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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인간력 튜닝 중

당신과 나 사이

by 완자

"컬러는 다 봤어요. 어차피 여름 거니까 조금 더 밝게 가도 좋을 것 같아요.

B/T 몇 개 더 보고 다시 이야기하시죠."


여름 거라고? 우린 지금 F/W준비 중 아닌가?

어느 업체랑 통화를 하는 거지?

전혀 못 듣던 업체명인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가? 회사 다니면서?

아니면 곧 그만두나?


여러 가지 궁금증이 들었지만 직접 묻기는 왠지 망설여졌다. 상대방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모른척하는 게 예의인가 싶었다. 어서 야근을 끝내고 집에 가야지.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즈음,


"완자야, 나는 네가 참 어렵다."

......?

전화를 끝내고 조금 지나서 같은 팀 언니가 말했다.

특별히 그날 어떤 일이 있었던 것도 그동안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야근 직전에 사이좋게 라볶이와 김밥을 나눠먹은 사이이며 2년 가까이 한 팀에서 같이 일하고 있었다.


"전화 내용 들었지? 회사 일 말고 아르바이트하고 있거든. 너도 업체 여러 군데 알고 있잖아?

좀 더 경력이 쌓이면 거꾸로 따로 일을 봐달라고 하는 연락이 오기도 할 거야. "

......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팀장 언니보다 5살 어린 내가 그녀에게 어려운 존재라는 것과 그녀는 얼마 전부터 투잡을 하고 있다는 두 이야기의 연관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결국 알맞은 질문과 대답을 찾지 못한 채 본의아니게 침묵을 유지했다. 아마도 상대방은 오해하는 상황들이 얇지만 켜켜이 쌓여 나라는 존재가 '어렵다'는 벽이 생긴 것은 아닌지 추정할 뿐이다. 말하자면 나는 어떤 점이 어렵다고 느끼세요?라는 질문조차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나는 다가가기 어려운 팀원인 채로 퇴사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어려운 존재라는 말이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해결되지 않는 과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되어 아는 얼굴 한 명 없는 교실에서도 파장이 맞는 친구를 용케 찾아내서 절친이 되곤 했는데 사회에서만큼은 안테나의 노화인지 번번이 비껴가곤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로 인해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할 때, 20년도 더 지났지만 팀장 언니의 말이 생각나곤 한다. ‘어려운 사람’이라는 내 등뒤에 붙은 라벨을 가능한 상대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조심히 주파수를 맞추며 대화를 한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안테나 성능이 떨어지지는 것이 문제지만. 그건 또 그런대로 우리가 가까워졌다는 증거일 수도 있으니 좋은 신호라고 쳐두고.


가능한 정밀하게 튜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항상 안테나 성능이 좋은 것은 아니다. 혹시나 어색한 미소만 띤 채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고 해도 오해는 말아주시길. 낯설게 시작한 우리 사이도 수없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끝날지도 모르니까. 그날을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튜닝을 하고 있다. 당신과 나의 주파수가 맞길 바라며. 내 등 뒤에 달려있는 라벨이 떨어지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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