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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May 24. 2020

걱정하지 말고 벌레나 먹자~ (feat. 티몬과 품바)

7. Hakuna Matata 하쿠나 마타타

1. Lyceum (리체움) : 고대 그리스 시대에 철학 가르치던 학교 이름
2. Worry (걱정) : 1300년대 중세 영어 wirien(목을 물거나 흔들어서 부상을 입히거나 죽이다)에서 유래


 2019. 04. 19(금) 영국 런던에서 (5)


 피카딜리 광장에서 안테로스를 보고 커피 한잔 한  설레는 마음을 안고 뮤지컬 공연장으로 향했다. 사실 여행 떠나기 전에는 뮤지컬 공연은 포기하려고 했었다. 시내 구경만 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여기가지 왔으니 뮤지컬 한 편 정도는 봐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점점 커지는 바람에 일정을 새로 잡았다.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등은 내용이 무거울 것 같기도 하고 가격도 비싸서 애초에 깔끔하게 포기했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은 <스쿨 오브 락>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보게 되더라도 Dayseat(데이시트)로 볼 생각이었기에 선택권은 한정되어 있었다. ‘데이시트’는 공연 전날까지 판매되지 않은 좌석(seat)을 당일(day) 아침 10시부터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다. 어떤 공연을 보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긴 하지만, 보통 뮤지컬 한 편을 보려면 최소 50파운드, 즉 한화로 약 7만 원이 넘어간다. 그러나 데이시트로 구매 시 좌석의 위치에 상관없이 20파운드로 구매 가능하다. 지갑이 가벼운 여행객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지다. 

20 파운드짜리 데이시트 티켓 (출처 : 직접 촬영)


 데이시트의 경우 티켓 오픈 1시간 반전부터 줄 서야 티켓을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째 날 아침 일찍 <스쿨 오브 락> 공연장으로 향했는데, 해당 공연장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순간적으로 '랙'이 걸리며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을 한 뒤 차선으로 생각하고 있던  <라이온 킹> 공연장으로 향했다. 이미 시간을 많이 허비한 터라 공연장에 도착하니 시간은 9시 40분 가까이 되었었다. 10시 오픈이니 20분밖에 안 남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예상했던 만큼 긴 줄이 늘어져 있었는데,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심지어 공연 기다리던 사람에게 커피 샘플을 나눠주던 스타벅스 직원분도 한국분이었다!)


 마음 졸이며 기다리다가 드디어 10시가 되었다. 티켓 오피스가 열리고 사람들이 표를 사기 시작하면서 대기 줄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먼저 서있던 분들이 차례대로 표를 구한 뒤 밖으로 나와서 기쁜 표정으로 인증 샷을 찍었다. 정말 부러웠다. (그분들 잘못은 아니지만 약간 얄밉기도 했다) 줄이 조금씩 사라지며 한 발짝씩 티켓 판매대로 다가갈 때마다 ‘내 차례가 되기 전에 표가 다 팔리면 어쩌지’라는 걱정도 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남은 좌석이 별로 없으면 줄 서서 기다려도 표를 못 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다. '내가 그 재수없는 1인이 되지 않아야 할텐데' 그러나 정말 운 좋게도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제일 앞자리였다! 표 구매할 때 확인해보니 남은 자리가 거의 없었다. 헤매다가 조금만 더 늦게 갔으면 못 볼 뻔했었다.      


 요일에 따라 공연 시간은 다른데 내가 예매했던 공연은 7시 반 시작이었다. 솔직히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을 본다는 것 자체에 대한 설렘은 있었지만, <라이온 킹>이라는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데이시트 고를 때 1순위로 선택하는 공연이었기에 오히려 약간의 거부감도 솔직히 있었다. 다들 보는 뻔한 공연을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뒤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너무 재밌어서 다음날 한번 더 볼까 고민했을 정도다.


 <라이온 킹> 공연 전용극장 이름은 Lyceum theatre인데, 참고로 런던 웨스트엔드와 더불어 뮤지컬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뉴욕의 Broadway(브로드웨이)에도 동일한 이름의 극장이 있다. Lyceum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철학을 가르치던 학교 이름인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곳에서 제자들을 양성했다고 한다. 프랑스어로 고등학교를 의미하는 lycée도 위의 단어에서 유래했다. 그렇다면 왜 뮤지컬 극장 이름을 ‘리세움 극장’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뮤지컬이 단순히 오락용으로 즐기는 목적 외에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알려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자 아니었을까?      

라이온 킹 공연장 Lyceum Theatre (출처 : 직접 촬영)


 이러한 건립 취지에 맞게 나도 공연을 보면서 철학적인 내용을 하나 배웠다. <라이온 킹> 공연에는 여러 명장면과 명대사가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Hakuna Matata(하쿠나 마타타)’였다. 그 뜻은 티몬과 품바가 “It means no worries for the rest of your days(남은 생애 동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야)”라고 친절하게 노래로 알려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걱정을 많이 한다. 그런데 걱정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일까? 영어로는 worry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사실 좀 무시무시하다.     


 이는 ‘목을 물거나 흔들어서 부상을 입히거나 죽이다’는 뜻을 가진 1300년대 중세 영어 wirien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냥개나 늑대가 먹잇감을 발견하고 쫒아가서 하는 행동들이라는 의미다. 즉, 걱정이라는 것은 우리를 찢고 비틀고 목 조르는 존재인데, 그것을 제대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물론 걱정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긴 해도 목 졸려서 고통스럽게 죽지 않으려면 그 빈도수를 줄여야 할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확실한 것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작정하면 걱정거리 찾는 것은 일도 아니다. ‘비 오면 안 되는데’ ‘숙소 예약이 잘못되어 있으면 어떡하지?’ ‘소매치기당해서 여권이랑 돈 다 잃어버리면 울 것 같은데’ 등 다양하다. 그러나 걱정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 확률 때문에 조급하거나 불안해하며 여행을 망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 물론 나 스스로도 그 의미 없는 짓을 하기도 했다. 여행 떠나기 전에 ‘아침 일찍 비행기 타야 되는데 아침에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또 지난번처럼 비행기가 난기류 만나면 어떡하지?’ ‘시차 적응 힘들 텐데 숙소 근처에 수영장 없으면 안 되는데’ 등의 걱정거리가 조금은 있었다. 게다가 런던에서 뮤지컬 티켓 사기 위해서 줄 서며 기다릴 때도 '표를 못 구하면 어떡하지?'라며 걱정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비행기도 제때 타고 난기류 없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런던에 도착했으며, 수영을 하지 않고도 생각보다 쉽게 시차 적응했었다. 무엇보다도 뮤지컬 표는 제일 앞자리로 구했었다. 그러면서 걱정거리들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차피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없을뿐더러 그 일이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티몬과 품바도 '하이에나나 사자에게 목을 물어 뜯겨 죽으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기보단 즐겁게 Hakuna Matata외치며 벌레를 잡아먹지 않았는가. 걱정하는데 힘 빼지 말고 여행을 즐기자!      

왼쪽 제일 끝의 티몬과 품바 (출처 :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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