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행기와 스노쿨링 사이
하늘을 날고 싶었다.
얼마큼 와닿을지는 모르지만 진심으로 훨훨 날고 싶었다. 날개가 없어 직접 나는 게 힘들다면 비행기라도 조종해 날고 싶었다.
그런 내가 자동차도 운전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다니 인생이란 참 알 수없이 흘러간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음악을 들으며 이곳저곳 드라이브를 다니는 게 좋았다. 어른이 되면 엄마가 되는 건 모르겠지만 자동차운전은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웬걸. 필기시험부터 허우적대더니 어렵게 손에 넣은 면허증도 우연히 얻어 탄 자동차의 접촉사고로 생긴 트라우마로 장롱 속 깊은 곳에 처박히고 말았다.
대학 졸업 후 2년 간 다닌 회사의 퇴직금은 작고 소중했다. 퇴직금의 액수가 딱 경비행기 조종을 배우는 금액과 동일했다. 이런 우연은 필연인 것일까 하는 진지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유학자금에 보탰다. 그렇게 젊은 날은 흘러갔고 훨훨 날고 싶던 꿈도 서서히 날개를 접어 갔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이제는 노안과 어지러움증 탓에 내 앞에 조종대가 있다고 한들 손을 내밀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펄펄 피가 끓어오를 때 날아올랐어야 했다.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고 그리스에 대한 동경으로 머릿속이 가득했었다. 나는 이미 비수기의 황량한 그리스 섬들의 쓸쓸한 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었다. 언젠간 크레타 섬을 두 발로 밟으며 하루키센세의 발자취를 느껴보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는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유럽을 3년간 여행을 하며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댄스댄스'를 써냈다. 3년이라는 세월을 여행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서는 차치해 두자. 3년에서 딱 '3'만 빌려와서 3개월이라도 여행을 떠나 작게 묶을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온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선택하지 않았던 또는 선택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아쉬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깊이 마음에 남곤 한다. 그래서 모두들 못 먹어도 go, 일단은 하고 후회하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기품 없는 비유가 심장을 쿡쿡 찌른다.)
마치 당장이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말하지만 여행은커녕 내일아침도 아들에게
"오늘 아침 뭐예요?"
"오늘 간식 뭐예요?"
"오늘 저녁 뭐예요?"라는 쓰리콤보공격을 받고 있을 것이다.
하루키센세가 '먼 북소리'를 발간한 지 35년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경비행기를 조종할 수 없으며 3개월의 여행 역시 떠나지 못했다. 어떤 세계는 굳게 닫혔지만 그 반대에서 새롭게 열린 세계가 분명 있을 테다. 이러다 어쩌면 자율주행이 경비행기까지 확대되어 장롱면허인 나를 데리고 따뜻한 섬으로 날아가 줄지도 모른다.
따뜻한 남쪽 바다에서 스노쿨링을 하며 가끔 모래사장으로 올라와 빈백에 기대 얼음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파란 음료를 꿀꺽꿀꺽 마셔본다.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보따리에 넣을 이야기들을 하나, 둘 눈으로 담는 그날을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