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with 클래식] 자동기술법으로 처리한 두 거울 이야기
현대문학과 클래식!
현대문학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 중의 하나인 이상의 ‘거울’을 에스토니아 국적의 아르보 패르트가 작곡한 ‘거울 속의 거울’이란 클래식과 엮어 보았습니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이상, ‘거울’
난해하고 또 난해한 시, 이상의 '거울'
클래식과 함께하는 문학수업의 입장에서 살펴보니,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가는 이상의 ‘거울’과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은 유사한 점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한번 엮어 보았더니......
실상 가장 난해한 작품은 누가 뭐라 해도 가장 단순하게 이해하고 감상하는 게 정답이다. 교과서에 실려있는 이 작품을 공부하려면 머리 꽤나 지끈지끈할 것이다. 우선 모든 것에 대한 부정이나 반발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아울러 자아 분열, 자동기술법, 의식의 흐름 등등 두통 노이로제에 걸릴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게 1934년에 발표된 시라니, 천재 시인 이상이기에 가능한 것.
사실 이 작품은 ‘거울’이라는 소재를 통해 분열된 자의식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현대인이 불안 의식과 자아 분열에 대한 안타까움을 형상화하고 있어서 감상하기에 쉽지 않다. 차라리 포미닛의 현아가 불렀던 ‘거울아 거울아’나 듣자고 여기저기서 아우성, 아우성, 또 아우성이다. 아! 아몰랑~~
미니멀리즘의 장르,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
피아노가 ‘딴 딴 딴’ 하는 단순한 소리를 계속 울리면, 바이올린이 얘기하듯이 나긋나긋하게 화답한다. 이 단순한 음악은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아주 감동이 크다. 듣기만 하여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에서 출생한 아르보 패르트는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에프 같은 소련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음악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소박하고 단순한 자신만의 음악적 스타일을 찾아서 만든 게 ‘영적 미니멀리즘’이라는 장르이다. 이게 현대 클래식 음악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고 한다.
‘거울 속의 거울’이란 음악 역시 달랑 두 개의 악기로 만든 음악이다. 두 개의 거울, 즉 거울 속에 비친 거울은 무한한 이미지를 통해 무수한 대칭과 복잡한 규칙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아르보 패르트의 이 곡이 실상은 너무 단순하게 들리고 있다는 게 참으로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 이건 현대인의 분열된 내면 의식을 잠재우는 소리를 아르보 패르트 본인만의 독창적 음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상의 ‘거울’처럼 ‘거울 속의 거울’은 시인 서영처가 말했듯이,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자동기술법처럼 어떤 의도도 없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두 개의 악기를 사용하거나 두 개의 소리만을 이용하여 아무 생각이나 의식 없이 흘러가는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과, 현대인의 자아분열을 의식의 흐름이란 기법으로 표현한 이상의 ‘거울’이 서로 통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자, 그럼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배경 음악으로 사용된 ‘거울 속의 거울’을 한번 감상해 보자고. 그냥 편안하게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를 따라가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