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환 May 15. 2020

받은 사랑에 보답하지 않는 자를 벌하는 신

6. Anteros 안테로스

1. Anteros (안테로스) : 사랑의 신인 Eros(에로스)의 동생. "The avenger of unrequited love" (응답 없는 사랑에 대해 복수하는 자)
2. Avenge vs. Revenge (복수) 
 1) Avenge : 정의(Justice)를 위해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응징하는 복수  cf. 영화 <Avengers>
 2) Revenge : 개인적인(Personal) 복수


 2019. 04. 19(금) 영국 런던에서 (4)


 ‘저 위에 달려있는 동상은 뭐지? 에로스인가?’

    

 런던 여행 세번째 날에는 아침 일찍 움직여서 근위병 교대식을 보고 저렴한 스테이크로 가볍게 허기를 채운 뒤 런던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장소 중 하나인 피카딜리 광장(Piccadilly Circus)역으로 향했다. 이곳은 런던 사람들의 대표적인 약속 모임 장소 중 하나로, 친구 기다리는 사람과 관광객, 그리고 거리 공연가 등으로 인해 생기가 넘쳤다. 마치 홍대앞 걷고싶은거리를 보는 듯 했다. 수많은 사람이 지금은 운영하고 있지 않은 분수(Shaftesbury Memorial Fountain) 밑에 빙 둘러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며 버스커의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린 건 아니었지만 잠시 그 분위기에 심취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사람들이 앉아있는 분수의 꼭대기 부분에 있는 어떤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날개가 있고 활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에로스(Eros) 같아 보였다. ‘사랑이 넘치는 도시를 의미하는 건가?’라고 잠시 생각했을 뿐 당시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응답 없는 사랑에 대해 복수의 화살을 날리는 안테로스 (출처 : 직접 촬영)


 그러고 난 뒤 한국에 돌아와 여행 사진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그 분수 위에 있는 동상이 찍힌 사진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그런데 뭔가 내가 생각하던 에로스의 모습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호기심이 생겨서 확인해봤는데, 역시나 그 동상의 주인공은 에로스가 아니었다. 다름아닌 에로스의 동생인 안테로스(Anteros)였다. 에로스에게 동생이 있는 줄 몰랐는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안테로스가 ‘사랑의 신’이 아니라 ‘the avenger of unrequited love’, 즉 ‘응답 없는 사랑에 대한 복수’를 하는 신이라는 것이다. 형이 사랑을 마구잡이로 뿌려대는 바람에 되돌아오지 않는 사랑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생기자, 동생이 뒤따라다니며 이들에게 복수를 가하며 수습하는 등 진을 빼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복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우선 첫 번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개인적인(Personal) 복수’에 해당하는 revenge이며, 두 번째는 ‘정의(Justice)를 위해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응징하는 복수’인 avenge이다. 이를 참고하면 영화 <Avengers(어벤저스)> 제목은 ‘복수하는 자들’의 뜻임을 알 수 있다. 토르나 헐크, 아이언맨, 이상한 의사(Doctor Strange) 등은 정의를 위해 지구인들을 대신하여 악당 타노스에 대항하는 어벤저들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랑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존재는 아마도 날개 달린 아기 천사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에로스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간질간질해지며 아름다운 것만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참고로 에로스는 사랑과 미의 여신인 비너스(Venus)의 아들로 큐피드(Cupid) 또는 아모르(Amor)라고도 불리는데, 워낙 유명하다 보니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금화살과 상대방을 싫어하게 만드는 납화살을 들고 다니는데, 원래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랑에 빠지는 순간 어른이 된다. 그런데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금화살 때문에 아름다운 사이코(Psycho)인 프시케(Psyche)를 사랑하게 되고, 그 시점에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보따리들이 한가득 있다.     

<비너스의 탄생> 비너스와 그의 아들 큐피드(에로스) (출처 : 직접 촬영)


 그에 반해 그의 동생인 안테로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안테로스는 사랑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신인데, 언어적 의미는 ‘love returned’ 또는 ‘counter love’이다. 즉 ‘되돌려주는 사랑’의 뜻인데, 이것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 벌을 주기도 하는 정의의 사도인 셈이다. 쉽게 생각하면 ‘안테로스’는 ‘안티 에로스(anti-eros)’, 즉 에로스의 반대라고 봐도 크게 무방하지 않다. 주는 사랑만큼이나 중요한 되돌려주는 사랑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안테로스가 더 무서운 존재로 각인되어서 사람들이 무서워해야, 사랑을 악용하려는 나쁜놈들이 덜컥 겁이라도 먹을텐데. 


 누군가는 사랑을 이야기할 때 ‘주체가 나에게서 상대방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이에 일부는 공감하지만, 사랑해서 그 사람만 생각하고 무조건 주기만 하면 그 사랑이 완성되는 것일까?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인데 뭘. 그리고 무엇인가를 되돌려 받길 바라며 주는 것은 계산적이기에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다. 한 사람만 주고 상대방은 받기만 하면, 결국에는 주기만 하는 사람은 지치지 않을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출처 : 직접 촬영)


 사랑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조금이나마 되돌려 받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안테로스도 진정한 사랑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라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내가 이만큼의 사랑을 보여줬으니, 너도 최소한 그만큼의 사랑을 나에게 보여줘’라는 계산적이며 조건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만큼 받았으니 그만큼만 되돌려주겠다’는 물물교환의 의미보다는, 사랑을 받는다면 받은 것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보답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간혹 자신은 사랑을 주지도 않으면서 ‘나는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며 징징대는 사람도 있다. 안테로스가 의미하는 바는 되돌려주는 사랑이기에, 자신은 사랑을 주지도 않으면서 무조건적으로 받기만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봤으면 한다. 내가 그 사람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한 사랑을 주고 있는지를.      


 다시 말하지만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다.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지하철역 앞 만남의 광장에 있는 안테로스의 동상을 보며, '사랑을 연결시켜주는 큐피드나 에로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응답 없는 사랑을 복수하는 큐피드의 동생 안테로스'가 왜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이 되돌려주는 사랑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안테로스에게 화살 맞고 정신차릴 각오 정도는 미리 하기를.

이전 05화 죽음을 기억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