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빨간 사과를

아부지와 나 사이

by 완자

배가 여전히 더부룩하다.


일주일 전 배에서 사르르 기분 나쁜 통증 신호를 계속 보내왔다. 병원에 갈까 말까 망설이며 시간을 끌어보았으나(왜?) 무시할 수 없는 신호 끝에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망설임의 이유는 딱히 언어화할 수 없다. 언어화할 수 없다는 것은 이유를 댈 마땅한 명분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단명은 장염.


하지만 진단받은 지 한 주가 넘은 지금, 나의 소화기관 기능은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고 있다. 더 정확하게 또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약을 소홀히 한 탓으로 나의 위와 장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한 끼 두 끼 밀가루를 먹지 않는다고 해도 아니면 굶어본다고 해도 이제는 약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돌아올 수 없는 뱃속 깊이 구불구불 숨어 있는 소화기관들과 마주한다.


친애하는 아부지는 병원에 다녀오셔서는 종종 '의사의 말 따위'라며 불신을 드러내시곤 했다. 옆에서 아부지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저렇게 당신이 의사이고 약사라면 세상의 병원과 약국은 존재할 필요가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스치곤 했다. 그런 와중에 깨닫게 된 내 안의 아부지. 약국에서 받아 온 형형색색의 약들은 딱 한 번 먹은 후 서랍 깊숙이 던져졌다.


이쯤이야 뭐, 식사 좀 조심하고 잘 자고 그러면 되는 거지.


그러는 사이 소화기관들의 상태는 한 층 악화되어 나를 두 배의 힘으로 짓눌렀다.


왜일까.

사람(나)은 왜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야 후회를 하는 것일까.

왜일까.

사람(나)은 자신을 맹신하는 것일까.


이러한 엇나간 맹신 속에서 위와 장은 위력을 과시하며 나를 시시때때로 뒤흔들었다. 통증은 위와 장을 지나 머리까지 도달해 어지러움을 추가했다. 그제야 나는 그들을 어르고 달래기 위해 다시 약을 꺼내 와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곳도 확실하게 흔들림 없이 늙어가고 있음을 이렇게 또 깨닫는다.


겉모습의 노화는 거울 보기를 소홀히 하며 회피할 수 있다.(맞서지 않는다) 하지만 내장기관의 노화는 방심이라는 마음의 틈새를 놓치지않고 파고 들어와 피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나를 내던져버린다. 이번에는 가시 돋힌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져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먹기 시작한들 잘 먹을 수 없고, 먹고 난 후의 후폭풍도 적지 않은데 식욕이라는 친구가 도저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식탁과 화장실의 왕복 속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깨달았는가. 일찍이 우리의 해철이 형은 말했었다. 우리는 어떤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는가.

어쩌면 괜히 꺼내든 재즈카페 카드.

말하자면 고통을 체험하며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보자면 이런 식의 자기표현은 내장기관이라 한들 옳지 않다. 우리는 평생 함께 하는 원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고생한 나의 위와 장에게 깊은 사과를 표하며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병원은 제 때, 약은 약사에게.

아부지도. 물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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