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을 서시오

작은 별과 무지개다리 사이

by 완자

이상하게도 어려서부터 죽음이 무서웠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까만 방안에 작은 별들이 수없이 쏟아져 내렸다. 작은 별들만큼 온갖 잡생각도 같이 쏟아져 내렸다. 밤에는 편지를 쓰지 말라고 하듯이 이때 별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생각들의 대부분은 비현실적이고 어두운 생각들이다.


무서움이 극도에 달하면 옆에 누운 엄마한테 슬쩍 다가가

"엄마, 방에 엄청 작은 별 같은 게 쏟아져 내려. 엄마도 보여? 조금 있으면 또 없어진다? 이게 뭐야, 엄마?"

마치 눈을 감으면 그 별들이 길을 내어 나를 죽음으로 끌고 가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마 그 말을 엄마한테 하지는 못했다. 작은 꼬마였지만 무언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엄마에게 나쁜 기운이 전달될 것만 같았다. 그때 엄마한테 말했다면 나의 두려움이 조금은 작아졌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저 눈을 뜨고 있을 때의 잔상이 남은 것일 뿐 방안에 별이 쏟아져내리는 일은 결코 없었다. 물론 별들이 길을 내어 저승으로 이끄는 일도 없었다. 그랬다면 우리 집은 무언가의 성지가 되어 매일같이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였겠지. 그리고 방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저마다의 신께 기도를 올렸을 테지.


나의 장례식을 떠올려보았다. 친구들은 다 건강하려나. 나는 빠른 년생이니까 하루이틀 더 살려나. (죽는 순간까지 빠른 년생을 운운하는 지독한 주술에 걸린 상태) 장례에는 절차와 격식이 있겠지만 작은 화단 앞에 잘 나온 사진 하나를 놓아두고 딱 한 명씩만 들어가서 조용히 묵념해 주면 좋을 것 같다. 대답 없는 나에게 말을 걸어줘도 좋고 짧은 편지를 써주어도 좋다. 편지는 나중에 화장터로 같이 옮겨 태우고 그 재는 모두 한강에 뿌려주면 좋겠다. 남은 이들이 한강변을 산책할 때나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또는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를 지날 때에 가끔 나를 떠올린다면 제법 기쁠 것 같다.


요즘은 장례도 축제같이 즐기자며 평소 고인이 좋아하던 음악을 틀어놓고 밝고 환한 의상을 입고 파격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같이 낯가리는 이들을 위해 혼자 거리낌 없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갈 수 있도록 철저히 1:1 공간을 고집하고 싶다. 화단의 꽃만 살짝 파격적으로 국화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헬리크라섬으로 채워주고. 그래도 밥은 한 끼 대접하는 게 동방예의지국의 인간 아니던가. 내가 중국요리와 이탈리안을 좋아한다고 해도 장례식엔 아무래도 따뜻한 육개장을 먹어야 마음이 진정될 것 같다. 육개장 고기는 꼭 세로로 찢어 주고. 파도 어슷썰기가 아닌 세로로 길게 길게 잘라 듬뿍 넣어서. 이렇게 빨간색이 액운을 막는다는 전통도 슬쩍 집어 넣어 갑자기 격식을 차려본다.


사실 이렇게 장례식까지 마음속으로 그려보지만 죽음이라는 두려움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요즘 부쩍 느끼는 나의 노화와 부모님의 노화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한층 내 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시켜준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늘나라에 보내는 일을 여러 번 겪어왔지만 여전히 죽음이란 나에게 익숙해지지 않는 주제이다. 설령 하늘에서 그들을 모두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꽤나 유명해진 이 한마디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반감시켜 주었다. 우리 집 고양이는 비록 외출을 하고 온들 여행을 다녀온들 버선발로 뛰어나와 식구들을 마중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무지개다리 건너편에서 만큼은 나를 기다려주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렇지만 꼼짝하지 않고 내가 잘 건너오는지 지켜보면서.

(그러려면 츄르 하나 손에 꼭 쥐고 눈을 감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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