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번거로움 사이
일본어를 사용하는 직업이다 보니 2-3년 주기로 JPT시험을 본다.
3년 전, 고사장에 도착해 교실 번호와 책상 위치를 확인했다. START라고 쓰인 줄의 제일 뒤가 내 자리였다. 연령도 성별도 제각각인 서로가 한 곳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들 어떤 이유로 시험을 보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이런 시험과는 0.1미리도 상관없는 생각을 하며 책을 꺼내 보기 시작했을 때였다. 한 학생이 내 자리 주변을 맴돌다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혹시 자리가 여기가 맞으신가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조용히 일어나 정반대 줄로 자리를 옮겼다.
문제지와 답안지를 받고 느껴지는 위화감. 어라? 문제지도 답안지도 글자가 온통 뿌옇다. 슬픔의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와 파동을 일으킨다. 마음을 다잡고 안경을 벗어 둔 뒤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청해문제에서 독해문제로 넘어가는 타이밍에 남은 시간을 체크하려고 교실 앞 시계를 보았다. 저 커다란 원이 분명 시계일텐데 도무지 시곗바늘이 보이지 않는다. 안경을 쓰고 시간을 확인한 후 다시 안경을 벗어 두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노화는 슬프기도 하지만 번거롭기도 하다.
그로부터 3년 후, 지난 일요일의 일이다. 시험장에 도착해 교실과 자리를 확인한 후 차분히 앉아 책을 보고 있자니 내 주변을 맴도는 분이 계셨다. 이것은 데자뷔. 그분은 3년 전과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했고 나는 네? 아?라는 단발적인 음을 내뱉으며 정반대 편 줄로 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앉았다.
까맣게 잊어버린 START지점. 이런 기억력으로 시험을 보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잊지 않고 손목시계는 챙겨 왔다며 스스로에게 윙크를 한번 날려본다. 시험 종료 벨이 울리고 서둘러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낯선 동네여서 버스정류장이 어디 있나 열심히 살폈다. 버스정류장을 찾는 마음의 간절함에서 오는 것인지 보도블록 왼쪽으로 바싹 붙어 걷다가 나무가 심어진 살짝 패인 부분에 걸려 꼬꾸라졌다. 엉덩이는 하늘을 향해 치켜들고 머리는 바닥과 1센티 정도의 간격만 남긴 채 말 그대로 '꼬꾸라졌다.' '꼬꾸라지다'를 사전에서 찾으면 나올 것 같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포즈였다. 꼬꾸라진 각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다시 평지에 두 발을 딛고 일어서기도 쉽지 않았다. 각도가 아니라 중력 때문이었을까?
어렵게 몸의 균형을 잡고 일어나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앉고 나니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낯뜨거움과 상처의 아픔이 느껴졌다. 한 일자로 보기 좋게 금이 간 내 무릎을 감싸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시험은 봐가지고 이렇게 아픈가. (이렇게 창피한가) 꼬인 스텝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나의 운동신경은 점점 쇠퇴해 가는 것인가. (이렇게 창피한가) 넘어지면서 분명 내가 넘어지고 있음을 느꼈는데 왜 그대로 꼬꾸라질 수밖에 없었는가. (이렇게 창피한가)
저녁이 되자 꼬꾸라질 때 땅을 짚었던 오른쪽 팔과 어깨가 점점 쑤시기 시작했다. 한낮의 충격이 가실 때 즈음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나의 노화. 나야, 노화.
두 시간 후면 성적이 나온다. 성적은 노화의 길에서 꼬꾸라져 멀리 떨어져나갔길. 성적까지 노화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말아 주길. 그러고 보니 교실이 얼마나 추웠는지모른다. (시험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밑밥을 살짝 깔아본다.) 여름에 시험을 보거든 겉옷을 꼭 챙겨 와야지 다짐해본다. 물론 '기억이 난다면'이라는 커다란 시련이 있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