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첸과 사에키사이
얼마 전 T타입의 사람들은 샤워할 때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새빨간 거짓말 같은 글을 보았다.
말도 안 돼.
샤워할 때뿐만 아니라 생각을 멈춘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F타입이어서인지 아니면 일반적이어서인지 모르나 나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샤워하니 생각이 났는데(의식의 흐름에 따른 글) 건망증이 제대로 속도감을 내며 달리고 있는 요즘의 나는 샤워를 하다 깜짝 놀랐었다. 머리를 물로 다 적신 후 지금 이 젖어 있는 머리는_
'머리를 감으려고 젖은 상태'인지 '샴푸를 다 헹구고 나서 젖은 상태'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슬펐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머리에 신나게 물을 적시며 온갖 잡생각이 나의 온몸을 휘감아 둠짓둠짓 리듬을 타기 시작했을 즈음 퍼뜩 이것은 샴푸 전인가 아니면 샴푸 후인가라는 의문이 나를 감쌌다.
또 하나
출근길에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개그콩트를 깔깔대며 듣다가 문득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은 '출근길인가' 아니면 '퇴근길인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너무 넓고도 기다란 잠실역의 환승통로가 나를 미궁에 빠지게 했다고 해두고 싶다.
슬펐다.
영화 '내일의 기억'에서 주인공 사에키(와타나베 켄)는 49세 한창 잘 나가는 캐리어의 한가운데에서 알츠하이머를 앓게 된다. 부인도 못 알아보게 된 그는 사랑하는 그녀에게 "누구신데 이렇게 잘해주시나요?"라고 묻는다.
눈물이 줄줄
모든 것이 슬픈 가운데 몇 년 전 친구가 혀클리너인 줄 알고 남편의 면도기로 혀를 긁었다는 소리를 듣고 미쳤다미쳤다를 연발했었던 자신을 반성했다. 생각해 보니 혀클리너와 면도기는 생긴 것이 꽤나 닮았다. 샴푸 전 머리와 샴푸 후 머리도 퍽 닮았다. 어쩜! 출근길과 퇴근길도 닮았다.
약간 기운이 났다.
나도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한 사람들에게 “누구신데 저에게 이렇게 친절하냐”라고 묻지 않으려면 이 가느다란 정신줄을 꽉 잡아야겠다.
우리 꼭 잡은 두 손 놓지 말기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