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불안이다. 어려움이다. 두려움이고 고뇌이다.
한편으로 투자는 희망이다. 발전이다. 각자의 소망이고 꿈이다.
돈을 잃는 것은 상상만 해도 괴롭다. 그리고 무섭다.
내가 하는 것에 누구도 정답을 알려줄 수 없기 때문에 답을 찾을지는 당연히 모르고 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허리띠 졸라가며 모은 그 돈을 잃는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다시 벌 수 있는 금액 수준이라면 흔들리는 멘탈을 가까스로 잡고 다시 일어나면 되겠지만 그 금액이 내가 다시 벌기에는 이제 너무나도 커져버렸다면? 이번 투자가 잘못된다면 내가 벌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빚더미에 오래 허우적거릴지도 모른다면?
그럼에도 난 이 투자를 할 수 있을까? 해야 할까?
반대로 돈을 얻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무척이나 기쁘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든다. 내가 과거에 결정했던 것이 잘 맞았다는, 그래서 자신에게 갖는 자긍심도 올라간다. (내가 잘해서 돈 벌었다!)
으스스하고 깜깜했던 좁은 외길을 거쳐 따뜻하고 한없이 밝은 빛을 만날 때의 심정과 같달까. 막막하던 투자의 끝에 얻게 되는 수익의 달콤함이란 한번 겪어본 사람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고 다시 또 이런 기쁨을 갖고 싶다. 쭉 이런 마음이 커졌으면 한다.
그런데 다시 이런 희열을 느끼려면 어둡고 막막한 그 길을 다시 걸어야 한단다. 자신감도 생겼지만 그만큼 또 불안해진다.
투자의 행위란 이렇다. 아무리 성공하는 투자자라도 마음속 한 켠에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투자를 할 땐 멘탈 강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흔히들 멘탈을 지키기 위한 명상을 하기도 하고 역술인에게 찾아가기도 하며 (여기라도 의지할래.) 홀로 자기 수양을 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투자자들의 멘탈은 단단해지고 나중에는 그 불안감이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물려받을 것 하나 없는 신세로, 아니 오히려 갚아야 할 돈이 더 많은 상태로 투자의 길에 발을 내디뎠다.
그동안 100점짜리 시험지에 동그라미를 더 많이 그리는 것을 목표로 살아왔던 나에게 투자란 정답도 해설서도 없는 괴물과 같았다.
나를 집어삼킬지도 모르는 괴물. 혹시나 생길 오답에 울고불고 싹싹 빌어도 그저 나를 회초리로 내리칠 괴물.
실제로 내가 했던 투자가 ‘망했다면’ 나는 다시 지난 수년의 시간을 되돌렸어야 했을 것이고, 그리고 그만큼 늦어진 시간만큼 종잣돈을 더 모아야만 했을 것이다. 돈을 잃었다는 좌절감과 실패감, 우울감은 더불어였겠지.
계약금을 보내던 순간, 등기권리증을 받아 들던 순간, 세입자의 협박(?)을 들었던 순간, 대출이자가 불어나서 월급의 절반이 빠져나가던 순간, 세금을 내던 순간 모두 나에겐 불안이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마음과 함께 ‘그런데 만일 잘못되면 그땐 나는 어떡하지?’라는 마음이 동시에.
그러다 하나 둘 처분을 하며 차익이 생기고, 한 달 두 달 지나 월세를 받으니 나의 마음은 벅찬 기쁨 그 자체였다.
내가 만들어낸 자본 소득,
불안과 공포의 괴물을 무찌른 나의 돈,
그리고 ‘내가 맞았구나,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를 되뇌며 받아 든 통장 내역.
그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충족감은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다시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지금, 나에게는 당연하게도, 불안감도 기쁨도 혼재한다. 이제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잠깐만 발을 삐끗하면 입을 쩍 하고 벌리고 있는 괴물의 입으로 직행이다. 이제는 실수를 용납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탭댄스를 추며 걷고 있다. 한없이 조심하며, 또 한없이 기뻐하며.
나는 절대 저 괴물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도, 자신감도 함께.
아마도 난 지금까지 초심자의 행운으로 잘 지내온 것 같다. 물론 중간중간의 실패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무너지지 않을 정도라 다행이다.
신의 비호 아래 나의 투자 생활은 쭉 계속될 것이다.
투자를 하지 않았으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그리고 또 투자를 잘못했어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