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덕후일지

당신의 역습을 응원하며

by 완자

한국 휴대폰 번호를 입력해도 회원가입신청이 가능해요.

저도 그렇게 해서 회원가입하고 콘서트 봤어요.

검색에 검색을 더하여 열심히 찾아본 한 카페 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010-xxxx-0000

아무리 입력을 해도 회원가입이 되지 않는다.

승인번호를 받아야 한다고? 그러려면 일본 핸드폰 번호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회원가입 마지막 페이지인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머릿속에 일본에 있는 지인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려본다. 어디 보자, 나의 덕후질에 대한 갑작스러운 설명에도 놀라지 않고 들어줄 사람에게 부탁해야 한다. 그래야만 보다 신속히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나는 일본 오와라이덕후이다. 한국에서 딱 떨어지는 장르는 없지만 개그 정도 될 것 같다.

그렇다. 그렇게도 회원가입을 하고 티켓을 사려고 했던 콘서트는 오와라이콘서트였다. 아이돌 콘서트도 J-POP콘서트도 아닌. 북콘서트는 더더욱 아닌.


일본 여행일정에 맞춰 좋아하는 팀이 나오는 콘서트를 찾았다. 친구 덕분에 티켓도 무사히 손에 넣었다. 그날의 콘서트는 공연 시작 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빠짐없이 재미있었다. 한 팀 한 팀 모두 손뼉 치며 한참을 웃었다. 오와라이는 칸사이지방색이 강한지라 도쿄에서는 변방에 있던 장르였다. 도쿄 한복판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같이 웃으며 깔깔댈 수 있음에 세월의 변화와 나의 노화가 겹쳐 기분이 묘했다.

콘서트가 끝나고 굿즈판매점으로 자연스레 흘러들어 갔다. 굿즈샵에는 아이돌도 아닌데 랜덤으로 나오는 아이템이 제법 있다. 콤비명이 새겨진 키링이 몹시 탐이 났다. 하지만 여덟 콤비 중 내가 갖고 싶은 키링은 딱 두 팀, 그럭저럭 괜찮다 싶은 정도의 팀이 세 팀. 합하면 다섯 개까지는 랜덤으로 나와도 괜찮다. 5/8라는 확률에 500엔을 걸어본다. 보통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런 장면에서 가장 원하던 키링이 나오던데,


나는 지나가는 엑스트라였다.


부글대는 화를 가라앉히며 호텔로 향하는 전철에 올랐다. 지금의 화의 크기와 무게로 보건대 앨범에 포토카드를 랜덤으로 넣는 시스템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앞 줄에서 가장 높이 깃발을 들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디저트를 하나 사 먹고 기분전환을 해보기로한다. 화를 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콘서트를 보는 내내 넘치게 즐거웠고 행복했는걸. 매일 작은 스마트폰으로 보던 좋아하는 팀들을 두 팔을 쭉 펴고 5걸음만 걸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보았잖아.


다음 날 아침, 어제의 행복감은 온데간데없이 오기와 아집이 나를 덮쳤다. 일정에 없던 굿즈샵으로 잰걸음을 놀렸다. 이번에는 랜덤배지를 노려본다. 1/2의 확률이다. 보통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런 장면에서 가장 원하던 배지가 나오던데,


나는 완벽하게 지나가는 엑스트라였다.


내 손 위에 올려진 배지를 한참 바라보았다. 푸딩 사 먹을 걸 굳이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여기까지 찾아와서 왜 다시 슬픔에 빠져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문뜩 나의 제한된 경제력을 감안하여 이번여행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여행에 콘서트도 보고 한번 더 뽑으라는 이야기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손뼉 치며 웃느라 옆사람 시야를 거릴 정도로 즐겁고 행복했으니 그 정도 억울함은 가져가야 삶의 발란스가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에는 부디 확률의 장난에도 유연히 대처할 수 있는 조금은 어른이 돼있기를. 그리고 엑스트라 말고 조연 정도는 해주자고.


非요시모토를 응원하지만 루미네요시모토에서 라이브는 매일 열리니 방문 (굿즈까지 사고 할 멘트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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