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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미녀 Aug 16. 2020

동전에는 양면이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필연적이다.

자본주의. 돈이 가치를 생산해내는 시스템. 그리고 복리의 효과로 가치가 점점 더 커지는 구조.

‘돈이 돈을 번다’라는 이야기는 이것을 일컫는 이야기다.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필연적이다.


상위 1%의 자본가들은 전체의 절반 가까이 되는 부를 소유하고 있고, 그리고 그 몫은 점점 더 커진다. 이는 당연하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이 돈을 버는 게 훨씬 더 빠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돈은 커지면 커질수록 버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

이를 스노우볼 효과라고 한다. 눈덩이를 만들 때에는 뭉치가 될 때까지 시간이 꽤 소요되지만 한번 만들어진 눈덩이는 굴리면 굴릴수록 더 빠르게 커진다. 더 큰 눈덩이일수록 더 빠르고 더 커진다. 돈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돈의 복리효과를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는 걸까?




내가 어떠한 투자를 해서 6%의 추가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치자. 100만 원으로 시작한 투자는 1년 후에는 106만 원이 된다. (+6만 원)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106만 원+6만 원=112만 원이 될까? 아쉽게도(?) 다행스럽게도(?) 아니다.

106만 원을 기준으로 6%의 추가 수익을 거두기 때문에 112만 3천600원이 된다. 별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3600원이라는 금액이 더 생긴 것이다.

이렇게 3년, 4년, 5년.. 시간이 흘러 10년 차가 된다면?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160만 원이 아니고 179만 840원가량이다. 무려 19만 840원이 더 생겼다.     


100만 원을 천만 원, 1억 원, 10억 원으로 바꿔보자. 절대적인 금액이 커질수록 복리로 거두는 수익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뒤 바뀌어있다. 그래서 돈이 돈을 번다는 소리가 나온다.      

즉 100만 원으로 시작한 사람과 1억 원으로 시작한 사람은 10년 후 그 차이가 7천8백만 원가량이 난다.

출발점이 달랐던 두 금액은 도착점에서 바라보면 더욱 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100만 원이 아니고 마이너스 100만 원으로 시작하는 사람하고는 그 격차가 어떻게 될까?

마이너스라는 건 빚이라는 이야기다. 양수(+)의 금액이 복리의 효과로 인해 더욱 빨리 늘어났다면 음수(-)의 금액 역시 마찬가지다. 0원일 때보다 더 빠르게 마이너스가 커진다. 빚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커진다. 마이너스 역시 위에서 설명한 복리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눈덩이가 크면 클수록 가속도를 받아 더 빨리 굴러 떨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될 것이다.)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공평해 보이더라도 어쩔 수 없다. 부가가치를 가장 빠르게 만들어내는 돈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들에게는 이것이 불공평하지 않다. 아니, 이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불공평 자체를 논하기가 어렵다. (혹은 불공평함을 알더라도 별다른 수를 쓸 수도 없다. 이미 이 세계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자본주의는 세상을 부유하게 하고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자본가들이 낸 세금은 사회에 환원되어 국민 모두를 위한 혜택으로 돌아간다. 대표적으로 도로나 항만 같은 사회간접자본이 있고, 직접적으로는 이전소득(국가지원금)이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잘만 돌아간다면 ‘모두의’ 삶이 윤택해진다. 부의 재분배를 통한 상향평준화라고 생각하면 쉽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기엔 반드시 반대쪽 면이 있다.


빚을 지고 있는 가난한 자는 더 빠르게 가난해진다는 것이고,
심지어 그들은 돈을 플러스로 만들 수 있는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교육이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의무교육을 통해 무상교육을 확대해가고 있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물론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나라 안에서조차 자본가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자녀들의 교육 기회 차이는 크다.






자본주의에서 구성원들의 출발점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서로 간의 간극을 좁힐 수 있게 하는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져야 마땅하다.


자본가의 자녀든, 가난한 사람들의 자녀든 시험 성적에 맞춰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에 갈 수 있어야 한다.

누구든 황금알 낳는 거위를 가질 수 있도록 자산 형성에 있어서 공평하게 조건을 부여받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구든 정당한 소득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공정한 절차를 통해 동일한 환경에서 근로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든 돈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공부할 수 있어야 하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예상하다시피, 이 대부분의 일들은 자본가들에겐 무척이나 쉽고(당연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너무나도 얻기 힘들다(평생 기회를 가져볼 수 조차 없기도 하다.)


난 대단한 논리를 가진 경제학자나 전문가는 아니지만 가난과 어느 정도의 부를 경험해본 사람으로 이 상황을 바라본다면,

이 양면성의 해결 방법은 오직 '누구든 기회를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든 다가오는 기회를 잡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교육을 잘 받는다면 더욱 좋을 것. 최근 금융교육의 중요성이 조금씩 대두되면서 요즘 청소년들도 '돈'에 관심을 기울이고 '부자 되는 법' 같은 것을 찾아본다니 정말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난 자본주의의 양면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실패해버린 사회주의나 수정자본주의 같은 것을 대안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것들은 대안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를 더욱 공고히 만들어주는 (자본주의의 장점을 더욱 부각해주는) 또 다른 어휘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의 동떨어진 이야기. 만에 하나 그것이 '맞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현재 기득권을 쥔 자본가들은 절. 대. 그렇게 되도록 두지 않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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