽을 쳐다봤는데 나를 보고 씩~ 웃더니 스멀스멀 다른 곳으로 갔다.      


 프랑스어로 putain은 영어의 hooker에 해당하며 chinoise는 중국인을 의미한다. 즉, 이 말은 ‘몸을 파는 중국인’ 정도의 뜻이다. (엄연히 한국인인 나에게 중국인이라고 한 것도 열받는데, 이러한 수식어구를 붙여 지껄여대니 화가 안나겠는가) 예전에는 아시아인들이 유럽의 길거리를 지나가면 그 철없는 놈들이 뜬금없이 ‘곤니찌와’를 외치곤 했었는데, 지금은 수많은 중국인들의 영향으로 인해 ‘니하오’라고 많이 한다. 특히 아시아인 비하할 때 ‘중국인’이라는 말을 넣어서 많이 이야기하는데, putain chinoise도 프랑스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모욕적인 표현 중 하나다.     


 이 외에도 인종차별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눈을 양쪽으로 째는 제스처는 고전적이지만 아직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동양인들의 눈은 작다’는 편견에서 시작된 인종차별 제스처인데, 너무 기분이 나쁘다면 눈을 아래위로 째면서 유치하게나마 반박할 수도 있다. 나는 호주에서 학교 다닐 때 '눈 째기'를 포함하여 몇 번의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중 최악은 계란 사건이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 버스 타러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백인 놈들 3명이 차타고 가면서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 노란 원숭이야!(Go back to your home, yellow monkey!)’라는 외침과 동시에 날계란 3개를 던졌다. 어깨랑 다리에 맞았는데 뭐라고 욕을 되돌려주기 전에 차 타고 훌쩍 가버렸다. 치사한 놈들. 찝찝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는데, 그 꼴로 수업을 들을 수도 없었고 별로 기분도 좋지 않았기에 일단 집으로 돌아왔었다. 지금이야 추억삼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엔 정말 분통터지고 억울했었다.     


 이러한 인종차별 외에 주로 여성들에게 향하는 캣콜링(catcalling)도 문제다. 이는 특히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종종 목격되는데, 남성이 길거리 지나가는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관심을 얻기 위해 휘파람 소리를 내거나 성희롱적 발언을 하는 행위 등을 의미한다. Catcall은 1650년대에 연극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불만족을 표시할 때 냈던 소음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이 소리가 마치 성난 고양이 울음소리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밑 입술을 양손으로 한 껏 모은 뒤 바람을 불어넣는 늑대의 휘파람(wolf whistle)도 캣콜링과 양대산맥격으로 자주 발생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고양이 울음소리나 늑대 휘파람 소리 등은 모두 street harassment, 즉 길거리 (성)희롱에 해당하는 엄연히 불법적인 행동이다. 그럼에도 별다른 제재가 가해지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참고로 여기서 사용되는 harass라는 단어는 ‘개를 풀다(set a dog on)’의 뜻을 가진 프랑스어 harer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왜 ‘개를 풀다’는 뜻의 단어를 사용했을까? 영어로 산토끼는 hare이며 ass는 엉덩이다. 즉, 이를 풀어서 해석하면 ‘산토끼 궁둥이를 사냥개가 쫒아가다’는 의미가 된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사냥이 귀족 스포츠로 각광받았던 때가 있었는데, 총 대신에 사냥개를 풀어서 토끼를 잡았다고 한다. 힘 좋은 강자인 사냥개가 약자인 토끼의 궁둥이를 쫒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런 동물들이 하는 행동을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명의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유럽에서, 그것도 길거리(street)에서 자신의 본능이 시키는 대로 이성의 엉덩이만 보고 달려드는 꼴이 목격된다는 것이 우습지 않은가?


 인종차별의 조금 극단적인 형태는 xenophobia(외국인 혐오증)인데, 단순히 자신과 다른 인종의 외국인에 대해서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증오 수준의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외국의, 이상한 혹은 낯선’의 뜻을 가진 xeno와 ‘두려움, 공포’라는 의미의 phobia를 합친 영어 단어로, 낯선 상대에 대한 두려움 혹은 공포감을 의미한다. 영화 <싱글맨>에는 어느 대학교 문학 강의 중 강사인 조지(콜린 퍼스)에게 한 학생이 성경을 인용하며 ‘나치의 유대인 탄압에 이유가 있었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 질문에 조지는 ‘나치에겐 증오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두려움이었다(The cause was fear)’라고 대답한다. 나치가 유대인을 그렇게도 싫어하고 증오했던 것은 사실 그들이 무서웠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일부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나 무서워하거나 싫어할까? 증오라는 감정이 무서움 또는 두려움이라는 것과 어떻게 연관이 있을까?      


 우리는 보통 친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낯선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낯선 감정은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처음에는 호기심이 생긴다. ‘도대체 저 물건은 뭐지?’ ‘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하지만 이후에는 크게 두 가지 길로 나뉜다. 그 호기심으로 인해서 흥미가 커지게 되면 제대로 알아보고 싶은 감정이 생기지만, 호기심이 호감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계속 경계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경우에는 두려움의 감정으로 발전한다.      


 전자의 경우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을 경우에 많이 나타난다. 영어로 ‘좋아하다’는 like인데, 이 단어가 전치사로 사용될 경우에는 ‘~와 비슷한’의 뜻이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서로 비슷하면 친숙한 감정을 느껴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외국에 여행 갔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괜히 반가운 감정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우리말로 이야기하면 뭔가 신기하면서도 아는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나만 그런가) 만약에 겉으로 보이는 피부색이나 다른 요소들 때문에 낯설어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느낀다면, 공통적인 취미나 관심사 등을 찾으면 서로 간의 거리가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리멤버 타이탄>을 보면 초반에는 흑인 학생들과 백인 학생들이 서로 감정싸움을 하지만, 결국엔 '미식축구'라는 공통 분모를 통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후자의 경우는 어떨까? 이 경우는 대부분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공통 관심사를 알아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소위 말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 것이다. 내가 인종차별을 당했던 것도 이것 때문인 듯하다. 호주는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 타 국가에서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는데, ‘자신들의 일자리가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이민자들을 싫어하고 증오하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 날계란 3개를 선사한 그놈들도 이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호주에서 이민자들이 생업으로 가지는 일들은 대부분 그들이 기피하는 청소, 설거지 등이다. 나도 호주 유학생활동안 설거지만 거의 4년을 했었다. 자신들이 취업 못하는 것을 왜 이민자들의 탓으로 돌리려 하는건가)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과 함께 유럽 외 전 세계적으로 sinophobia, 즉 ‘중국 혐오증’이라는 단어가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원지가 중국 우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혹시’라는 의문을 가지고 상대하기를 피하거나, 무작정 차별적인 발언 또는 행동을 쏟아내는 것이다. 심지어는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문화적 우월감 또는 막연한 두려움 등으로 똘똘 뭉친 비상식적인 사람들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할 수 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만약 밤늦은 시간에 인종차별을 당하면 웬만해선 그냥 무시하는 것이 낫다. 술뿐만 아니라 마약에 취한 사람들도 종종 있기에 괜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약에 취해 눈 풀려서 헤롱헤롱대며 총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놈들과 무슨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게다가 우리가 여행자든 이민자든지 간에 외국에서 온 이방인이기에, 현지인들과 사사로운 시비가 붙을 경우 경찰관이 개입되어도 더 불리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언어가 통하더라도 그쪽 경찰은 자국민 보호가 우선이기에 정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못 들은 척 넘어가면 화가 나고 분함을 느낀다. 진짜 별 것도 아닌 것들이 그렇게 까부는 게 너무 보기 싫고 한 대 쥐어박고 싶기 때문이다. 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겠지만 어떤 방법이 괜찮을지 다 같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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