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걸음마

돌쟁이와 엄마 사이

by 완자

취업 한 이후 딱 두 번 쉰 적이 있다.


한 번은 결혼 직 후, 머리에서 번개가 치고 다크서클이 윗입술을 지나 아랫입술까지 덮칠 즈음이었다. '불면증'이란 이런 것이다를 스스로 몸을 통해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달까. 밤 10시에 자려고 누워도 12시에 누워도 새벽에 누워도 과정과 결과는 늘 동일했다.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생각이 뒤엉키다 잠깐 잠이 들었다 싶으면 30분 후에 깨고 다시 깨면 또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생각들에 2-3시간 괴로워하기를 반복하다 결국 출근 시간 1시간 남짓 남아서야 깊은 잠에 들었다.


병원에도 가보고 약도 먹어보고 CT도 찍어봤지만 뚜렷한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렇게 현대의학도 고치지 못한 나의 불면증은 퇴사와 함께, 더 정확히 말하면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자리로 돌아온 순간 싹 사라졌다.

이것이 바로 '인체의 신비', '인간의 신비', '퇴사의 신비'

믿을 수 없을 만큼 말끔하게 나았다.


같은 시기 엄마는 허리가 아프셔서 걷는 것도 힘든 상태였다. 걷다가 길에서 주저앉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건강염려증이 있는 나와는 달리 엄마는 좀처럼 병원을 가지 않으신다. 그런 엄마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으셨는지 큰 병원을 찾았고 결국 수술을 결정하셨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때의 내가 백수였다는 점. 엄마 옆에 붙어서 간병을 할 수 있었다.


15년이 지나 두 번째 쉬고 있는 지금. 엄마는 무릎이 고장 났다. 엄마의 무릎이 고장 난 것은 물론 아주 오래 전의 일일 것이다. 병원을 찾을 때까지의 시간은 엄마의 수많은 고민을 담고 있다. 나이가 오십에 가까운 딸에게 차조심해라, 사람조심해라 하며 사소한 걱정을 매일같이 달고 사시지만 정작 당신의 일에는 무심하다.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행여 자식들이 걱정할까 당신의 아픔을 자꾸 축소하며 살아온 것이 못내 서운하다.


엄마랑 병원을 오가며 예전과 같이 수다를 늘어놓지만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엄마의 발걸음에 자꾸 마음이 내려앉는다. 2년 전 이사 왔을 당시만 해도 편도 40분씩 걸리는 이곳에 버스를 갈아타시면서까지 종종 찾아오시곤 했다. 손주 얼굴도 볼 겸, 반찬도 줄 겸, 운동도 할 겸이라며. 하지만 엄마는 우리 집에 오지 않으신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결혼 전에는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다 큰 회사원을 버스정류장까지 차로 태워주시거나 맛있는 가게를 친구분들과 다녀오시면 얼마 후 나를 그 가게로 데리고 가서 맛을 보여주셨다. 어디든 데려가주던 우리 엄마는 이제 사랑해 마지않는 손주 집에 가는 것조차 망설일 만큼 무릎이 고장 나버렸다.


전과는 달리 여러 곳을 많이 다니지 못하고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조금이라도 걸으실 수 있을 때 같이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야겠다. 맛이 없으면 맛이 없는 대로 재미있는 추억이 돼 줄 테니. 아주 오래전 한발 한발 내딛는 나의 걸음마를 따뜻하게 지켜봤을 그때의 엄마처럼 조금 느려진 엄마의 한 걸음 한 걸음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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