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동네장학회의 후원 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주민센터에서 붙여놓은 것을 보니 이상한 단체는 아닌 것 같고 한 달에 3만 원이라는 금액이 크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전화번호를 메모하고 담당자와 통화를 한 후 이체할 계좌번호를 받았다. 그래도 의심이 가시지는 않아 자동이체는 설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의심을 안은 채 시작된 후원이 10년 가까이 되어간다.
한 번은 후원 관련 서류를 우편으로 받은 적이 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오프라인 회의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서류에 적힌 후원회원명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후원자 숫자도 적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동네 가게 사장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집 앞 파리바게* 사장님, 역 앞 자주 가는 카페 사장님, 편의점 사장님, 동장님, 부녀회장님 등등 일반인이라고 표기할만한 사람은 정말 나 한 명뿐이었다.
아, 이래서 담당자분이 '꼭 얼굴 좀 뵙자'고 말했었구나.
종교를 물으면 가톨릭이라고 답은 하지만 열심히 성당을 다녔던 시기는 고등학교까지이다. 결혼식도 성당에서 혼인미사는 올렸지만 매주 미사를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 마음의 부채에서 오는 부분과 그간 나의 행실도 딱히 칭찬받을 만하지 않다 보니 나보다 조금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자는 일종의 강박과 다소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
후원하던 단체 중 한 곳은 후원 아동이 성인이 되면 자동으로 후원이 종료된다고 했지만 아이가 21살이 되어도 후원이 계속되었다. 혹시나 내가 착각을 했나 싶어 후원단체에 확인을 해보았다. 그때 내가 들은 대답은 마침 후원종료연락을 드리려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영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기부나 후원을 하면서 염증에 가까운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남들에게도 선뜻 후원이나 기부에 대해 말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일을 쉬게 되니 후원하던 단체를 살피게 된다. 여기는 좀 큰 단체니까 나 한 명 정도는 후원을 중단해도 괜찮지 않나? 싶다가도 후원을 받던 아동은 후원이 중단되면 새로운 후원자가 그 아동의 후원을 이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일 뒤에 다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동네장학회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이 있었다. 자신도 어려울 때는 후원을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도 후원물품을 전달하러 갔다가 마주했던 학생들의 어려운 환경이 떠올라 다시 마음을 돌렸다는 것이다.
모두 다 평등하게 잘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선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누고 싶은 마음조차 갖지 못할 만큼 팍팍한 삶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마음을 누그러뜨릴 여유가 생기는 순간이 함께하길 바란다. 내가 매달 내는 얼마 되지않는 금액으로 생리대를 살 수 있고, 도시락을 먹을 수 있고, 우유라도 배달된다면, 또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양심이 뿌듯해지는 순간이 된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
올해도 이번 달에 장학회 심의회가 열린다는 안내 문자가 왔다. 장학금이 필요한 학생은 많고 금액은 정해져 있으니 학생들과 금액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이다. 앞으로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돼서 정말이지 이런 심사들이 열리지 않을 만큼 곳간도 마음도 모두 모두 풍성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