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마이, 돈마이
얼마 전 좋아하는 작가인 니시 카나코(西加奈子)와 아사이 료(朝井リョウ)가 출연한 방송을 보았다.
둘은 친한 사이지만 아사이 료가 먼저 나오키 상(直木賞)을 수상하자 니시 카나코는 "분했다."라고 말한다. 친한 것은 친한 것이고 작품은 작품이므로. 그 말을 들은 아사이 료 역시 심사위원 중 한 명인 하야시 마리코(林真理子) 작가의 품평이 '이번 대회의 수확이라면 니시 카나코라는 작가의 작품을 읽을 수 있었던 점'이라고 평을 했다며 그 역시 "분했다."라고 말한다. 두 작가는 필력은 물론 입담도 좋다.
23살에 나오키 상을 거머쥔 아사이 료는 이제 36살이 되었고 20대 후반에 소설가데뷔를 한 니시 카나코 역시 48살이 되었다. 이제 중견 작가가 된 둘은 젊은 세대 편집장들과의 관계성과 소설을 쓰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이들도 (당연하지만)이면에는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음을 느낀다. 출판산업이 불황인 시대 속에서 외람되게도 어느 정도 네임벨류가 있으니 글을 쓰면 책으로는 엮어주는 환경이 되어서 더욱더 자신에게 엄격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소설가란 대중 앞에 항상 드러나는 존재는 아니다 보니 아무리 졸작이라 하더라도 대놓고 창피를 당하지 않으니까.
이제는 이런 퀄리티의 책을 내도 될까라는 판단을 자신이 하지 않으면 편집자들이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라는 말을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몇몇 작가들끼리 단체창을 만들어 편집자에 대한 태도를 포함해 잘못됐다 싶은 부분은 서로 이야기해 주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 역시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서 점점 쓴 소리를 해주지 않는다. 그런 탓인가 상식과 어긋난 궤도에 진입해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아니, 이런 유명한 작가들도 자기 검열을 엄격히 하고 책을 내는 세상에서 무슨 객기와 합당한 이유로 나는 글을 쓴다는 것일까. 느닷없이 상식적인 궤도에 올라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언감생심 처음부터 아사이 료도 니시 카나코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가쿠타 미츠요도 나츠메 소세키도 이사카 코타로도 호무라 히로시도 미야모토 테루도 되겠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좋아하는 일본인 작가를 늘어놓아보았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베스트셀러가 되겠다고도 대 작가가 되겠다고도 하지 않는 나에게 글쓰기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훅 빠졌던 구덩이에서 조금 올라올 수 있었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생각의 조각들을 짜깁기하고 맞추며 꾹꾹 눌러 적어나가다 보면 그 때 보이는 풍경이 또 있지 않을까. 좀처럼 질적 향상이 더딘 것은 아마도 기분 탓일 거라고 생각하고.
쓰고 보니 주변에서 나에게 쓴소리를 쏟아내면 어떻게 하나 갑자기 공포감이 엄습해 온다.
이렇게 이번 주도 깨달음이 있는 듯 없는 듯 한주가 흘러갔다. 추석연휴 동안 과연 나란 사람은 좋은 소재를 물어다가 양질의 글을 지어낼 수 있을 것인가.
살면서 가장 마지막에 쓴 이 글이 그간의 글 중에 가장 질적으로 낮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돈마이
돈마이
+ 놀랍게도 돈마이(ドンマイ)는 Don't mind의 일본식 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