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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 김나박이

팥빙수와 너구리사이

by 완자

말하자면, 형제의 유무나 구성에 따라 취향이 어느 정도 결정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는 두 학년 위의 오빠가 한 명 있다. 2학년 차이라는 것은 꽤 절묘하다. 내가 초등 1학년일 때 우리 형은 초저학년 중에는 가장 위인 초3이었고, 초고학년으로 올라간 4학년일 때는 6학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다. 늘 가장 윗학년인 모습은 꽤나 등 뒤가 커 보였다. 우리는 남매이지만 부질없고 기다란 서사로 인하여 서로를 형이라고 칭한다. 우리 형은 뭐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나와는 호형호형하는 사이이다. 여기서 '형'이라고 하는 호칭에는 서로 그 어떤 존경도 담고 있지 않다.


올해 여름 친정가족들과 여행을 갔었다. 어디에선가 엠씨더맥스의 '어디에도'를 꽥꽥 소리 지르며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소는 일본이고. 시간은 아침이었다. 이 무슨 어글리 코리안인가 싶어 저런 사람 꼭 있다며 혀를 찼었다. 이후 밝혀진 어글리 코리안의 정체는 우리 형이었다. 그때 내가 느낀 무서움은 우리 형의 어글리함을 뛰어넘은 피의 진함이었다. 이수라는 가수는 썩 좋아하지 않으나 이 노래만큼은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노래방에서 부를 수 없음이 한스러울 정도로.


그런 저런 연유로 나의 취향의 근간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을 가진다고 알게 되는 것은 아니나 우리 집 밑을 흘렀을지 모르는 수맥이 우리 형제를 이렇게 비슷한 취향으로 가져다 놓은 것인지. 아니면 DNA적인 요소가 작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스를 수 없는 무언가의 힘이 작용해 비슷한 것을 좋아하도록 이끄는 것이 아닌가 궁금하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나오 듯 어릴 때 헤어져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던 쌍둥이들의 취향이 알고 보니 비슷하다던지 이런 류인가 싶은.


형 방에서 흘러나오던 귀를 찢는듯한 헤비메탈 음악도 이제는 처음에 받은 충격처럼 질겁하며 듣지는 않는다. 일본문화 개방 전이라 왠지 큰 볼륨으로 듣기는 좀 망설여지던 안전지대의 CD도 타마키 코지의 싱글도 형이 어디에선가 구해와서는 종일 틀어 놓곤 했다. 사카이 노리코나 쿠도 시즈카, 첵커즈에 빠지지 않은 걸 보면 취향이 겹치지는 않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슬램덩크나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형이 읽던 책을 이게 뭔가 해서 읽기 시작했다. 만약 형제가 없었다거나 또는 여자형제만 있었다면 지금과큰 다른 취향을 가졌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잠시 나의 아이에게는 형제를 만들어주지 못했음이 조금 아쉬워진다. 의좋은 형제만 있는 것도 형제가 있다한들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센티멘탈해지는 이 기분.


조금 텐션을 올리기 위해 뜬금포 곡 소개를 하나 하고 마칠까 한다. 일본에 있을 때 형이 CD를 구워서 보내줬던 적이 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한 곡. 그것은 윤종신의 '팥빙수'

한국음악이 드디어 미궁에 빠졌구나 생각했던 곡이다.

그럼에도 여름만 되면 머릿속에서 자동재생되는 팥빙수.


한 마리 몰고 가시죠.


+ 오늘은 형의 결혼기념일이다. 이런 쓸데없는 우연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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