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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Jun 27. 2020

당당한 승리의 신, 그 뒤에 묻혀버린 질투의 신

9. Zelos 질투의 신 (승리의 신 니케의 동생)

1. 그리스 신화 승리의 신 니케(Niche) = 로마 신화 승리의 신 빅토리아(Victoria)
2. Victory (승리) : 라틴어 vincere(정복하다, 극복하다)의 과거분사형인 victoria에서 유래
3. Jealous (질투하는) : 라틴어 zelus(열정, 열의)에서 유래. 그리스 신화 속 질투의 신 젤로스(Zelos)와 관련.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열정과 열의 때문에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


 2019. 04. 22(월) 프랑스 파리에서 (2)


 ‘와 날개랑 몸만 있는데도 당당하네’     


 전날 파리 여행의 맛보기 치고는 메인 요리 같았던 에펠탑 야경 실컷 구경하고 난 뒤 둘째 날에는 본격적인 파리 시내 구경에 나섰다. 우선 아침에는 샤크레쾨르 대성당과 테르트르 광장 등 몽마르트 언덕의 유명한 관광지들을 다 둘러봤다. 그 뒤 간단히 점심 해결하고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 박물관은 미술작품에 하나도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왠지 반드시 방문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장소다. 그렇기에 미리 한국에서 뮤지엄 패스를 구입한 뒤 여행을 떠났다. (참고로 이것만 있으면 루브르 박물관을 포함해서 오르세 미술관, 개선문, 베르사유 궁전 등을 방문할 수 있다. 2일권부터 4일, 6일권 등 일자별로 다양하기에 여행 일정을 미리 계획하고 구매하면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다)    


 일단 남들처럼 여러 장의 인증샷을 찍은 뒤 유리 피라미드를 통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동행들과는 나중에 만나기로 하고 혼자 박물관 투어를 시작했다. 그런데 워낙 넓다 보니 처음부터 헤맸다. 도대체 어디에 무슨 작품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출구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등 그 속에서 정신없이 헤매다 보니 금방 지쳐버렸고, 그러다보니 수많은 그림들과 조각들이 옆에서 지나가는데도 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내셔널갤러리의 데자뷰를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 조차도 바글바글한 사람 때문에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사진 몇 장만 찍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마주친 것이 바로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신인 니케(Niche) 동상이었다. 이 승리의 신은 우리에게 신발 브랜드명인 나이키(Nike)로 친숙하다. 우선 나이키라는 이름 자체가 니케의 영어식 발음이며, 상표의 모양은 니케의 날개를 형상화한 것이다. (참고로 로마 신화에서는 빅토리아(Victoria)가 동격인데 ‘승리’를 의미하는 victoria는 ‘정복하다, 극복하다’는 뜻의 라틴어 vincere의 과거분사형이며, 영어로 ‘승리’를 뜻하는 victory의 어원이기도 하다)

루브르 박물관에 당당하게 서있는 니케 (출처 : 직접 촬영)


 이 동상은 복도 끝에 우뚝 홀로 전시되어있는데, 양팔과 얼굴이 없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보는 사람을 압도하기에 충분해보였다. 그런데 이런 당당한 승리의 신에게 질투의 신 젤로스(Zelos)라는 남동생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도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한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검색을 해도 관련 내용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실제로 검색창에 ‘니케’의 이미지를 검색하면 당당한 자태의 니케 동상이 검색되지만, ‘질투의 신 젤로스’라고 치면 어느 잘생긴 아이돌 그룹(빅스, VIXX)의 이미지만 검색된다. 이들이 2016년에 발표한 첫 번째 시리즈 앨범명이 ‘젤로스’였는데,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질투와 경쟁을 하는 콘셉트였기 때문이다. 구글링을 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zelos’라는 검색어에는 시계 사진, ‘zelus’에는 어떤 곤충 이미지만 잔뜩 나온다. 질투라는 개념만 남아있을 뿐 제대로 이미지화된 정보는 거의 전무한 것이다. 


 사실 젤로스에게는 니케 말고도 남매가 여럿있다. 그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공포스러운 폭력의 신 비아(Bia)와 힘의 신 크라토스(Kratos)도 있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젤로스의 형들과 누나의 존재감이 너무 강하다. 어떻게 보면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다. 누나나 형들이 서로 폭력을 휘두르고 힘으로 지배하려 들며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기려고 한다면 그 사이에서 얼마나 기가 죽겠는가. 무엇보다도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들의 그늘에 가려져 자신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없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지고, 그렇기에 누나와 형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나 능력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는 감정이 가장 컸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젤로스 신의 이름에서 ‘질투하는’의 뜻을 가진 영어단어 jealous가 유래된 것이다.  


 ‘질투’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감정은 무엇인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이들은 아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질투가 강하면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시기하는 마음이 커지면 어떤 일을 하는데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성공을 깎아내리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 보면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못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신경도 뛰어나고 인기도 많은 형을 둔 동생을 떠올려보자. 안그래도 평소 형에게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곁들여 부모님은 형에게 닭다리 두개 다 주고, 학교 선생님은 '너희 형 반, 아니 발톱만큼만 해봐라'는 등의 차별과 비교까지 해댈 것이다. 그러면 더 잘하려는 생각보다 오히려 더 망가져야겠다는 반항심만 커질 것이다.    


 하지만 질투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 Jealous의 어원인 라틴어 zelus에는 zeal, 즉 ‘열정, 열의’ 등의 뜻도 있기 때문이다. 즉,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열정과 열의 때문에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감정이 과하지만 않으면 어떤 일을 하는데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위의 경우 동생이 '형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살린다면, 질투가 오히려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넷플릭스 다큐 <라스트 댄스>에서도 마이클 조던이 자신의 성공 요소를 '형에 대한 경쟁심'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질투는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 자신이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이러한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삶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질투, 하려면 해라. 대신 현명하게 그 감정을 이용하도록 하자. 자격지심으로 가득 차있는 상태에서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삶을 낭비할 것인지, 아니면 질투의 감정을 동기부여로 삼아서 열정적으로 삶을 즐길 것인지는 본인이 선택할 몫이다. 부디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 (출처 :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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